박성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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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박성호.jpg
대전 시절 박성호(좌)가 골을 성공시킨 후, 김창훈 선수의 축하를 받고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박성호 (동명이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박성호2박재현으로 개명하였으므로 현재 K리그에 박성호는 박성호1 한 명 뿐이다.

박성호(1982년 7월 27일 ~ )는 부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K리그에서 2001년부터 현재까지 활약중인 공격수이다.



프로필

  • 이름 : 박성호
  • 생년월일 : 1982-07-27
  • 신체조건 : 187cm / 83kg
  • 포지션 : FW (안양 시절에는 DF)
  • 유소년 경력 : 부평고등학교 졸업
  • 국가대표 경력 : 2002년 청소년대표 상비군
  • 등번호 : 11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슈팅 경고 퇴장
안양 LG 치타스 2001 5 4 0 0 2 0 0
안양 LG 치타스 2002 0 - - - - - -
안양 LG 치타스 2003 2 2 0 0 4 0 0
부산 아이파크 2006 27 18 2 1 31 3 0
부산 아이파크 2007 33 13 5 2 28 2 1
대전 시티즌 2008 31 3 7 4 65 7 0
대전 시티즌 2009 28 6 9 2 52 3 0
대전 시티즌 2010 15 5 6 3 33 3 0
대전 시티즌 2011 29 6 8 1 63 7 0
포항 스틸러스 2012 0 - - - - - -
통산 (K리그) - 170 57 37 13 274 25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설명

골 못넣는 스트라이커에서 팀의 간판 공격수로 성장한 선수이다. 혹자는 K리그에서 RPG를 해온 선수라고 평하기도.


프로 입단 이전

신장 190cm의 장신의 타겟형 스트라이커이다. 부평고등학교 재학시절, 이천수, 최태욱, 김정우, 박병규, 이준기 등 모조리 훗날 프로 1군에서 뛰게된 선후배들과 경기를 치루면서 주목을 받았다. 무지막지한 부평고 공격진 스쿼드 속에서 박성호 선수는 고교선수로는 드문 190이 넘는 타겟이라 프로의 주목을 좀 더 일찍 받을 수 있었다.

결국 2001년 드래프트에서 안양 LG에 고교 우선 지명으로 입단하게 되었는데, 당시 박성호 선수와 입단동기로는 한정화, 안성훈 선수등이 있었다. 당시 안양의 감독인 조광래는 소위 조광래의 아이들 육성을 위해 김호 당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에 맟서 경쟁적으로 고교 졸업 선수들을 지명하고 있었고, 이와 같은 경쟁의 과잉에 따라 박성호 선수는 부평고를 졸업하자마자 일찌감치 프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안양에서의 좌절

2001년 기준으로 안양 LG에는 박성호를 포함해 고교 졸업 선수가 12명에 달했다. 또래 간의 경쟁의 틈바귀에서 박성호 선수는 탁월한 하드웨어는 갖췄으나, 공격적 센스가 모자란 탓에, 초반에는 2001년 시즌 최연소 리그 출장 (18세 138일) 기록도 세웠으나 갈수록 임펙트가 떨어졌다. 조광래 감독은 박성호 선수를 K리그 컵대회에 서브로 내보내며 가능성을 테스트했으나, 썩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는 후문. 조광래 감독은 박성호 선수에게 '헤딩만 할 생각을 말고 기술을 연마하라'는 충고를 던졌으나 어린 박성호 선수가 쉽게 스타일을 변경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2002 시즌에는 안양 2군에서 센터백 전환 훈련을 받게되었고,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를 갈팡질팡하면서 어느 쪽 하나 보완하지 못한채 2002, 2003 2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안양과의 계약기간 만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박성호 선수는 군입대를 결심하게 되는데, 다행히 경찰청 축구단에 합격해 2년간 군복무를 마친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때 안양은 없어져있었고, 자신은 무적 선수가 되어있었지만..


