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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소년 생활 ==
 
== 유소년 생활 ==

2015년 1월 21일 (수) 17:44 판

파일:서동현.jpg
강원 시절의 서동현

서동현(1985년 6월 5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2006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격수이다.


프로필

  • 이름 : 서동현
  • 출생일 : 1985년 6월 5일
  • 신체 : 188cm / 70kg
  • 국가대표 경력
2005년 유니버시아드 대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 대표
2008년, 201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5경기 출장 0골)
  • K리그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2006 26 18 2 2 1 0
2007 12 7 4 1 0 0
2008 35 22 13 2 7 0
2009 15 11 0 0 2 0
2010 12 10 2 0 4 0
강원 FC 2010 13 7 5 0 4 0
2011 28 15 4 1 6 0
SK 유나이티드 2012 43 20 12 3 5 0
2013 24 13 5 6 5 0
안산 경찰청 챌린지 2014 30 19 7 2 8 0
2015
통산(K리그) 클래식 - 208 123 47 16 34 0
챌린지 - 30 19 7 2 8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5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

강원도 홍천군 출신으로 양평중학교, 청평공고, 건국대학교를 나왔다. 어린시절 가난한 집안형편 때문에 신장이 184cm에 달하는데도 몸무게가 60kg 초반인 삐쩍 마른 체질이 되어버렸다고 한다.[1]


대학 생활

건국대학교에 입학한 서동현은 1학년때부터 이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득점왕을 기록, 이내 대학 공격수들 중에 잠재력이 가장 우수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2005년 추계대학연맹전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면서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대표팀으로 선발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자,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드래프트가 도입되기 직전 우선권 협상을 통해 서동현을 영입하게 되었다. 당시 서동현에 대한 평가는 '문전에서의 헤딩력과 드리볼 능력을 활용한 돌파에 이은 슈팅이 돋보이는 공격수. 또한 넓은 좌우 활동폭과 재치 있는 발재간으로 경기 내내 상대 수비에게 부담을 준다' 였었다.[2]


프로 생활

수원 입단

서동현의 첫 데뷔 경기는 FA컵 32강이었다. 당시 FA컵에서 숭실대학교와 맞붙은 수원은 후반 42분 서동현을 출장시켰는데 인저리타임에 멋진 쐐기골을 기록, 수원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런 활약을 통해 눈도장을 찍은 서동현은 2006년 4월 30일 경남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투톱으로 데뷔전을 치루게 된다. 하지만 풀타임을 뛰는 동안 슈팅 1개와 오프사이드 2개를 기록, 팀의 1-2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후 5월 5일 포항과의 홈경기에서 정성룡 골키퍼에 맞고 나온 공을 바로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차넣어 데뷔골을 기록하게 된다. (팀은 1-2 패배) 이후 2006년의 수원의 극심한 침체기 속에서도 꾸준히 주전 기회를 잡은 서동현은 수원의 주포로 활약하게 된다. 골이 많지는 않았지만 좋은 몸놀림을 보였던 서동현에 관심을 보인 핌 베어벡 감독은 자신의 국대감독 데뷔전에 서동현을 예비명단에 올리며 그를 테스트해보나 아쉽게 실전 명단 20명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후기리그에 수원은 이관우, 백지훈, 올리베라, 실바 등을 영입하여 분위기를 일신하였고, 서동현은 조커와 선발을 번갈아 가며 뛰며 활약하게 된다. 원톱 혹은 윙어로 출장하면서 수원의 PO 진출을 도왔으나, 핌 베어벡 감독의 느닷없는 선수 차출과 이로 인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서동현 선수는 자신이 노리던 신인왕도 우승컵도 놓친 채 2006년을 마감해야 했다. 2007년 2월 서동현은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U-23 올림픽대표팀에 선발되어 예멘전에서 교체투입되어 A매치 데뷔전을 치룬다. 그러나 그 후 올대에는 계속 선발은 되지만 경기 출장은 하지 못한 채 동계시즌을 마무리한다.

2007년은 그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는 해이다. 2006년에 비해 2골을 더 넣어 4골 1AS의 기록을 세웠지만 당시 신인인 하태균에게 밀려 벤치를 지키는 일이 잦아졌다. 출전횟수도 많이 줄어들어 2006년 컵대회 포함 26경기를 출장했으나 2007년에는 올대 차출 등의 여파로 12경기 출장에 그치게 된다. 게다가 신인인 하태균과도 별로 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하태균의 완벽한 골을 자신이 건드리는 바람에 오프사이드로 날려먹는다던가, 서로 패스를 안해줘서 결정적인 기회를 날리는 등 그다지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감독이 박성화로 바뀐 이후의 올대에도 계속 선발은 되었지만, 한동원, 박주영 등에게 밀리며 서동현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었다. 2007년 10월 31일, 포항수원은 챔피언 결정전 티켓을 놓고 다투게 된다. 차범근 감독은 서동현을 박성배 에두와 함께 선발 출장 시켰지만, 일정상의 불합리로 인해 무뎌진 감각으로 좀처럼 좋은 찬스를 잡지 못했다. 전반 6분 골을 기록했지만 오프사이드 처리된 이후 별다른 기회를 잡지 못하고 결국 포항에게 패배하며 리그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후 올대에 선발되어 박주영과 투톱을 이루는 등 활약했지만 골을 기록하지는 못한 채 서동현의 2007년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한다.


