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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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손형선.jpg
LG 치타스 시절의 손형선(우)
좌측의 선수는 신태용이다.

손형선(1964년 2월 24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86년부터 1993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수비수이다. 선수 생활 은퇴 이후에는 전남 드래곤즈의 스카우터, 2군 감독, 광양제철고 축구부 감독 등을 역임하였으나, 2010년 고교 챌린지리그에서 포철공고와 광양제철고 간 승부조작 사실이 탄로나면서 지도자 자격 무기한 정지 징계를 받았다.


프로필

  • 이름 : 손형선
  • 출생일 : 1964년 2월 24일
  • 신체 조건 : 182cm / 74kg
  • 국가대표 경력
1980년 ~ 1982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1985년 ~ 1987년 대학선발 및 유니버시아드 대표
1988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88년 ~ 1989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1경기 출장)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대우 로얄즈 1986 27 2 1 0 2 0
1987 24 2 1 0 2 0
1988 23 4 3 1 1 0
1989 34 3 1 1 2 0
포항제철 아톰스 1990 23 1 1 4 1 0
1991 21 9 0 0 3 0
LG 치타스 1992 20 1 1 0 6 0
1993 10 3 0 0 1 0
통산 (K리그) - 182 25 8 6 18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


유소년 생활

숭의실고 (현 숭의고등학교) 시절부터 청소년대표에 곧잘 발탁될 정도로 학원축구계의 간판 수비수로 이름이 높았다. 당시 보기드문 180 중반대의 체격으로 공격 가담 능력도 좋았고 리딩 능력도 뛰어났다는 평가. 한양대학교에 진학해 이회택 감독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수비수로 조련을 받은 손형선 선수는, 2학년부터 3년 내리 대학 선발과 청소년대표로 발탁되어 활약했다.


K리그

대우에서의 대활약

한양대 졸업후, 손형선 선수는 강태식, 유동관 선수와 함께 포항 제철에 입단하기로 예정돼있었다. 당시 포철은 한양대학교에 연간 4천만원씩 지원하며 선수 지명 우선권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입단 논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던 것. 그런데 돌연 대우 로얄즈 측에서 손형선 선수를 잡기위해, 한양대학교 측에 로비를 하면서 협상 테이블은 포철에서 대우측으로 순식간에 넘어갔고 결국 손형선 선수는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대우 측의 스카우트는 적절했다. 손형선 선수는 데뷔 시즌 24경기를 선발 출장해 2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풀타임 활약하며 정용환, 김판근, 이재희 선수와 함께 철벽 수비라인을 구성하는데 성공하였고, 2년차인 1987년에는 2위로 바짝 대우를 추격하던 유공 코끼리를 상대로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 대우의 우승을 견인하는 등 기여도 만점의 활약을 보였다. 여기에 3년차인 1988년에는 K리그 대상 시즌 베스트 11 수비수 부문 선정과 감투상 수상등 수비수로 오를수 있는 정점까지 도달하며 K리그 대표 수비수로 활약하였다.


뜻밖의 트레이드

그러나 1989년 1시즌 개인 최다 경기 출장 기록 (34경기)을 세우며 활약하던 손형선 선수에게, 1989 시즌 종료 후 포항 제철로 트레이드된다는 뜻밖의 소식이 전해지게 된다. 이유인즉슨, 포항 제철대우 로얄즈현대 호랑이 측에 각각 1억 2천만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지불하면서 데려갔던 김종부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자 포철측은 김종부 선수를 다시 대우나 현대 측에 양도하겠다는 의사를 보였고, 여기에 대우는 이차만 감독이 적극적인 승낙 의사를 보이면서 협상을 진행해, 대우의 손형선 선수에 2천만원을 얹어 김종부와 트레이드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하였던 것이다.



제 아무리 천하의 김종부라지만, K리그에서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던 스타 플레이어와 K리그 대표 수비수에 현금까지 얹은 트레이드에서 손형선은 철저히 조연에 불과했고, 대우의 전력외 선수인 것처럼 언론에 그려졌다.. 당시 수비수에 대한 낮은 평가, 국가대표 양성소에 불과했던 K리그의 위상을 가늠케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언론의 보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손형선 선수는 포항 제철에서 대활약하였고, 김종부 선수는 대우에서도 1990년 후반기 반짝 활약을 제외하고 출장 횟수가 격감하면서 비운의 스타라는 꼬리표를 붙이기 시작하게 된다.


또다시 트레이드

1990년과 1991년 포항 제철에서 대활약하던 손형선 선수는 1991년 12월 또다시 트레이드되어 LG 치타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미드필더 유망주였던 전경준을 확보하기 위한 포철 이회택 감독의 의도에 의한 트레이드였던것.



LG 치타스로 이적해 2년간 더활약한 손형선 선수는 1993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은퇴 이후

LG 치타스에서 은퇴 이후, 군복무까지 마친 손형선 씨는 선수 생활 정리후 고향인 구례군 인근에 전남 드래곤즈가 창단되면서 전남 코치로 입단,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전남 드래곤즈의 유스팀인 광양제철고 육성에 힘쓰면서 유소년 축구계의 대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10년 9월 고교챌린지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승부조작 파문이 터지면서, 9월 16일 대한축구협회광양제철고 감독이었던 손형선 씨와 포철공고 감독 박형주 씨에게 무기한 지도자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고교 축구에 일상화된 승부조작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으로, 2011년 여름 K리그 승부조작이 터지면서 새삼 다시 주목받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

에피소드

경력


같이 보기


외부 링크

[1] ('승부조작 논란' 광양제철-포철공고 감독, 무기한 자격정지)


참고


틀:K리그 1988 베스트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