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의 저주

신인왕의 저주 는 역대 K리그 신인왕 수상자 중 상당수가 생각보다(?) 성공적인 프로 생활을 보내지 못한 점을 지적하는 용어이다.


대표적인 신인왕의 저주 케이스편집

빠른 연도 순으로

데뷔 시즌 17골을 몰아치며 K리그 신인왕K리그 득점왕을 동시에 거머쥔 선수였으나, 이후 컨디션 난조와 잦은 부상, 현대 호랑이차범근 감독 부임 이후의 전술 부조화 등으로 다시는 데뷔 시즌의 커리어를 되찾지 못하고 7년만에 은퇴했다. 통산 31골 13도움 기록.[1]

나름 준수한 활약도를 보이며 울산 현대에서만 10년을 뛴 베테랑이었지만 어찌된게 항상 울산 현대 레전드하면 김현석만 기억되고 송주석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후 지도자 생활도 김현석 씨는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있지만, 송씨의 경우는 뭐하고 사는지 근황조차 찾기 힘들어질 정도로 세간에서 잊혀졌다.[2]

정광석 선수와 더불어 몇안되는 수비수 신인왕이었으나, 이후 안익수, 박광현, 이영진, 겐나디 등 빼곡했던 일화 천마 수비진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로테이션 멤버로만 활동하다 은퇴하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는 등, 많은 기대를 받던 선수였으나 K리그 드래프트 거부 등으로 진통을 겪은 뒤 간신히 대우 로얄즈에 입단해 전성기 때의 기량을 되찾는데는 실패했다. 1993년 신인왕 수상 이후 별다른 활약이 없다가 1995년 군입대를 결정 전역 후 2년을 더 뛰고 4시즌만에 은퇴하였다.

1997년 대전 시티즌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신인왕을 거머쥐었으나, 1998년 12월 교통사고를 당했고 이후 사고 휴유증으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빨간머리를 휘날리며 스피드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공격수. 부천 SK의 황금 미드필더진이 만들어준 신인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부천 미드필더 진의 붕괴 이후, 이성재 선수도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한채 조용히 은퇴하였다.

이영표 선수와 신인왕 경쟁을 했던 선수로 잘 알려져있다. 그러나 신인 시절 몸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주전으로 기용되면서, 툭하면 부상을 당하는 몸상태가 되고 말았고, 결국 그 여파를 극복하지 못한채 은퇴하였다.

포항에서 신인왕을 수상할 때까지는 좋았지만, 이후 경남 FC, 수원 삼성 블루윙즈, SK 유나이티드 등을 떠돌면서 다시는 신인 시절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결국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수행한 뒤 조용히 은퇴하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1.5군으로 오랜 시간 활동하였으나, 팬들의 박한 평가를 받았다. 결국 수원을 떠나 연변 창베이 FC로 이적하면서 포텐을 폭발하는듯 했지만 1시즌 반짝 활약으로 끝났고, 중국 슈퍼 리그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다만 아직까지 현역 선수이기 때문에 차후 반등할 가능성은 있다.

신인왕 수상 후, 한동안은 잘 나갔으나 2010년 월드컵 본선 무대 발탁 이후로 겉잡을 수 없이 폼이 무너져 FC GS 2군으로까지 전락했다. 이후로도 신인 시절 폼을 회복하지 못한채 여러 팀을 떠돌다 2016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신인왕의 저주 원인 (?)편집

다른 여타 상들과 달리, K리그 신인왕은 프로 데뷔 1년차일 때만 수상할 수 있었다. 즉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단 1번만 수상할 수 있는 상인셈. 이 때문에 신인왕이 되기 위한 경쟁이 생각보다 선수들 사이에서 치열했고 감독들도 신인왕이 될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들에게는 페널티킥이나 동료 선수들의 킬패스를 몰아줄 것을 주문하는등 신경을 상당히 써주곤 했다. 하지만 이런 경쟁심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선수들은 자신의 몸상태[3]를 고려하지 않고 심지어는 부상을 당했는데도 신인왕 욕심에 이를 숨기고 억지로 출장을 감행하는 경우도 생겼다. 결국 어찌어찌 신인왕은 차지했을지 몰라도, 2년차부터는 상대 수비수들의 견제가 부쩍 늘게 되고 동료 선수들의 패스 몰아주기도 없어진데다 몸상태도 밸런스가 무너지거나 부상병동화되는 등 여러 악재가 복합적으로 터지면서 2년차 징크스를 겪거나, 심지어는 몸상태 자체를 다시는 데뷔 시즌때의 그것으로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K리그 연맹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였는지, 2013년부터는 K리그 영플레이어상으로 개편하면서 신인왕의 저주도 슬슬 사라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참고편집

  1. 즉, 데뷔 시즌에 자신의 통산 득점 60% 가까이를 쏟아넣었다는 이야기다.
  2. 김현석 선수도 1990년 데뷔해 신인왕 후보로 막판까지 송주석 선수와 경합을 벌였으나 신인왕 투표에서 6표차로 고배를 마셨다. 비록 신인왕은 뺏겼지만, 나머지 부문에서는 모두 김현석 선수가 송주석을 압도하고 있으니 나름 복수한셈!?
  3. 프로 초년생들은 봄부터 겨울까지 풀타임 리그를 처음으로 뛰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리그 개막 초반에는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다, 여름이 되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활약도가 처지는게 보통인데 이 때 억지로 체력을 길러 활약도를 유지하겠다고, 웨이트를 늘리는등 과격하게 몸을 굴리다 밸런스가 무너지는게 경우가 다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