전성기

2008년은 서동현에게 있어서 눈부신 한해였다. 올림픽대표로서 스페인 전훈을 참가하고 온 서동현은 동계훈련에서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이며 차범근 감독을 흡족하게 했다. 2008년 3월 19일 SK와의 홈경기에서 세번째 골을 넣으며 리그 첫 골을 넣은 서동현은, 이어 열린 경남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연속골 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한껏 달아올은 서동현은 이어 열린 GS와의 컵대회 원정 경기에서 연속골을 터트리며 일약 수원의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4월 16일 부산과의 컵대회 홈경기에서 터진 라보나 킥은 서동현의 상승세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 서동현의 컵대회 3경기 연속골, 리그 4경기 연속 골 등 미친듯한 활약에 힘입어 수원도 리그 11연을 달리는 절정의 활약을 선보이며 리그를 지배하게 된다. 서동현의 활약에 박성화 감독은 베이징 올림픽대표팀 선발 명단에 서동현과 신영록을 올려놓고 저울질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박성화 감독은 청대시절부터 애제자였던 신영록을 포기하지 못하고 선발하면서 서동현은 예비 명단으로 이탈, 올림픽의 꿈을 접게 된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서동현을 선발, 월드컵 예선 시리아전에서 성인대표 데뷔전을 치루게 된다. 이어 북한과의 경기에서도 서동현을 교체 출장시켰으나 골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너무 잘나가서 문제였을까. 허정무 감독이 계속해서 A매치에 서동현을 부르기 시작하자 서동현의 좋았던 상승세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즈벡과의 경기에서 헤딩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무난한 활약을 보였지만, 리그에서는 현저하게 떨어진 골결정력을 보이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서동현의 부진이 이어지자 서포터즈 내에서도 서동현은 까야 제맛 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경기장 내에서도 서동현을 향한 야유를 보내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서동현의 플레이도 점차 위축되고 만다. K리그 컵대회 결승전에서 세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부진에 탈출하는가 싶었지만, 이어 부상을 당하면서 리그 후반부에 배기종과의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 조커로 출장했지만, 결정적인 골 기회에서 허공으로 슛을 날리면서 고개를 떨구고 만다. 비록 팀은 우승했지만, 서동현은 진심으로 기뻐하지는 못했다. 리그 35경기 출장 13골 2도움. 서동현이 2008년 기록한 성적이었다. 국가대표로도 많이 불려다니긴 했지만 정작 중요한 경기에서는 박주영, 이근호 등에게 밀리며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도 많이 아쉬움으로 남았다고 한다.


강원으로의 트레이드

2009년 서동현은 2008년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며 깊은 침체에 빠져들게 된다. 많은 선수가 빠져나간 수원은 예전과 같은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파트너인 에두는 잦은 부상으로 결장하자 서동현도 깊은 부진에 빠지게 된다. 2009년 4월 4일 상암에서 열린 GS와의 리그 경기. 1-0으로 뒤지고 있던 수원은 경기 종료 직전 천금과도 같은 기회를 잡는다. 골키퍼 박동석이 공을 펀칭한다는 것이 서동현의 발 앞에 떨어졌고, 골키퍼가 없는 골문을 향해 슈팅을 때렸지만 그 슛이 하필이면 수비수 박용호 발 앞에 걸리며 멈추게 된다. 경기는 결국 패배를 했고 서동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그 이후로 전성기때의 모습을 찾지 못한 서동현은 15경기 출장에 1AS라는 초라한 기록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2010년 서동현은 부산과의 홈 개막전에서 2골을 몰아넣으며 화려하게 부활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그 이후로 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며 차범근 감독의 속을 까맣게 타들어가게 했다. 볼터치도 슈팅도 예전의 모습을 전혀 찾지 못한 서동현은 상대 수비수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고, 수원 역시 주전 공격수들의 부진과 함께 최하위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결국 차범근 감독은 컵대회를 끝으로 사임하게 되고, 서동현의 수원에서의 운명도 이대로 끝난다. 2010년 7월 12일, 강원 FC박종진 선수와 1:1 트레이드 되었다. 前 숭실대 감독이었던 윤성효 감독이 수원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숭실대 시절 애제자였던 박종진 선수의 영입을 강력히 희망하였고, 강원 측은 김영후 선수의 군입대 이후 공백을 메워줄 검증된 스트라이커 영입을 위해 서동현 선수의 영입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강원 FC에 입단한 후, 막판 대폭발. 6경기에서 4골을 집어넣었으며 그 중 2골이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듯 했으나 안타깝게도 시즌이 종료되었다. 2011시즌도 2010시즌 막판의 상승세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현실은 시궁창 수준. 무엇보다도 강원 FC의 2011시즌 주장을 맡겼지만 주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자책이 시너지 효과는 커녕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하여 서동현 선수의 플레이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결국 김상호 감독대행은 서동현 선수의 주장직을 이을용 선수에게 승계하고 서동현 선수의 2군행을 지시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플레이 위축을 해결하고 오라는 의도. 이후 2경기 연속 골을 넣는 등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서동현을 비롯한 강원의 공격수들이 워낙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엇어도 별로 빛이 나질 않았다. 거기에 서동현 본인도 성남과의 경기에서 쇄골이 조각나는 큰 부상을 당해 시즌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다음 시즌을 지켜보는 수 밖에.. 그러던중 2011년 11월말 SK 유나이티드김은중 선수와 1:1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공격진의 중심을 잡을 경험많은 공격수가 필요했던 강원의 트레이드 의지가 엿보인다는 평가.



