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현

풋케위키, 대한민국 대표 축구위키 FootballK WIKI-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인쇄용 판은 더 이상 지원되지 않으며 렌더링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브라우저 북마크를 업데이트해 주시고 기본 브라우저 인쇄 기능을 대신 사용해 주십시오.
파일:양동현.jpg
청소년대표 시절 양동현

양동현 (1986년 3월 28일~)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 선수이다.

한 때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한국 축구의 기대주였다.




프로필

  • 이름 : 양동현
  • 생년월일 : 1986년 3월 28일
  • 신체 : 186cm / 80kg
  • 국가대표 경력
2003년 FIFA U-17 월드컵 대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
2010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1경기 출장)
  • 등번호 : 18


  • K리그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울산 현대 울산 현대 K리그 2005 0 - - - - -
2006 13 13 1 0 0 0
2007 16 13 6 0 2 0
2008 14 13 0 2 0 0
Teamlogo bifc.png 부산 아이파크 2009 33 18 8 5 2 0
2010 27 23 1 4 2 0
2011 31 25 11 4 5 0
Teamlogo police.png 경찰 축구단 챌린지 2013 21 10 11 4 3 0
Teamlogo bifc.png 부산 아이파크 클래식 2013 9 2 3 3 2 0
2014 14 2 4 1 2 0
Teamlogo uhfc.png 울산 현대 2014 16 7 5 2 3 0
2015 30 18 8 3 2 0
Teamlogo psfc.png 포항 스틸러스 2016 0 - - - - -
통산(K리그) 클래식 - 203 134 47 24 20 0
챌린지 - 21 10 11 4 3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6년 1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시절

동북고등학교 재학 중,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했던 유소년 유학 프로젝트 1기 멤버로 선발되면서 어경준, 강진욱 선수 등과 함께 프랑스 리그의 FC 메츠에 입단했었다. 이때가 2002년, 불과 16세의 어린 나이었다. FC 메츠 U18 소속으로 2003년에는 U-17 월드컵 대표로 차출, 당시 윤덕여 U17 청대 감독에게 눈도장을 받으며 본선 3경기 모두를 선발 풀타임 출장 기록한다.[1] 이 대회서 2차전 스페인전 1골, 3차전 시에라리온 전 1골을 넣으며 총 2골로 한국 U17 대표팀 최다 득점자이기도 했던 양동현 선수는 이 대회에서 스페인 프로축구 팀인 레알 바야돌리드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 바야돌리드 U-18로 이적. '코리안 프리메라리거 2호'란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2]

그러나 비야톨리드 양동현 입단 이듬해, 소속팀은 프리메라리그에서 강등당해 2부리그 팀으로 전락했고 양동현 선수 자신은 무릎 부상으로 전력외로 분류되면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결국 2005년 양선수는 K리그 울산 현대 호랑이로 복귀하면서 해외 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울산 생활

울산에 입단한 이후로도 부상 재활로 긴 시간을 보냈던 양동현 선수는 드디어 2006년 K리그에서 데뷔전을 치루었다. 울산 입단 후 약 1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이후 조커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며 컨디션을 끌어올린 양동현은 2007년 K리그 컵대회에서 5골을 몰아넣으며 천재의 귀환을 알렸고 동시에 베이징 올림픽대표로 발탁, 나름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는듯 했다. 그러나 2008년 고질적인 부상이 재발하면서 팀에서도 입지를 잃었고 올림픽 본선 엔트리에서도 탈락하면서 나락의 길을 걷는다. 결국 유리몸이란 달갑잖은 꼬리표와 함께, 2009시즌 부산 아이파크로 전격 이적하며 울산과의 인연을 끝맺는다.[3]


부산 생활

양동현 선수의 부산 입단 후, 황선홍 감독은 2009시즌 양동현에게 편애에 가까운 기회를 부여했고 이 때문에 부산팬들에게 원성도 많이 들은 바 있다. 다행히 기회에 보답하듯 양선수는 점점 폼을 찾아가면서 공격 포인트를 쌓기 시작했고, 부산은 정성훈 선수에 이어 양동현도 국가대표 공격수로 발탁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그러나 국가대표 발탁 이후로는 쭈욱 하향세인게 문제 -_-; 2010시즌은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영 활약을 못했고, 2011시즌 안익수 감독이 새로이 부산에 부임하면서 기회를 얻어 나름 잘나갔으나 또 부상 ..; 폼이 올라올만 하면 부상에 컨디션 난조로 다시 폼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수차례 계속되었다. 그러다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스캔들에 김동현이 연루되고, 서동현강원 FC에서 부진하는 등 다른 삼동현 멤버들이 죽을 쑤는 와중에 양동현 홀로 부활하며 부산의 조커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특히 울산과의 리그컵 결승전에서 두골을 들이미는 등 활약을 이어가며 2011시즌 11골 4도움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찍었다. 2011시즌 종료 후, 경찰청 축구단으로 입대하였다.

