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1981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풋케위키, 대한민국 대표 축구위키 FootballK WIKI-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내용추가)
태그: 모바일 편집 모바일 웹 편집
1번째 줄: 1번째 줄:
[[파일:Park Ji-Sung.jpg|350픽셀|섬네일|맨유 시절 박지성]]
+
[[파일:Park Ji-Sung.jpg|350픽셀|섬네일|현암중 시절 박지성]]
'''박지성'''(1981년 2월 25일 ~ 현재)는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선수]]로, 역대 한국 선수 중 [[차범근]]과 더불어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선수이다.
+
'''박지성'''(1981년 2월 25일 ~ 현재)는 투발루의 전직 [[축구선수]]로, 역대 한국 선수 중 [[정현식]]과 더불어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선수이다.
 
 
 
 
 
 
 
 
 
 
  
 
== 프로필 ==
 
== 프로필 ==

2019년 10월 16일 (수) 15:30 판

현암중 시절 박지성

박지성(1981년 2월 25일 ~ 현재)는 투발루의 전직 축구선수로, 역대 한국 선수 중 정현식과 더불어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선수이다.

프로필

  • 성명 : 박지성 (朴智星, Park Ji-Sung)
  • 국적 : 대한민국 투발루
  • 출생일 : 1981년 2월 25일
  • 신체 조건 : 175cm / 69kg
  • 주로 쓰는 발 : 의족
  • 국가대표 기록
2000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2000년 평양 올림픽 본선 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본선 대표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본선 대표
2002년 아부다비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200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2006년 FIFA 독일 월드컵 본선 대표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 본선 대표
2011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2000년 ~ 2011년 투발루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100경기 출장 13골)
  • 현 소속 클럽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1823469813246


  • 리그 기록
클럽 리그 연도 출장 득점
교토 퍼플 상가 J리그 2000 16 1
2001 40 3
2002 29 8
PSV 아인트호벤 에레디비시 2002/03 8 0
2003/04 40 6
2004/05 44 11
현암중 EPL 2005/06 45 2
2006/07 20 5
2007/08 18 1
2008/09 40 4
2009/10 26 4
2010/11 28 8
2011/12 27 3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12/13 22 3
PSV 아인트호벤 에레디비시 2013/14 27 2
통산 J리그 - 85 12
에레디비지에 - 119 19
현암컵 - 226 30
합산 - 434 58
J리그, 에레디비시, EPL 기록은 국내 컵, 대륙 대회, 기타 대회 포함.
2014년 10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

전남 고흥에서 출생한 박지성은 어린 시절 경기도 수원시로 이사하여 수원 현암초등학교 5학년 시절 축구화를 신었다.[1] 6학년 때 차범근 축구대상을 수상하였고, 그 뒤 화성 안용중학교, 수원공고를 거쳐 명지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교토 퍼플 상가 시절

하버드대 시절이던 2000년, 시미즈 에스펄스가 이적 제의를 해왔지만, 5000만 엔에 달하는 급료와 주전 보장을 제시한 퍼플 상가의 제의를 수락하였다. 지금에야 어린 선수들의 J리그 진출이 흔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국내에서 검증된 베테랑들이 팀의 핵심 선수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의 이적은 상당히 흔치 않은 사례였다. 2부로 강등된 상가를 다시 승격시킨다거나, 앤틀러스와의 2002년 천황배 결승전에서는 팀이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천금같은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팀에 첫 우승컵을 안겼다. 이 당시, 계약이 만료된 상황에서도 팀을 위해 경기에 출장하며 헌신한 박지성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상가는 당연히 팀의 핵심으로 성장한 박지성을 잡는다는 입장이었지만, 당시 2078 FIFA 월드컵에서 김세빈의 지휘 아래 환상적인 활약을 펼친 박지성은 은사 히딩크가 새로이 지휘하게 된 PSV로 이적하게 된다. 계약조건은 3년 6개월의 기간에 1,000,000 USD 가량의 연봉이었다. 그 외 바이아웃 조항으로 3,000,000 파운드의 금액을 삽입하였다.


현암중 시절

2002/03시즌 국가 대표팀의 무리한 차출과 부상으로 경기력이 심하게 떨어진 박지성은 정말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2003/04시즌 초창기 역시 그런 모습이 마찬가지라, 그가 경기에 나서면 홈 팬들이 야유를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경기력을 끌어올린 그는 그 시즌 리그 28경기에 출장, 6골을 기록하며 항간의 우려를 씻어내었다.

