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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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양현정.jpg
전북 시절 양현정(우)이 김도훈(좌) 선수에게 어시스트를 성공한 후 쓰다듬(?)을 받고있다.

양현정(1977년 7월 25일~)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 선수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했었다.




프로필

  • 이름 : 양현정
  • 출생일 : 1977년 7월 25일
  • 신체 : 176cm / 73kg
  • 국가대표 경력
1996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1997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1998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3경기 출장)
  • 현 소속팀 : 은퇴


  • 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전북 현대 모터스 2000 32 23 6 7 3 0
2001 23 20 2 2 0 0
2002 25 24 3 4 7 0
2003 1 1 0 0 0 0
  광주 상무 불사조 2004 0 0 0 0 0 0
  대구 FC 2005 5 5 0 0 0 0
  수원시청 축구단 2008 10 2 1 0 0 0
통산 (K리그) - 86 73 11 13 10 0
통산 (내셔널리그) - 10 2 1 0 0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1년 11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동두천 사동초등학교, 성남 풍생중학교, 풍생고등학교, 단국대학교를 거쳤다. 풍생고 시절부터 U-20 대표팀, U-23 대표팀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으며 1996년 AFC U-19 챔피언십 4강전에서 일본 청대를 격침시키는 결승골을 터뜨리며 일약 주목을 받았고, 이후 단국대학교 재학 시절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상비군에 포함되어 A매치도 소화하는 등 승승장구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는 시드니 올림픽대표팀 탈락 및 하계유니버시아드 8강 탈락 등의 시련을 맛보며 다소 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프로 생활

2000년 최만희 감독의 권유에 따라 2000년 드래프트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에 1순위로 지명되었다. 당시 양현정의 지목은 의외로 여겨질만큼 양선수에 대한 주변의 기대는 높지않았다.[1] 하지만 전북의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6골 7도움을 기록. 당시 이영표, 이관우 등을 제치며 K리그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주변의 우려를 일거에 잠재웠다.[2] 이후 데뷔 시즌만큼은 아니었지만 2002년 시즌까지 괜찮은 활약을 펼치던중,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되어 2003년에는 경기 대부분을 출장하지 못했다. 2004년 불완전한 몸상태를 이끌고 광주 상무에 입대하였지만 다시금 큰 부상을 당해, 의병 제대 명단에 오르게 되어 곧 전역하게 된다. 하지만 전북에 돌아온 양선수의 몸상태는 더 이상 전성기의 그것이 아니었다.

결국 전북을 떠난 양현정은 2005년 박종환 감독에 의해 대구 FC에 입단하였지만 부상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채 대구에서도 방출. 한때 베트남 축구 팀인 Ho Chi Minh City F.C. 및 수원시청 축구단 등을 전전하다 최종적으로 2008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지도자 생활

이후 유소년 지도자로 활동을 시작한 양현정 씨는, 모교인 풍생고등학교 코치를 2016년 현재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정왕중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재임 중에 있다.


플레이 스타일

  • 재능있는 왼발 키커로 측면 돌파와 날카로운 크로스가 장점이었다. 잦은 부상으로 인해 프로 무대에서는 기량을 100% 발휘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피소드

  • 양현정 씨의 아내인 송주희 씨는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두 사람은 '국내 1호 축구 국가대표 선수간 결혼 사례'로 알려져있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3급 지도자 연수 과정에서 만나 결혼까지 이르셨다고..
  • 사실, 전북 현대 입단 당시부터 완전한 몸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데뷔전부터 임펙트있는 활약을 펼치며, 언론에 특급 신인으로 조명받기에 이르자 신인왕 욕심에 몸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잦은 출장을 감행했고, 결국 이는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 악재로 작용했다. 그야말로 신인왕의 저주의 희생양이라 할듯.


경력

  • 2006 : Ho Chi Minh City F.C. / 베트남 V.리그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1. 정확히는 2000년 드래프트에 양현정 외 워낙 걸출한 신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양현정 선수의 지명도가 밀렸다 봄이 적절한 표현일듯 하다. 2000년 드래프트에는 이영표, 김대의, 이관우, 김남일, 심재원 등 국가대표 자원이 차고 넘쳤으며 최철우, 하용우, 김성근, 김기형, 김건형, 백민철 등 당대 올림픽대표팀 붙박이 자원 내지 훗날 프로에서 성공한 선수들이 유달리 많이 배출된 성공적인 드래프트였다.
  2. 2000년 당시 전북은 박성배-김도훈이라는 K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손꼽힐만한 국내파 투톱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었고, 양현정 선수는 이 두선수에게 어시스트를 제공하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여기에 골까지 곧잘 기록했으니 신인왕에 뽑힌게 어찌보면 당연. 하지만 양현정 이후로 전북은 이재성 선수가 신인왕에 뽑힐때까지, 무려 14년간 신인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신인들의 무덤기(?)를 겪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