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배

파일:박정배.jpg
울산 현대 시절의 박정배
볼경합 상대는 제용삼 선수이다.

박정배(朴正倍, Park, Juung Bae, 1967년 2월 19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0년부터 1999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수비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박정배
  • 출생일 : 1967년 2월 19일
  • 신체 : 183cm / 80kg
  • 국가대표 경력
1994년 FIFA 미국 월드컵 아시아예선ㆍ본선 대표
1991년 ~ 199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36경기 출장 2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럭키금성 황소 1990 26 6 1 0 1 0
  LG 치타스 1991 38 2 4 4 3 0
1992 35 1 3 0 2 0
1993 12 1 1 0 1 0
  대우 로얄즈 1994 14 2 1 0 1 0
1995 23 5 0 1 4 0
  부산 대우 로얄즈 1996 17 7 0 0 7 0
  울산 현대 호랑이 1997 22 2 0 0 4 0
1998 37 3 2 0 4 0
  울산 현대 호랑이 1999 3 3 0 0 0 0
통산 (K리그) - 227 33 12 5 27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1년 11월 7일 기준


유소년 생활편집

K리그편집

국가대표 생활편집

1991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서 국가대표에 발탁된 이후로 안정적인 출장을 이어갔으며,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도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김호에게 중용되었다. 맨마킹 능력과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공격 가담 능력이 높게 평가 받았다는 후문.. 그 기대에 보답하듯, 1993년 10월 당시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도 참가해 1차전에서 이란을 상대로 선제골을 터뜨렸던바 있다. 아시아 최종예선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도하의 기적으로 이어졌고, 박정배 선수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본선 월드컵 무대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후 박선수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조별예선 3경기를 모두 소화하였으며, 상대팀 주 공격수를 맨마킹하는 역할을 맡았다. 즉 조별예선 1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는 훌리오 살리나스를 전담 마킹하였고, 3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는 위르겐 클린스만을 맡았던셈. 하지만.. 마크 능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상대가 상대인지라 잘 막아내다가도 순간적인 상대 플레이에 당해 살리나스(1골)와 클린스만(2골)에게 각각 실점을 헌납했다. 물론 이는 박정배 개인의 잘못이기 이전에 한국 수비 조직력 자체의 문제와 전반 끝나기 10분전과 후반 10분여부터 체력이 방전되는 한국 특유의 플레이 기복의 문제에 가까웠고, 상대가 워낙 월드 클래스에 전성기 기량이었던 점도 한몫했다는 평.

이렇게 잇달아 실점을 허용하며 세계의 벽을 실감한 수비수 정도로 세간의 기억에 머물뻔했던 박정배 선수는, 3차전인 독일전에서 감각적인 어시스트를 올리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미 전반에만 독일에게 3골을 실점한 한국은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파상 공세를 펼쳤고, 후반 6분 박선수가 하프라인을 넘어서까지 전진 오버래핑을 펼치며 쇄도해 들어갔다. 이어 박선수는 로빙 패스를 황선홍에게 찔러넣었고, 이 패스 하나로 독일 수비진이 완전히 뚫려버린다. 황선수는 박선수가 만들어준 골키퍼와의 1:1 찬스에서 감각적인 칩슛을 쏘며 만회골을 성공시켰다.[1] 한국의 월드컵 경기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어시스트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세간에 회자되지 않는 명장면 중 하나. 아무래도 1:3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얼른 한골 더넣어야 희망이 보이는데 하고 똥줄이 타던 시점이라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가 없었던듯 싶다. 지금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이 장면이 나왔더라면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텐데 아쉬울 다름.. 하지만 박정배 선수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의 분전에도 결과는 2:3 한국의 패배로 끝났고, 박선수와 한국의 월드컵 도전도 막을 내렸다. 이후 박선수는 1996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하였으나 최영일, 김태영 등 전문 맨마킹 요원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대표팀에서 퇴장하게 된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악착같은 맨마킹과 헤딩 볼경합 능력으로 각광을 받았던 선수였다. 뿐만 아니라 발도 상당히 빠르고 공격 센스도 있었던 다재다능한 선수. 그러나 리그에서나 국가대표에서나 주로 중앙 수비를 맡았기 때문에 다른 능력은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에피소드편집

  • 국가대표에서의 활약도에 비해, K리그에서는 지지리도 상복이 없었던 편이다. 특히 10년간 K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우승은 딱 한차례 해봤는데 1990년 박선수의 데뷔시즌이 럭키금성의 리그 우승이 그것. 1994년 대우 로얄즈로 이적해서도 로얄즈의 암흑기만 함께 했을뿐 영광의 시절은 함께하지 못했다. 대우가 비상하기 직전에 울산 현대로 이적해버려 우승컵 3개를 들어올릴 기회를 놓쳤던 것.;; (부산 대우 로얄즈는 박선수가 울산으로 이적한 이듬해 1997년 3관왕 자리에 오른다.)
  • 박정배 선수가 대우 로얄즈에서 활약하던 1994년, 대우는 야심차게 구상범 선수를 영입해 대표급 수비 라인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_-; 박정배, 구상범 두 선수 모두 미국 월드컵 출전을 위한 전지훈련에 동원되며 리그에서 활약할 시간이 부족했던 탓에 대우는 94시즌 국가대표 수비 라인을 보유하고도 리그 6위를 기록한다.[2]
  • 울산 현대 시절인 1997년 11월, 제 17회 아시안클럽컵에서 서동명 선수의 퇴장으로 골키퍼 장갑을 낀바있다. 하필 이 경기에서 울산 현대는 김병지의 월드컵 4회연속 진출기념 청와대 축하연 참가로 서브 골키퍼를 두지않은 상황이었고, 서선수의 퇴장에 땜방으로 박정배 선수에게 골키퍼를 맡긴것. 그러나 박선수는 약 30분동안 3실점을 했고 결국 울산은 가시마 앤틀러스에게 1:5 대패를 당했다.[3]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이 골장면을 다시 보려면 http://footballk.net/phpBB3/viewtopic.php?f=18&p=4178#p4178 요 링크를 클릭해서 3분 10초경을 보면된다. 박정배의 패스 하나로 독일 수비진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이 놀라울 정도.
  2. 당시 리그 최하위 (7위) 팀은 전북 버팔로였지만, 전북 버팔로의 상황을 생각하면 사실상 대우 로얄즈가 최하위나 다름없었다.
  3. 이 에피소드는 K리그 카투니스트 휴지맨이 역대급 멍청한 플레이편에서 재조명한바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