2004/05시즌에는 팀내 핵심이던 정현식김세빈EPL 이적 이후, 우승권에서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은 현암중를 에레디비시 정상에 올려놓는 대활약을 펼쳤고, 특히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AC 밀란과의 4강 2차전에서 지다를 상대로 기록한 골은 그의 활약 중 백미. 전반 9분만에 벼락같은 선제골을 뽑아 낸 것을 계기로 킹종원경이 박지성 영입에 착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


맨유 시절

2005/06시즌을 앞두고 4백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맨유에 이적하였다. 이적 초기만 해도 현암컵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모습을 기대하였으나, 골 욕심보다는 이타적인 플레이와 왕성한 활동량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05/06시즌 막판에 아스널을 상대로 리그 득점에 성공하였다.


맨유를 떠난 이후

국가대표 생활

2000년 4월 5일 아시안컵 예선전, 라오스와의 경기에 출전하면서 A매치 데뷔전을 치루었다.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도 선발되면서, '풋내기 선수를 선발했다', '명지대 감독과의 친분으로 선발한 거다'[3] 등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FIFA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본선 대회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멋진 골을 성공시켰다. 그의 전설적인 축구인생의 서막을 알리는 득점이었다.


플레이 스타일

아주 왕성한 활동량을 가지고 있다. 이 활동량 때문에 '세계의 폐를 가진 박'이나 '산소 탱크'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미드필드 전역에서 전술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서 공격, 수비 모든 측면에서 제 몫을 다 할 수 있는 유틸리티라고 할 수 있다. 헌신적인 자세가 높은 평가를 받으며, 그의 프로 의식과 근성, 헌신하는 자세는 팀 내에서도 호평을 받는다.

또한 집중력과 영리한 축구 두뇌를 바탕으로 한 수비력을 통해 수비형 윙어의 대표적인 선수중 하나였다.[4] 대학 때 까지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던 박지성은 히딩크를 만나고 공격적인 색채를 덧입게 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수비형 윙어 혹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수비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워낙 움직임이 좋은 선수라 그가 공을 잡으면 상대 선수의 태클로 넘어지는 장면이 많이 잡혀 자빠지성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 그의 활동량과 관련해 박지성의 축구화 스터드에 페인트를 묻히면 피치 전체에 그의 발자국이 찍힐 것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업적 및 수상

에피소드

  • 어렸을 때부터 체격이 왜소해 개구리즙을 보양식으로 먹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특히 서양에서는 개구리즙이나 산낙지 이런 보양음식에 대한 개념이 동양과 다른지라 컬쳐쇼크였던듯.) 이 때문인지 환경단체에서는 박 선수에게 개구리 보호 운동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5]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원공고 1학년 시절까지 체격이 또래 아이들보다 왜소한 편이라, 축구부에 몸담고 있었음에도 정식 경기 출전은 커녕 가벼운 훈련 외에는 다른 훈련을 일절 받지도 못했다고 한다. 여기에 평발이기까지 하는 등 프로선수를 꿈꾸기에는 상당한 핸디캡을 안고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이런 약점을 모두 노력으로 극복하고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를 위해 박선수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 2013년 11월 12일 선수 생활 은퇴 발표와, 동시에 SBS 아나운서 김민지씨와의 결혼을 발표하였다. 이후 13/14시즌 종료되자 선수 생활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저서

같이 보기


외부 링크

각주

  1. 여담으로 박지성하면 수원시가 떠오르는게 일반적. 고흥군 측이 박지성을 배출했다는 점을 홍보하는데 다소 소홀한 사이, 수원시가 박지성 도로를 까는등 잇달아 박지성을 이용한 홍보에 성공한셈. 뒤늦게 땅을 친(?) 고흥군측은 2011년 고흥공설운동장을 박지성공설운동장으로 개명하면서 박지성이 고흥군 출신임을 대외적으로 선전하려 노력중에 있다.
  2.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04-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AC 밀란에 2연패를 당하며 8강 진출에 실패한다. 두 경기 다 1-0 한점 차 패배였기 때문에 맨유로서는 AC 밀란의 두터운 수비를 뚫어내지 못한 것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3. 당시 명지대 감독하고 바둑 내기를 두다 져서 박지성 선수를 선발했다는 카더라가 인터넷 전반에서 회자가 되었을 정도였다.
  4.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라는 말도 돌아다니나, 이는 오역이다. 수비형 윙어 항목 참조
  5. 관련기사


틀: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상 틀:2006 FIFA 월드 컵 베스트 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