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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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옥 (1938년 1월 28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프로필

  • 이름 : 박승옥
  • 출생일 : 1938년 1월 28일
  • 국가대표 경력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64년 도쿄 올림픽 아시아예선ㆍ본선 대표
196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70년 ~ 1971년 백호 축구 국가대표팀
(통산 A매치 12경기 출장 1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선수 생활

경기도 부천 출신으로 소사북초(현 부천북초등학교), 동북중, 동북고등학교를 거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최종적으로는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초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변변한 축구 교육을 받지 못하였으나, 보성전문에서 축구 선수로 활동한바 있는 둘째형 박승태 씨의 추천에 힘입어 동북중학교에 진학, 당시 동북중/동북고 코치였던 박병석 씨의 지도를 받으며 기량이 급성장하였다. 이후 동북고를 졸업하자,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를 위해 스카우트 경쟁이 한창이었던 해군사관학교에서 재빠르게 박씨를 데려갔으며, 2년여간 해사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사관학교 생도 신분으로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었기에 고민하던 박씨는 2학년까지 마친 해사에서 퇴교, 경희대 체육대학 1학년으로 편입하며 군인의 길이 아닌 축구 선수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다. 이후 경희대 4학년 시절에는 국가대표 멤버로 발탁되어 메르데카컵에도 다녀오는등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경희대 졸업 후 CIC에 픽업되어 특무대 축구단의 황혼기를 이끌었다. 특무대 축구단이 해체될 무렵에는 박씨도 전역하여 대한중석 소속으로 활동하였는데, 특무대 시절 선배였던 차태성 씨의 권유로 2년여간 서울시경 소속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서울시경 축구단 해체 후에는 제일모직에서 활동하였으며 제일모직 축구단 해체 후에는 주택은행 축구단 소속으로 활동하다 1972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지도자 생활

선수 생활 정리 후, 주택은행 관리부 직원으로 일하던 박씨는 1979년 광운대학교 축구부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장장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광운대 축구부를 이끌며 오승인, 최광지 등을 조련해내며 대학축구계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한국대학축구협회 부회장까지 지내며 행정가로서도 활동하였다.


에피소드

  • 자의는 아니었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저니맨에 가까웠다. 대학도 1번 옮겼고, 대학 졸업 후 소속팀도 CIC, 대한중석, 서울시경, 제일모직, 주택은행까지 총 5번 유니폼을 바꿔입었기 때문.


같이 보기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