2012년에는 경찰청 축구단 소속으로 R리그에서 활동하다가, 2013시즌 경찰청이 K리그 챌린지 무대에 뛰어들자 경찰청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챌린지 무대에 나서며 21경기 출장 11골 4도움을 기록하였다. 병역 의무를 마치고 2014시즌 부산에 돌아와서도 경찰청 시절의 타겟맨 역할을 잘 수행하며 팀 내 몇 안되는 득점 자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 2014년 7월 17일 울산 현대김용태, 박용지 선수와 2:1 트레이드 되며 울산 현대에 입단하였다. 6년여 만에 울산으로 복귀하는 셈.


울산 재입단 및 그 후

울산 입단 후 조민국 감독 아래에서 데뷔골도 적절한 시기에 뽑아내는등 순조롭게 적응하나 싶었으나... 울산에 복귀한 뒤 부상을 당해버려 팬들을 당황케한 바 있다.[4] 부상 복귀 후에는 김신욱을 대신해 울산 공격진을 이끌 중임을 맡아, 초반에는 다소 헤매는 듯했으나 곧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윤정환 감독이 부임한 2015시즌에는 김신욱과 '트윈 타워'로 불리고, 김신욱보다 더 나은 공격옵션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후반기 막판에는 또 탈장 수술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부상과의 악연을 끊지 못했다.

2016시즌에는 포항 스틸러스로 전격 이적, 팀의 원톱을 책임지게 되었다. [5]


플레이 스타일

초반에는 큰 키에 비해 공중볼을 잘 못 땄다. 그리고 한때는 일명 3동현 소속로 부산빠들을 멘붕시키는 골결정력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2011시즌때 결정력이 많이 좋아졌다. 또한 경찰청 입대 이후를 기점으로 포스트플레이는 확실히 나아졌다. 가끔식 터진 중거리가 일품이며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문전 앞 기술이 뛰어나다.


에피소드

  • 사석에서 그는 올해 (2011년)의 활약이 '팬들의 부담감을 이겨냈기 때문' 이라고 소심하게 밝힌 적이 있다. 아무래도 성격이 무척 소심한 듯..;;[6]
  • 부산 아이파크에서 유일하게 개인콜이 있는 선수였다... 양동현 콜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양동현이야~ 양동현이야~ 부산의 양동현이야~ x2 (멜로디는 우루사 CF BGM '간때문이야~')
  • 부산과 울산에 이어 포항으로 이적하면서, 본의아니게 동해안에 위치한 팀에서만 뛰는 선수가 되었다.


경력

  • 2014.7 ~ 2015 : 울산 현대 / K리그 클래식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사항

  1. 당시 윤덕여 휘하 U-17 한국 대표팀은 상당수의 선수가 프로팀 선수여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 1호 프리메라리거는 당시 레알 소시에다드에 소속되었었던 이천수
  3. 양동현 선수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황감독 밑에서 뛰고 싶어 이적을 자청했다고..
  4. 부상 직후 시즌 아웃이라는 오보가 터지면서 울산빠들이 뒷목을 잡는듯 싶었으나, 다행히 3주여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하였다.
  5. 반대로 포항에 있던 박성호 선수는 자유계약으로 울산에 입단, 트레이드는 아니지만 서로의 팀을 맞바꾼 셈이 되었다.
  6. 생각해보면 양선수의 성격을 탓하기 이전에 팬들이 조금 양동현 선수에게 유독 평가가 박했다는 느낌도 있다. 한 때는 엘리트라며 한국축구의 미래로 기대해줄때는 언제고, 3동현이 동시에 골을 넣으면 지구멸망이라는 둥 김동현 등과 싸잡아서 비난했으니, 스트레스는 늘어가고 팬들 또한 부담스러웠을 수 밖에.. 근데 한국축구 미래라고 옹호해준건 국대빠들이고, 삼동현이라고 놀린건 국축갤러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