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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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그룹(Ssangyong Group, 雙龍─)은 쌍용양회를 모기업으로 하던 기업집단이었다. 창업자 김성곤과 세아들에 의해 운영되었으나 1997년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계열사가 매각되었다. 현재는 한앤컴퍼니에 편입되었고, 8개 회사만 남아있다.


역사[편집]

개요[편집]

1913년 대구 달성군에서 출생하여 대구고보(경북고), 보성전문학교(고려대)를 나와 대구상공은행에서 은행원 생활을 하던 김성곤(金成坤)이 1939년 일본인이 운영하던 대구 칠성동의 비누공장인 송전석감(松田石鹼)을 인수하여 삼공유지(三共油脂)합자회사를 설립하여 이를 모태로 성장 발전한 그룹이다. 김성곤은 기업가 뿐만 아니라 언론인, 정치가, 교육자로도 유명했는데 UP통신의 한국지점이던 동양통신 등 언론을 바탕으로 한 정보와 자유당 4대 민의원, 공화당 6,7,8대 국회의원이라는 핵심권력, 65년 공화당 재정위원장으로 운크라자금, 한일협정 보상금 등에 대한 자금관리 및 커미션 등을 바탕으로 1950년대 면방직(금성방직), 보험(고려화재), 무역(금성산업), 육영(국민대학교), 1960년대 시멘트(쌍용양회), 제지(삼화제지), 해운(금성해운), 1970년대 정유(한국이란석유), 중공업(쌍용중기), 종합상사(금성산업→쌍용산업), 건설(쌍용건설), 1980년대의 컴퓨터(우성정보산업), 증권(쌍용투자증권), 자동차(동아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시대 흐름에 발맞춰 사업을 변화 발전시켰으나 그의 사후 아들세대에서 자동차산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부메랑이 되어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열사를 매각하고 현재는 시멘트, 레미콘 전문그룹이 되었다.

연혁[편집]

