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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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샤샤1.jpg
부천 시절 샤샤

샤샤 (1964년 10월 6일 ~ )은 러시아 국적의 골키퍼이다. K리그에서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활약하였으며, K리그 등록명샤샤1이다.



프로필[편집]

  • 성명 : 알렉셰이 포드쉬발로프 (Aleksandr Podshivalov)
  • K리그 등록명 : 샤샤1
  • 생년월일 : 1964년 10월 6일생
  • 신체 : 190cm / 80kg
  • 출신 국가 : 구소련ㆍ스베르들롭스크 주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실점 경고 퇴장
유공 코끼리 유공 코끼리 1994 2 0 2 0 0
1995 35 0 41 1 0
부천 유공 코끼리 부천 유공 코끼리 1996 26 1 38 1 0
부천 SK 부천 SK 1997 10 0 13 0 0
통산(K리그) - 73 1 94 2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0시즌 종료 시점 기준.


요약[편집]

1990년대 초반부터 구소련 최고리그에서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혔던 선수로 구소련 시절부터 팀동료이자 경쟁자였던 샤리체프(신의손)와는 K리그에서도 인연을 이어갔으며, K리그의 역대 최고 외국인 공격수로 꼽히는 샤샤2와는 다른 인물이다.


구소련 리그 시절[편집]

샤샤 선수는 구소련 스베르들롭스크 주 출생으로 자신의 연고팀인 FC 스베르들롭스크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0 ~ 1983) 1984년 당시 구소련 최고 리그의 중하위권 팀으로, 지금의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을 연고로 하는 'FC 아라한 예레반' 으로 이적하여 7년동안 붙박이 선발로 활약하였고, 이후 1991년 토르페도 모스크바로 이적하면서 샤리체프와 번갈아며 토르페도의 골문을 지켰다. 샤리체프와 샤샤가 골문을 지키던 당시 토르페도 모스크바의 실점율은 리그 최저 수준을 자랑했다.[1] 샤샤는 1991시즌 구소련 최고리그 올해의 골키퍼에 수상되는 영예도 안으면서 구소련 최고리그 정상에 올라섰지만, 아쉽게도 1991년을 끝으로 구소련 최고리그는 막을 내렸다.

1992시즌을 앞두고 샤샤의 팀동료였던 샤리체프는 그동안 누적되었던 불만[2] 등을 이유로 토르페도 모스크바를 떠나, K리그일화 천마로 이적하자, 이후 샤샤는 붙박이 주전골리로 토르페도 모스크바를 지키며 팀을 초대 러시아 FA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K리그 입단[편집]

구소련 리그 해체 이후에도 러시아 프로 리그에서 안정적인 활약을 보였던 샤샤는 1993년 처음으로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로 발탁돼 A매치를 치루었다. 이후 러시아 리그를 떠나 잠깐 이스라엘 프로 생활을 거치던 중이던 1994년 10월, 당시 K리그 유공 코끼리 감독이었던 발레리 니폼니쉬 감독이 일화 천마와의 우승 경쟁을 위해, 샤샤를 호출함에 따라 샤샤는 급작스레 K리그에 입단하게 되었다. 1994시즌 K리그 잔여 경기를 단 2경기 남겨놓고 샤샤를 급히 영입한 유공은 영입 발표를 한 바로 다음날, 샤샤를 주전 골리로 출전시켰을 정도. 데뷔전은 다름 아닌 對 일화전, 그것도 샤리체프와의 맟대결이었다. 이 경기에서 샤샤는 PK를 막아내며 2:0으로 유공의 승리를 이끌었고, K리그 데뷔전에서 철벽 샤리체프를 이겨버린 신예 골키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95시즌부터 96시즌까지 2년동안 샤샤의 활약은 샤리체프 만큼이나 돋보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경기 내용은 매우 좋았다. 당시 유공의 수비가 그다지 단단한 것은 아니었고, 윤정환이란 플레이메이커의 존재를 받쳐주기 위해 미들의 공격 성향이 매우 강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유공은 골키퍼의 부담감이 막중한 팀 중 하나였음을 감안할때, 이와 같은 부담감 속에서도 샤샤는 평균 실점율을 1점을 상회하는 안정된 활약을 펼치며 유공의 뒷문을 지켰다고 평가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샤샤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는데, 이는 1996년부터 실시된 희대의 골키퍼 외국인 제한 쿼터라는 제도 때문이었다. 96시즌부터 리그경기 일정 쿼터만 외국인 골키퍼가 뛸 수 있게 일방적으로 규정을 만들면서, 한창 활약중이었던 외국인 골키퍼들은 자신의 기량을 유지할 경기 출장 횟수를 유지할 수 없었고 이는 그대로 골키퍼 기량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샤리체프처럼 귀화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당대 외국인 골키퍼 대부분이 해외 이적을 택했는데, 샤샤도 이들과 같은 궤를 걸으며 97시즌 종료 후, 부천 SK를 떠났다.


K리그를 떠난 이후의 궤적[편집]

러시아로 돌아간 샤샤는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에서 2년을 더 뛰고 은퇴하여 2012년까지 FC 톰스크의 수석코치로 발레리 니폼니쉬 감독을 보좌한바 있다.


에피소드[편집]

파일:허당골.jpg
당시 윤정환의 패스로 실점을 허용한 김병지 선수가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 1997년 4월 26일, 당시 부천 VS 울산 경기 도중, 부천의 윤정환이 필드에 쓰러진 선수가 치료 받는 상황이라 울산이 볼을 라인아웃 시켰던걸 관례대로 부천 볼이나 다시 울산에 넘겨준다는 것이 윤정환의 힘 조절 실패로 울산 GK한테 패스한다는게 그만 그대로 골이 된적이 있었다. (옆의 사진이 그때 실점장면) 이에 대해, 니폼니쉬 감독은 부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려 울산에게 1골을 내줄 것을 지시했으나, 샤샤만은 이 지시를 듣지 못해, 부천 선수들이 왜 수비를 안하냐고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울산의 슈팅들을 막아낸 일화가 있다. 결국 감독이 샤샤를 잠깐 불러 자초지종을 얘기한 이후에야 실점을 허용. 결국 1:1로 경기가 끝났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91시즌에 구소련 최고리그 최저 실점팀이 토르페도 모스크바였다. (35경기 22실점)
  2.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당시 소련 올림픽대표 감독이었던 비쇼베츠는 토르페도 모스크바의 부동의 1선발이었던 샤리체프가 아닌 2선발 골키퍼를 대표로 발탁하면서 소련 국가대표를 달고 싶어했던 샤리체프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자신이 타지키스탄 출신이라 소련 대표가 못되는 것이라 생각한 샤리체프는 계약 만료 후 곧바로 해외 이적을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