부산 입단, 그리고 박니

2006년 1월, 부산 아이파크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은 박성호 선수는, 김판곤 당시 부산 수석코치의 낙점을 받아 키프로스 전지훈련에 참가하게된다. [1] 2006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부산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기 시작한 박성호는 극악에 달하는 골결정력과 중앙에 붙어있질 못하고 사이드로 처지는 플레이 때문에 부산팬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여기에 볼경합시 팔꿈치로 상대 수비수를 가격하는 경우가 많아, 애써잡은 기회를 공격자 파울로 끊어먹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여러모로 까일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게 당연했다. (문제는 박성호 외에 달리 쓸 타겟 스트라이커도 없었다는 점. 당시 포터필드 감독이 데려왔던 아트나 서브 공격수인 오철석, 부영태 등은 박성호 선수에게도 밀리는 상황이었다)

키는 멀대같이 크면서, 지지리도 골을 못넣던 박성호를 두고 국내축구갤러리에서는 박성호 선수와 비슷한 성향의 공격수인 손정탁, 황연석을 한데 묶어, 타워팰리스, 트리플 타워, 손정탁 클럽 등의 조어를 만들어냈으며 이 전통은 현재 삼동현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_-.. 여기에 당시 박성호 선수가 닮고 싶은 선수로 '판니 스텔루이 를 꼽아, 박성호 선수의 별명은 '박니'로 통했다. 당시 최고의 득점 감각을 자랑하고 있었던 판니와 비교하여 박성호의 골결정력을 조롱하는 의미로 쓰였다. [2]

그렇게 리그 15경기를 넘게 소화한 이후에야, 2006년 8월, 대전전에서 1골 1도움을 올리며 프로 데뷔 6년만에 데뷔골을 신고하게 되었다. 김판곤 당시 감독대행은, '한골을 넣었으니 앞으로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덜해 더 잘할 것'이라 기대했으나, 결국 2006년 성적은 2골 1도움으로 광주전에 1골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공격포인트 3개를 기록한 박성호 선수의 시즌 출장 시간은 1833분이었다.[3]


포텐 폭발!?

2007년 엔디 에글리가 부산 신임 감독에 부임함에 따라, 박성호는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되었다. 2006년까지는 박성호가 없어도 부산의 득점루트를 개척했던 뽀뽀소말리아등이 팀을 떠나게 됨에따라, 부산 선수들은 좋든 싫든 박성호 선수에게 볼을 집중해주는 상황에 처하게 되엇고[4] 박성호는 순식간에 팀의 운명을 짊어진 특급 공격수의 역할을 요구받기에 이른 것이다.

박성호 선수의 역할에 부산팬 대부분은 회의적인 (정확히는 절망에 가까운) 시선을 보냈고, 박성호를 믿느니 차라리 2005년 부산의 전기리그 우승을 견인했던 루시아노의 복귀에 희망을 걸어보자는게 다수의 견해였다. 그런데 이게 왠걸!?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시즌 첫골을 터뜨리더니 4월 7일에는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려 부산의 시즌 첫승을 안기더니, 5월 5일 어린이날 對 인천전에는 데뷔 7년만에 멀티골을 기록. 박성호의 포텐이 드디어 터지는가 부산빠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었다.[5] 인천전 2골을 몰아친 기세로 좀 더 활약을 이어갔으면 좋았겠지만, 박성호 선수가 점점 나아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팀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결국 2007년 박성호는 5골 2도움을 기록하며 부산 시즌 득점의 약 25%를 책임져 에이스의 역할을 아쉽게나마 하려고 노력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내년이 기대되는 선수로 기대감이 높았다. (거기다 군필에 26살이라는 어린 나이도 강점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2008년 시즌을 앞둔 겨울 이적 시장에서 대전 시티즌정성훈, 김창수 선수와 박성호 선수를 비롯, 이여성, 송근수 선수를 포함한 2:3 대형 트레이드 카드로 박성호 선수가 포함되면서 박성호 선수는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대전에 입단하게 된다.



대전 시티즌에서의 생활

대전에 입단한 2008년, 7골 4도움을 기록하면서 대전의 간판으로 올라섰고 팀을 떠난 슈바의 공백을 그런대로 메워 주었다는 평이다. 해가 바뀌어 2009년에는 9골 2도움을 올리며 고창현에 이어 팀의 원투펀치로 완전히 자리잡게 되었다. 이때 K리그 올스타 후보도 올라갔었다. 2010년 통산 16경기 출장 6골 3도움으로 공격포인트 20개 달성의 꿈을 이루기 직전, J리그 센다이 베갈타로 4천만엔 (당시 환율에 따라 3억원)에 임대되었다가 돌아왔다. 2011시즌 대전으로 복귀후 8월 현재까지 시즌 8골 1도움을 기록중이며 대전 시티즌의 주장에 임명되었다. 다만, 8월 이후로 승부조작 파문 등으로 팀분위기가 박살나면서 득점포 가동을 멈춰 아쉬움을 남겼다. 잘하면 개인 통산 최초로 1시즌 두자릿수 득점도 노려볼만했는데.. 아쉬울따름.


