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은

파일:오장은.jpg
수원 시절 오장은

오장은 (吳章銀, 1985년 7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2005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오장은
  • 출생일 : 1985년 7월 24일
  • 신체 : 175cm / 73kg
  • 수상 경력
2009년 K리그 컵대회 도움상
  • 국가대표 경력
2004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2005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2007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표
2008년 동아시아연맹선수권대회 대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2010년 동아시아연맹선수권대회 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14경기 출전)
(대한민국 U-23 국가대표 19경기 출전)
(대한민국 U-20 국가대표 19경기 출전 2득점)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5   대구 FC K리그 23 13 3 2 1 0
2006 32 9 6 2 3 0
2007   울산 현대 호랑이 24 9 0 1 5 0
2008   울산 현대 33 3 2 1 5 0
2009 28 4 4 6 5 0
2010 33 3 2 3 4 0
20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30 5 4 2 2 0
2012 26 5 1 0 5 0
2013 클래식 34 6 1 4 6 0
2014 12 0 0 0 2 0
2015 0 0 0 0 0 0
2016 7 5 1 0 1 0
2017   성남 FC 챌린지 3 2 0 0 1 0
2018   대전 시티즌 K리그2 0 0 0 0 0 0
통산 K리그1 282 64 24 21 39 0
K리그2 3 2 0 0 1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8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시절편집

제주도 서귀포시 출생으로 서귀포초등학교와 조천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서귀포초등학교 4학년 시절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한 오장은은 조천중학교 시절이던 2000년 11월, 벨기에로 축구 유학을 떠난 뒤 몰렌벡 유스팀에 입단하기도 하였지만 팀 사정이 좋질 않았던 탓에 최종 입단에는 실패하였다.


프로 생활편집

FC 도쿄 시절편집

국내로 돌아온 오장은은 2001년 서귀포고등학교로 진학하였으며 연습 경기 도중 당시 수원 코치이던 윤성효의 눈에 띄어 고교를 중퇴하게 되었다. 이후 수원 2군에 몸담아 훈련을 받다가 2002년 일본 J리그 FC 도쿄에 입단하였다. 그리고 2002년 4월 13일, 감바 오사카와의 경기에서 0-3으로 뒤진 후반 9분 사토와 교체 투입되며 만 16세 8개월의 기록으로, J리그 최연소 출장 기록을 달성하였다. [1] 이후 오장은은 외국인 출전 제한에 걸려 출전 시간이 많지는 못했지만, 조커로써 FC 도쿄에서 기회를 잡으며 3시즌동안 13경기에 출전했다.[2] 이러한 기량을 인정받아 오장은은 대한민국 U-19 대표팀에도 발탁되는 등 한국 축구계의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대구 FC 시절편집

하지만 오장은은 주전 출장을 원했던지라 결국 국내 복귀를 타진하기에 이른다. 이 때 노상래, 오주포의 은퇴로 중원이 취약했던 대구 FC가 가장 적극적이었던바, 결국 오선수는 대구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대구 입단 직후에는 FIFA U-20 월드컵 참가로 인해 리그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FIFA 대회가 끝나자 금세 대구 FC의 주전력으로 안착한다. 입단 첫해인 2005년 24경기 4골을 폭발시킨 오장은의 활약에, 대구 FC는 잠시나마 리그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을 정도.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아깝게 실패했지만, 대구가 이러한 자리까지 올라오게 된 데에는 오장은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이듬해인 2006시즌에도 오장은은 36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하게 되는데, 특히 9월 24일 전북 현대 모터스 원정 경기에서 생애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물오른 감각을 과시하였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핌 베어벡 감독의 눈에 띄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울산 현대 시절편집

대구에서의 성공적인 2년을 뒤로 하고 FA로 나온 오장은은 여러 팀들의 구애를 받았으며, 특히 적극적인 구단은 울산 현대였다. 당시 울산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선언한 김정우의 대체자를 찾고 있었고,[3] 오장은을 낙점, 무려 FA 이적료28억(!)을 대구 FC에 지급하면서 영입에 성공하였다. 당시 울산의 김정남 감독은 "모든 공격의 시발점은 오장은으로 재편된다" 고 선언했고, 이에 부응하듯이 오장은도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울산을 이끌었다. 2007시즌 27경기에 출장 1골을 기록하며 울산의 K리그 컵 우승과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일조하였으며, 2008년에도 36경기 3골로 활약하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2009년에는 32경기에 출장하며 6골을 기록, 커리어 사상 최다골을 기록하였고, 2010년에도 35경기 3골을 기록하면서 울산 현대의 미드필더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울산 시절에는 팀 내 활약도 좋았지만, 국가대표에도 꾸준히 발탁되며 활약을 이어가는등 돈값을 어느 정도 해내며 울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편집

울산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오장은을 노린 것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였다. 당시 수원의 신임 감독이었던 윤성효는 대대적인 리빌딩을 선언하면서 오장은을 리빌딩의 축으로 삼으려 하였고, 자신을 프로로 올라올 수 있게 도와줬던 윤성효 감독의 구애에 오장은은 수원으로 이적하기에 이른다.[4] 이후 리그 개막전 FC GS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신고한 오장은은 이후 경기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수원을 이끌었다. 특히 팀의 사정에 따라 측면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호평을 얻었으며 2013년 수원에 새로 부임한 서정원 감독 아래에서도 핵심 선수로 기용되었다. 주로 미드필더 지역에 출전하며 팀의 살림꾼 역할을 충분히 잘한다는 평.

