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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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사샤.jpg
성남 시절 사샤

사샤 오그네노브스키 (1979년 4월 3일 - 현재)는 오스트레일리아마케도니아 국적의 수비수로, 2009시즌부터 2012년까지 K리그에서 뛰었다.



프로필[편집]

  • 본명 : 사샤 오그네노브스키(Saša Ognenovski)
  • 출생일 : 1979년 4월 3일
  • 신체조건 : 195cm / 95kg
  • 주로 쓰는 발 : 오른발
  • 유스 클럽 : Preston Lions
  • 현 소속 클럽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Teamlogo sifc.png 성남 일화 천마 2009 31 0 1 0 11 2
2010 29 0 3 0 7 1
2011 28 0 5 0 10 1
2012 10 1 0 0 2 0
통산 (K리그) - 98 3 10 1 30 4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2년 7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아마추어 생활[편집]

1997년 빅토리아 주리그인 빅토리아 프리미어 리그프레스턴 라이언스에서 성인 무대에 발을 딛은 사샤는 2000년까지 햇수로 4년 간 88경기에 나서 8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 뒤 빅토리아 주의 강팀 멜버른 나이츠로 이적하여 2000년부터 2002년까지 51경기에 나선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나이츠는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의 전국 리그인 내셔널 사커 리그 (National Soccer League)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지만 아쉽게 탈락하고 만다. 이렇게 당시 자국에 프로 리그가 없던 상황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쳐 타 국가에서도 관심을 받게 되고, 사샤는 2002-2003시즌을 앞두고 풋볼 리그 그리스 2 (3부리그 격) 남부 팀인 파나차이키 (Panachaiki)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스 이적 후에는 적응 문제인지 컵대회 포함(2경기) 4경기에 출장하는 것에 그쳤고, 단 한 시즌 만에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오게 된다.

돌아온 그를 맞아 준 것은 성인 무대의 시작 팀인 프레스턴 라이언스. 그는 라이언스에서 2003-2004시즌 동안 26경기에서 5골을 득점하며 팬들에게 다시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좋은 활약을 펼쳤음에도 이적하게 된다. 이적한 팀은 이탈리아 계 클럽인 포크너-위틀시 블루스.[1] 블루스로 이적해서 16경기 2골을 득점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2] 그리고 그는 당시 출범한 첫 프로 리그인 현대 A-리그 클럽 퀸즐랜드 로어의 제의를 받아 프로에 입성한다.


프로 입문과 성공[편집]

2006/07시즌 프로에 발을 내디딘 사샤는 첫 시즌 컵 포함 22경기에 출장하며 프로에 연착륙했지만 팀은 A-리그 프리 시즌 컵 꼴지에 리그 5위를 기록하는 등 중하위권 신세를 면치 못했다. 2007-2008시즌에는 26경기에 나서 3골을 득점하는 등 프로에 안정적으로 적응하는 모습이었는데, 그의 활약 덕에 당시 약팀으로 분류되던 브리즈번(당시 퀸즐랜드)은 2007/08시즌 프리 시즌 컵 3위를 기록하였고, A-리그 프리미어십 4위로 A-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해서 3위에 랭크되는 등 성공 가도를 달린다. 그의 실력을 눈여겨 본 빅 클럽들이 구애를 계속하게 되고, 그는 결국 아들레이드 유나이티드의 제의를 수락하여 힌마쉬 스타디움에서 뛰게 되었다.

당시 밀란 슈삭 등 유망주들을 대거 이적시키면서 생긴 수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영입인 듯 하다. 그는 아들레이드로 이적하여 2008-2009시즌 리그 23경기 1골, AFC 챔피언스 리그 11경기에 출장하면서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였다. 사샤의 활약에 힘입어 아들레이드는 A-리그 프리미어십 2위, A-리그 챔피언십 2위, 2008 AFC 챔피언스 리그 2위 등 인상적인 라인 성적을 남긴다. 성공적인 나날을 보내던 사샤는 2009시즌, AFC아시안 쿼터의 시행에 따라 성남 일화 천마의 계약 제의를 받고 한국행을 결정한다. 선콥 스타디움에서 뛰던 당시 기술 코치로 일하고 있던 신태용 감독의 영향이라는 듯.