  • 1939년 3월 창업주 김성곤(金成坤)이 일본인이 대구 칠성동에서 운영하던 비누공장인 송전석감(松田石鹼;まつだせっけん;마츠다 셋켄)을 인수하여 삼공유지(三共油脂)합자회사를 설립.[1]
  • 1948년 10월 서울에서 금성방직 설립하고 귀속기업인 안양의 조선직물(朝鮮織物) 공장건물 일부를 임차 받아 영등포역과 안양역전에 방치된 일본 동경방직(東京紡織) 소유의 방적기 2000추를 설치하고 생산시작.
  • 1949년 금성방직에 투자하기 위해 삼공유지 매각
  • 1952년 4월 대한통신을 인수하여 동양통신(현, 연합통신) 설립
  • 1954년 부사장으로 있던 연합신문 인수.
  • 1954년 7월 무역회사 금성산업(쌍용산업→쌍용(주)→GS글로벌) 설립
  • 1956년 4월 삼흥방직(三興紡織)을 인수하여 태평방직(太平紡織)으로 상호변경, 아주방직을 인수하여 태평방직에 합병 인수하여 금성재벌로 불림. 당시 재계 5위.
  • 1958년 김성곤 달성에서 자유당 공천으로 4대 국회의원 당선. 1963년 이후 공화당 공천으로 6~8대 국회의원 활동 및 1965년 공화당 재정위원장 역임.
  • 1959년 48년 대구에서 창업시 동업자로 참여했던 고려화재(쌍용화재→흥국화재) 인수.
  • 1960년 김성곤 대한유도회 회장 피선. 김성곤 사후 성곡기유도대회 개최.
  • 1962년 5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기간산업에 대한 해외차관자금 알선 및 정부지불보증 혜택을 받고자 시멘트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쌍용양회 설립
  • 1964년 현풍중학교(현풍학원) 및 현풍고등학교(견사학원) 인수 합병하여 구암학원 설립(구암은 김성곤의 형 김한곤의 호)
  • 1965년 성곡언론문화재단 설립.
  • 1967년 7월 독일 도리스사로 부터 차관을 들여 삼화제지(현 쌍용제지) 설립.
  • 1967년 10월 쌍용양회 동해 시멘트공장 건설 자금 마련을 위해 금성방직 및 태평방직 매각.
  • 1967년 12월 시멘트 수송을 위해 금성해운(현 쌍용해운) 설립
  • 1971년 대구문화방송 출범
  • 1971년 10.2항명파동으로 김성곤 정계은퇴[3] 후 기업활동 전념.
  • 1973년 김성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선임.
  • 1975년 김성곤 사망. 아들 김석원 쌍룡그룹 회장 취임. 용평리조트(현 통일그룹 소유) 개장.
  • 1976년 이란 국영석유회사와 합작으로 한국이란석유주식회사(쌍용정유→에스오일) 설립, 쌍용중공업(현 (주)STX) 설립.
  • 1977년 10월 쌍용양회 건설사업본부가 독립해 쌍용종합건설(현 쌍용건설) 설립.
  • 1980년 대구문화방송 주식 51% 강제매각.
  • 1981년 12월 쌍용양회 종합전산실 전산팀이 독립해 우성정보산업(현 쌍용정보통신) 설립
  • 1983년 효성증권(쌍용투자증권→굿모닝증권→신한금융투자) 인수
  • 1986년 동아자동차공업(현 쌍용자동차) 인수, 남광토건 인수
  • 1995년 성곡미술관 개관(신문로 축구회관 옆). 성곡미술문화재단 설립. 김석원 신한국당 입당. 김석준 쌍용그룹 회장취임. 첫째 김석원 쌍용양회, 둘째 김석준 쌍용건설, 셋째 김석동 쌍용투자증권 등 김성곤 아들들의 형제경영
  • 1996년 김석원 아버지의 지역구이던 대구 달성에서 국회의원 당선, 전노 비자금 관련 사건과 imf 경제위기로 98년 사퇴[4]
  • 1997년 쌍용템플턴투자신탁운용 설립
  • 1998년 쌍용제지를 미국 P&G에, 쌍용자동차를 대우그룹, 쌍용투자증권을 미국의 H&Q AP에 각각 매각
  • 1999년 쌍용투자증권 계열분리, 쌍용정유가 쌍용그룹 지분을 자사주 매입을 통해 취득하여 계열분리
  • 2000년 쌍용중공업의 지분은 한누리투자증권 컨소시엄에서 매각
  • 2001년 쌍용중공업(주), 쌍용엔지니어링(주), (주)텍스텍을 계열회사에서 분리
  • 2002년 쌍용화재를 중앙제지에 매각
  • 2003년 용평리조트를 세계일보에 매각, 쌍용캐피탈, 남광토건을 계열분리
  • 2005년 (주)쌍용 계열분리
  • 2006년 쌍용건설(주) 계열분리
  • 2009년 레미콘부문을 분리해 쌍용레미콘 설립, 해외사업부문을 분리해 쌍용인터내셔널 설립
  • 2010년 4월 쌍용기초소재 계열사 편입
  • 2011년 쌍용에코텍 설립(환경사업부문 분사)
  • 2013년 12월 쌍용인터내셔널, 쌍용에코텍 흡수합병
  • 2016년 쌍용로지스틱스(주) 설립
  • 2017년 쌍용머티리얼(주)을 (주)유니온에 매각, 쌍용정보통신(주) 계열분리, 쌍용양회공업(주)이 쌍용해운(주), 쌍용자원개발(주) 흡수합병, 대한시멘트(주) 인수

과거 주요 계열사[편집]

  • 쌍용제지 - 1998년 1월 P&G에 인수되어 계열분리 되었고, 1999년 주식상장을 폐지하였다. 2005년 위생용지 부문을 모나리자 계열사인 쌍용C&B에 매각하였고, 2006년 소프트뱅크와 DK코리아에 매각하였다.
  • 동성고속관광 - 쌍용자동차의 자회사로 관광전문 업체이다. 1998년 법인 자체가 청산되었다.
  • 쌍용정공 - 2001년 상호를 심팩으로 변경하였고, 그룹에서 분리되었다.
  • 쌍용엔지니어링 - 2001년 2월 그룹에서 분리되었고, 2003년 12월 인본건설(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 쌍용정보통신 - 2017년 4월 한앤코시멘트홀딩스가 주식을 전량 인수하여 계열분리 되었다.
  • 쌍용건설 - 김석준이 전문경영인으로 복귀하여 2006년 그룹에서 분리되었다. 재기를 노렸으나 주택경기침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2014년 4월 상장폐지되었다.
  • 쌍용자동차 - 쌍용그룹 위기의 원인. 결국 대우그룹에 인수되었다가 대우에서 분리되었다가 상하이자동차로 인수되었다 다시 인도 마힌드라 자동차로 넘어감.
  • 쌍용정유(현 에쓰오일) - 쌍용정유가 자사주매입형태로 쌍용그룹지분을 인수하여 분리된 후 한진그룹이 그 지분을 재인수하였다가 다시 매물로 나옴. 사우디 아람코의 자회사 AOC가 1대주주.
  • 쌍용화재(현 흥국화재) - 태광그룹에 인수되어 흥국생명계열의 흥국화재로 상호변경.
  • 쌍용투자증권(현 신한금융투자) - 1999년 1월 그룹에서 분리되어 굿모닝증권이 된 후 2002년 신한은행에 인수되어 굿모닝신한증권이 되었다가 2009년 금융투자회사로 변경됨.
  • 쌍용중공업(현 STX) - 2001년 쌍용그룹에서 분리되며 쌍용중공업 CFO 출신 강덕수를 중심으로 STX로 상호변경하였으며, STX그룹의 지주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STX그룹도 해체되었다.
  • (주)쌍용(현 GS 글로벌) - 1954년 설립된 금성산업이 쌍용산업, (주)쌍용으로 상호변경. 2002년 채권단의 관리하에 있다가 2006년 모건스탠리그룹에 매각되었다가 2009년 GS그룹에 인수됨.
  • 대구문화방송 - 쌍용그룹의 자회사였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당시 51%를 강제매각한 후 4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음. 현재, 29% 김석원,김지용 부자소유. 10% 마루종합건설(김지용계), 8.33% GS글로벌 소유[5]