J리그로 임대

2010년 7월 11일, J리그베갈타 센다이로 6개월 임대되었던바 있다. 베갈타 센다이는 임대 후 이적 협상을 논의할 수 있는 조건으로 박성호 선수를 영입하였다고. 그러나 베갈타에서 박성호는 6개월동안 11경기 출장 1골의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J리그 시즌 종료 후 원소속팀인 대전 시티즌에 복귀하였었다.


포항 스틸러스 입단

2011시즌 종료 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였다. 2011 시즌 종료 후 터진 제1호 이적. 무려 이슬기, 김동희 선수 2명에 현금까지 얹은 대형 트레이드라고 한다. 박성호의 가치가 실로 엄청났던것.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은 타겟 스트라이커 자원으로 박성호를 낙점하였다고 하며, 영입에 만족감을 표시했다..[7] 하지만 2012년 5월 현재까지, 박성호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포항의 ACL 조별예선 탈락과 중위권 랭크에 기여(?)하고 있다. 덕분에 팬들 사이에서는 박성호를 사오다니, 대전 시티즌의 유상철 감독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8] 결국 포항 입단 후 2012년 8월 현재까지 20경기 남짓 나왔음에도 무득점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여름 지나가면서 슬슬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더니 2012년 10월 20일 FA컵 결승전에서는 승부차기를 앞두고 있던 연장후반 13분, 백헤딩으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포항의 FA컵 우승을 안김과 동시에 황선홍 감독의 우승징크스를 날려주었다.

플레이 스타일

초창기 부산 입단 당시에만 해도 아무것도 못하는게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헤딩도 안되지, 드리블도 안되지, 볼키핑도 안되지.. 여기에 툭하면 공격자 파울로 공격 끊어먹지. 다른 의미로 대단한 선수였으나, 본인의 꾸준한 노력과 코칭 스탭진의 기회 부여, 운 등의 다양한 요소가 겹치면서 해가 다르게 성장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사실상 K리그에서 준척급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평가받고있다. 그러나 최전방에서 지나치게 파울이 많은 편이며[9], 득점력이 다소 기복이 있고 결정적인 찬스에서도 이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부분이 조금 아쉬운 부분. 그래도 최전방 수비수 노릇하던 2006년에 비하면 상전벽해급 발전이다.


에피소드

  • 손정탁 클럽의 창립 발기인(?) 중 한명. 이동국 선수와 함께 손정탁 클럽 멤버중 가장 금의환향한 케이스로 평가되기도 했는데.. 2012년 포항에서 다시 예전의 명성에 버금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력


같이 보기


참고사항

  1. 당시 박성호 선수와 함께 부산에 입단한 선수는 김홍철, 장우창, 김태영, 차지호 등이 있었다. 박성호 선수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선수들은 현재는 프로와 인연이 없는 상태..
  2. 원래는 까려고 만든 별명인데 어감이 좋은지 대전에서 에이스를 맡고 있는 요새도 애용중인 별명이 되었다. 선수 본인도 자신을 박니로 부른다는 점에 대해서 개의칠 않는듯.
  3. 611분당 공격포인트 1개씩 기록한 셈. 반면 경기당 평균 파울개수는 1.8개에 달했다. 누가 보면 수비수인줄 알듯
  4. 여기에 에글리가 뽀뽀와 소말리아 대타로 데려온 윌리엄페르난도는 K리그 역대 최악의 외국인 반열에 오를만한 잉여였기에 박성호 외에 대안이 없었다.
  5. 비슷한 시기에 박성호 선수 부인이 임신중이었기 때문에, 역시 아버지의 힘은 대단하다고 감탄했었다.
  6. 이 트레이드는 훗날 부산팬들에겐 초대박 트레이드로, 대전은 나름 에이스 박성호를 얻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트레이드로 평가되면서 보기드문 윈윈 트레이드로 평가된다.
  7. 박성호가 대전으로 떠났던 것은 황선홍 감독이 선임되기 전에 두 팀의 프론트가 협의해서 한 일이었으므로 황선홍 감독이 부산 시절 내버린 박성호를 다시 데려온 것은 아니다. 참고자료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39&aid=0000016688
  8. 박성호와 투톱을 이루는 고무열도 박성호와 그다지 다를바 없는 움직임으로 욕을 먹고있지만, 포철공고 유스 출신이라 쉴드(?)가 쳐지는 편. 박성호는 이런것 마저 없어서 더욱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있다.
  9. 2011시즌 파울 1위 (74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