한국 생활[편집]

당시 아시안쿼터로 K리그에 입단한 아시아 선수 중 가장 성공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적 첫 해부터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압도적인 신체 조건을 활용한 세트 피스 득점은 상대를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이적 첫해 31경기(컵 포함)에 나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FA컵K리그 챔피언십 2위에 기여한다. [3]2010년에는 외국인 선수임에도 이례적으로 주장으로 선임되어 리그 25경기 3골, 챔피언스 리그 11경기 2골을 기록하며 성남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진두지휘하였다. 라인을 타던 그가 커리어 첫 우승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2010시즌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AFC 챔피언스 리그 MVP, AFC 올해의 선수 상을 싹쓸이하며 아시아 전역에 그의 이름을 날렸다.

2011시즌에는 28경기에 출장, 5골을 기록하며 프로 커리어 사상 최다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4] 그의 활약 덕분에, 성남은 마계대전으로 화제를 모았던 2011 KFA 컵 결승전에서 천안에서 성남으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 첫 FA컵 타이틀을 따낸다. 한국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사샤는 2010시즌 사커루의 일원이 되었고, 2011시즌에는 2011 카타르 아시안 컵 준우승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콩라인 어디 안 간다.. 2012년에는 기량의 노쇠화가 눈에 띄게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성남의 든든한 최종 수비라인을 구성하며 활약하다 2012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카타르 축구팀의 제의를 받아 성남을 떠나게 되었다.


K리그를 떠난 이후[편집]

움살랄에서 2012/13시즌 18경기ㆍ2013/14시즌 11경기를 출장하였던 사샤는, 2014년 2월 시드니 FC로 이적하며 호주 무대에 복귀하게 된다. 시드니에서는 부주장을 맡아 2014/15시즌까지 1년 반 가량 활약한뒤 퇴단하였다. 이후로는 선수 생활을 정리한듯.


이적 논란[편집]

사샤는 유럽으로 상당히 가고싶어 하였고, 그것 때문에 구단도 재계약 때 바이아웃을 낮춰주면서 계약하는 등 선수의 미래에 신경을 써 주었다. 하지만 사샤가 당시 수비진의 강화를 노리던 FC GS의 제의에 합의했다는 기사가 떴고[5], 사샤는 팬들 뿐만 아니라 스승 신태용 감독에게까지 까이면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사샤의 이적은 성사되지 않았고, 사샤는 하루하루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경기에 나섰다. 결국 팀의 FA컵 우승을 이끌어 내면서 까임은 많이 종식된 상황.


플레이 스타일[편집]

피지컬 플레이를 즐긴다. 강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몸싸움이나 상대보다 앞서 공중 볼을 차단하는 헤더도 좋다. 경고와 퇴장이 너무 잦다는 것이 흠인데, 첫 시즌엔 심판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손 쳐도 스피드 때문인지 손을 쓰거나 위험한 태클을 하는 장면이 많은 듯. 하지만 리더십이나 수비 조율 등 능력도 좋다.


에피소드[편집]

  • FC GS 이적 논란 직후에도 탄탄한 프로의식을 바탕으로 흔들림없이 성남의 수비진을 책임져 많은 호평을 받았다.


개인 수상 및 업적[편집]

클럽[편집]


개인[편집]


갤러리[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이 클럽 외에도 브룬스윅 지브라스(당시 브룬스윅 유벤투스), 박스 힐 유나이티드(당시 박스 힐 인테르, 이상 빅토리아 프리미어 리그), 브리즈번 시티(브리즈번 프리미어 리그) 등 이탈리아 계 클럽이 많이 존재한다.
  2. 이 팀은 2006년을 끝으로 해체하고, 기업 벌린(Bulleen)과 파트너십을 체결, 2007년 위틀시 지브라스로 재창단한다.
  3. 이 해 성남은 FA컵, K리그 챔피언십, R리그, 유스팀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며 준우승 4연패라는 홍진호 스러운 기록을 세운다. 콩까지마
  4. (아마추어 시절까지 합치면 2003-2004시즌 프레스턴 라이언스 시절 26경기 5골이 최다
  5. GS는 선수 이적 시 논란의 중심이 자주 되고는 하는데, 2011시즌 종료 후, 김주영 이적 논쟁에서 결국 승리하면서 젊고 재능있는 수비수 영입이라는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