이러한 모습은 2014시즌에도 계속 되었으나.. 2014년 5월 10일, 상주 상무와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되면서 오선수의 축구 인생은 급격하게 하락세로 접어든다. 부상 직후에는 금방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었지만 결국 시즌 내내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였고 해당 부상은 다음 시즌인 2015년에도 이어졌던 것. 2015년에는 잠시 AFC 챔피언스리그 예선 브리즈번 로어와 경기에 약 1년 만에 복귀하기도 했지만 이후로는 다시 부상이 재발하여 출전하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었고, 그 후 2015년 10월 말 아주대학교와 연습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지만, 끝내 리그 경기에는 복귀하지 못한 채 15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1년 반동안 전력외였던 오선수는 수원과의 인연을 정리하는듯 하였다. 2016년 1월부터 진행된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하였고, 새로운 팀을 찾아 나선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정도. 그렇게 약 1달간 소속팀 없이 개인훈련을 하며 지낸 오장은은 2월 29일에 극적으로 수원과 재계약 협상에 성공하였고, 2016년에도 수원에 잔류하였다. 이후 4월부터 점차 대기 명단에 포함되었고,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멋진 중거리 슛을 선보이며 복귀를 알리기도 하였다. 이후 FC GS와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미드필더 라인을 이끌기도 하였으나, 포항 스틸러스와 경기에서 급격히 저하된 경기력을 보여줬고 결국 이 경기를 끝으로 1군 멤버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성남, 대전 시절편집

포항 스틸러스와 경기 이후로 주전 전력에서 완전히 제외된 오장은 선수는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수원에서 퇴단하였고,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성남 FC에 입단하였다.[5] 하지만 장기간 부상 여파로 경기력은 올라오지 못했기에 3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8년을 앞두고는 고종수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전 시티즌에 입단,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플레이스타일편집

대구 시절에는 플레이메이커 롤을 부여받았고, 울산 시절에는 이상호의 지원 아래 앵커로 대활약하였다. 하지만 수원에 와서는 상황이 급반전, 이상호가 공미로 뛰어들어가고 남은 뒷공간을 오장은 커버하는 롤을 수행하고 있다. 이용래와 함께 수원의 중앙을 모조리 메워야되는 중책을 떠앉으면서 매 경기마다 쉬지않고 뛰어다녀야만 했다. 또한 측면 수비로 활약하기도 했었는데, 왼쪽 측면과 오른쪽 측면 모두 가리지 않고 출전이 가능하다. 전술 이해도가 높은 편에 속하는 선수라 감독들도 신뢰하는 선수.


에피소드편집

  • 오장은은 재일 교포인 이충성 선수와 친하고, 2004년 청소년 대표팀 테스트에서 이충성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나 2007년 이충성이 일본으로 귀화를 한 뒤 그 이유가 국가대표 팀 선수들의 차별이라고 말했고, 오장은은 매우 섭섭하다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둘의 관계가 이전만큼 친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 오장은은 왼발의 엄지와 집게 발가락이 부분적으로 절단돼 있다. 어린시절 벽돌에 찧이는 사고로 인해 발가락이 절단되고 만 것, 이에 오장은은 굴하지 않고 축구선수 생활을 계속해나가고 있으며 이는 많은 축구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오짱'이라는 별명은 일본 시절 붙여진 별명이다. 현재 오장은 경기를 보기위해 일본에서 오는 팬들도 있다. 직접봤다 ㄷㄷㄷㄷ
  • 오장은은 축구로 만드는 행복이란 뜻의 모임인 추캥의 주멤버로 매년 축구를 통한 봉사활동을 펼치고있다.[6][7]
  • 프로 입단 후, K리그에서 평균 25경기 이상을 소화하고 강철 체력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지닌 선수였지만 2014년부터 시작된 장기 부상으로 유리몸 대열에 속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가대표 출장기록편집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02.01 ~ 2004.12   FC 도쿄 J리그 디비전1
2005.01 ~ 2006.12   대구 FC K리그
2007.01 ~ 2010.12   울산 현대 K리그
2011.01 ~ 2016.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클래식
2017.01 ~ 2017.12   성남 FC K리그 챌린지
2018.01 ~ 현재   대전 시티즌 K리그2


참조편집

  1. 당시 오장은의 기록은 2001년 아베 유키가 세웠던 16세 10월의 기록을 2개월 가량 앞당긴 것이었다. 하지만 오선수의 기록은 2004년 모리모토 다카유키(당시 도쿄 베르디)가 15세 10개월로 데뷔하며, 2년 만에 깨지게 된다
  2. 특히 2003년에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친선전에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
  3. 여담으로 이 때 김정우는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실패한 뒤,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한다.
  4. 당시 오장은은 조원희와의 트레이드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조원희가 뜬금없이 광저우 헝다로 입단을 하는 바람에 이 트레이드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고.. 다행히 수원 측이 조원희 대신 현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해당 이적은 성사될 수 있었다고 한다.
  5. 성남FC, '前 수원삼성 베테랑 MF' 오장은 영입
  6. (베스트일레븐-임성일) 축구로 행복 나누는 ‘추캥’을 아시나요
  7. (스포츠조선-이건) 오장은 김두현 정성룡 등 '추캥'이 다시 한 번 뭉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