제 2의 전성기

SK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서동현은 7월 21일 22라운드 전남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등 급부활하여 2012시즌 12골 3도움을 올리며 2008년 이후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일각에서는 드디어 서동현이 전성기 포텐을 터뜨렸구나 하는 분위기지만, 정작 SK 팬들은 '그렇게 많은 기회를 몰아주었건만, 12골 밖에 못넣었다' 고 평가를 다소 절하하는 분위기다.

2014시즌을 앞두고 안산 경찰청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수행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

포지션은 오른쪽 윙어 혹은 톱으로의 기용을 주로 한다. 강원에서는 주로 김영후와 2톱을 이루거나 정경호와 3톱을 이루면서 출장하는 경우가 많다. 헤딩, 드리볼, 개인기, 슈팅 모두 평균 이상의 기량을 보이나, 일단 한번 실수를 하기 시작하면 흔들림이 심한것이 단점. 또한 쉬운 찬스에서는 골을 넣지 못하고 어려운 찬스에서는 골을 넣는 희한한 움직임을 많이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도 움직임 자체는 좋은 편이기 때문에 수비수들이 내버려 두기에는 상당한 위협이 되는 선수.


에피소드

  • 2008년 괴물같은 활약을 보였을 때 한 외국인 서포터가 서동현 추꾸쵼재 입니다 라는 자작곡을 만들어 부르는 것을 누군가가 동영상으로 올리면서 서동현의 별명은 '축구천재'가 되었다. 본인은 이 별명에 대해서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지 2009년 한창 부진할 시기에 자신의 싸이월드에 장문의 글을 올리면서 '저는 축구천재 같은게 아닙니다' 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강원으로 이적하면서 강원 프론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축구천재' 라며 홍보를 하고 있어서 '축구천재'라는 별명은 좋든 싫든 계속 따라다니게 될 것 같다.
  • 서동현의 팬클럽 이름은 레인메이커이다. 서동현의 별명이기도 한데 '단비 같은 골을 넣기 때문에 레인메이커' 이라고 하는데 사실인지..
  • 골을 넣고 난 이후에 다양한 세레모니를 선보여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주로 했던 것이 골을 넣고 옷깃을 세우는 세레모니를 많이 했는데 수원의 대선배인 박건하의 전매특허이기도. 한 때 룸메이트인 이관우와도 친해서 잘나가던 시기에 함께 세레모니를 연구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강원에서 데뷔골을 넣고 난 이후 강원 서포터즈 앞에서 '시건방춤'을 선보여 많은 사랑을 받기도.
  • 2008년 부산의 홈경기에서 절묘한 라보나킥으로 골을 성공시켰는데 그 때 서동현이 인터뷰에서 '매일 EPL을 보면서 연구했다' 라는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2008년 잘 나가던 시기에 유로 2008에서 스페인이 우승하면서 스페인 선수들이 일반인 들에게 널리 알려지자, 같은 팀 동료인 신영록과 함께 '한국의 비야'로 불리기도 했다.
  • 수원에서의 마지막 경기는 그의 리그 100번째 경기이기도 했다. 비극으로 끝났지만..


경력

같이 보기


참고

  1. 어린 시절 기억때문에 내성적인 성격이 되버린것 아닐까 추측해본다.
  2. 참고로, 당시 건국대학교 축구부 감독이었던 김철 씨는 서동현 선수가 수원에 입단하던 시기, (2005~2008) 학부모로부터 자금을 상납받아 프로팀 스카우터를 회유, 높은 계약금에 대학 신인들을 영입하도록 유도했다가 적발당했다. 그 결과 김철수원 삼성 블루윙즈 스카우터 정규풍 씨 등이 배임수죄와 금품수수 등으로 구속 및 불구속 입건되었고, 관련자로 S 선수가 거론된 바 있다.
    관련기사 -> 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breaking/view.html?cateid=1027&newsid=20071108152616749&p=yonh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