스포츠[편집]

유도[편집]

김성곤이 3차례 대한유도회 회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그의 사후 성곡기 유도대회가 1990년대까지 열렸고 쌍용양회 유도단을 통해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유도 여자 66kg 급 금메달 리스트 조민선 등 유명 선수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축구[편집]

한국전쟁 후 축구기반이 무너진 가운데 실업축구단(금성방직)을 창단하고 당시 흔하지 않던 잔디축구장을 건설하며 열정적으로 초기 실업축구에 투자했지만, 이후 본사 사업전환을 위한 금성부지 매각을 계기로 축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이후 2002년 월드컵 유치 당시 (1996년) 창업주의 고향인 대구를 기반으로 쌍용 프로축구단을 창단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후 그룹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축구단 창단 얘기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참고로 그룹 산하 회사 및 학원에서 4번이나 축구단을 운영했음에도 그 축구단이 한번도 시기적으로 겹치지 않은 것도 특기할만하다.


팀 명칭 참가 대회 연도
금성방직 / 쌍용양회 실업축구 1963 ~ 1968년
현풍고등학교 고교축구 1971 ~ 1975년
국민대학교 대학축구 1976 ~ 1995년
대구 프로축구단 창단 검토 창단 무산 1996년
현풍고등학교 (대구 FC U-18) K리그 주니어 2009년 ~ 현재


이모저모[편집]

  • 국립국어원의 표기규정으로는 쌍룡(雙龍)이 맞고 쌍용은 틀린 표현이다. 상호명의 경우 사용자가 임의로 정할 수 있으므로 쌍용그룹은 쌍용이라 표기한다. 토요타(도요타), 오뚜기(오뚝이) 등.
  • 쌍용그룹은 오너형제 모두 해병대를 나왔고 그 자식들도 해병대를 나온 것으로 유명했다. 때문인지 쌍용그룹 입사시 해병대 출신이면 가산점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종업원 수 9명 정도의 중소기업으로 일본인이 경영했으나, 원료확보에 문제가 있어 매물로 나온 것을 김성곤이 동업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인수하였다. 태평양전쟁(1941~1945) 중 생활필수품 품귀현상으로 호황을 누림
  2. 성곡도서관이 김성곤의 호를 따서 지었으며, 국민대학교의 상징인 용두리가 두마리의 용이다. 쌍용.
  3. 박정희가 3선개헌에 앞장서며 정권실세로 급부상한 김성곤, 길재호, 김진만(동부그룹 김준기회장의 부), 백남억 등 4인방을 견제하고자 오치성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했으나 이에 4인방이 반발하여 여대야소의 상황에서 야당의 해임안에 동조하여 해임안이 통과 시켰고, 결국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두들겨 맞고 정계은퇴
  4. 이후의 보궐선거에서 박근혜 정치계 입문
  5. 8.33%의 지분을 소유한 (주)쌍용이 모건스탠리그룹으로 넘어가면서 문제가 되었는데 방송법상 외국자본이 방송국을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문제로 인해 당시 대구문화방송이 자체방송에 광고를 내보내지 못해 수익을 못 얻는 등 큰 혼란 후 GS글로벌에 매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