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골키퍼 금지 편집하기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편집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저장해주세요.

최신판 당신의 편집
6번째 줄: 6번째 줄:
  
 
== 도입 배경 및 실시 과정 ==
 
== 도입 배경 및 실시 과정 ==
'''[[샤리체프]]''' (귀화 후 [[신의손]]으로 개명)의 존재감 때문에 만들어진 규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골키퍼는 반사신경 뿐만 아니라 수비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말이 안통하는 입단초기에는 한동안 고생하는게 보통이라고 알려져있으나, 샤리체프는 그런 정석(?)을 모두 무시하는 치트성(?) 플레이로 K리그를 통일해버려 축구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ref>물론 이런 성과에는 [[안익수]]를 위시한 당시 일화 천마의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수비진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ref> 샤리체프를 영입한 일화가 <del>망아지가</del>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으로 잘 나가는걸 지켜본 타 프로팀들은 경쟁적으로 외국인 골키퍼 영입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때문에 국내파 골리들이 설자리를 잃어버렸다는것. 심지어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국가대표]]에서 활약하던 선수들도 프로팀만 들어오면 외국인 골리들에 밀려 2군에서 뛰다가 국대에 차출되는 상황에 이르러버렸다.<ref>대표적인 예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당시 대표팀 골키퍼였던 [[신범철]]과 [[차상광]]이었다.</ref>
+
'''[[샤리체프]]''' (귀화 후 [[신의손]]으로 개명)의 존재감 때문에 만들어진 규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골키퍼는 반사신경 뿐만 아니라 수비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말이 안통하는 입단초기에는 한동안 고생하는게 보통이라고 알려져있으나, 샤리체프는 그런 정석(?)을 모두 무시하는 치트성(?) 플레이로 K리그를 통일해버려 축구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ref>물론 이런 성과에는 [[안익수]]를 위시한 당시 일화 천마의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수비진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ref> 샤리체프를 영입한 일화가 <del>망아지가</del>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으로 잘 나가는걸 지켜본 타 프로팀들은 경쟁적으로 외국인 골키퍼 영입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때문에 국내파 골리들이 설자리를 잃어버렸다는것. 심지어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국가대표]]에서 활약하던 선수들도 프로팀만 들어오면 외국인 골리들에 밀려 2군이나 뛰면서 국대에 차출되는 상황에 이르러버렸다.<ref>[[박동우]][[주용국]]선수 등이 이런 케이스였다.</ref>
 +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최인영]] 선수가 보여준 [[알까기]] 이후로 골키퍼 육성에 대한 위기 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한 한국 축구계는 결국 1996년 '''K리그 전경기의 2/3만 외국인 골키퍼 출장이 가능하다'''라는 규정을 신설했고, 급기야 이듬해인 1997년에는 '''전경기의 1/2만 외국인 선수 출장 가능'''으로 규정을 강화한 끝에 최후에는 1999년 '''K리그 외국인 골키퍼 보유 및 출장 금지'''를 선언하면서 K리그의 외국인 골키퍼 금지 역사가 시작되엇다.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최인영]] 선수가 보여준 [[알까기]] 이후로 골키퍼 육성에 대한 위기 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한 한국 축구계는 결국 1996년 '''K리그 전경기의 2/3만 외국인 골키퍼 출장이 가능하다'''라는 규정을 신설했고, 급기야 이듬해인 1997년에는 '''전경기의 1/2만 외국인 선수 출장 가능'''으로 규정을 강화한 끝에 최후에는 1999년 '''K리그 외국인 골키퍼 보유 및 출장 금지'''를 선언하면서 K리그의 외국인 골키퍼 금지 역사가 시작되엇다.  
  
꾸준한 출장으로 컨디션 유지가 관건인 골키퍼 포지션의 특성상, 전경기의 2/3 출장 제한만으로도 제기량을 유지 못하는 외국인 골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결국 K리그 구단들은 외국인 골리들을 이적시키면서 사실상 1998년에는 샤리체프를 제외하고는 외국인 골키퍼가 한명도 등록되지 않았었다. 1999년의 외국인 골키퍼 보유 금지 선언은 일종의 확인사살이었던셈. 결국 샤리체프는 [[안양 LG 치타스]]의 [[골키퍼 코치]]로 보직을 옮겨 생활하다가 안양측의 꼼수(?)로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해 2004년까지 활약하며 K리그의 전설로 등극한다.
+
꾸준한 출장으로 기복 유지가 관건인 골키퍼 포지션의 특성상, 전경기의 2/3 출장 제한만으로도 제기량을 유지 못하는 외국인 골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결국 K리그 구단들은 외국인 골리들을 이적시키면서 사실상 1998년에는 샤리체프를 제외하고는 외국인 골키퍼가 한명도 등록되지 않았었다. 1999년의 외국인 골키퍼 보유 금지 선언은 일종의 확인사살이었던셈. 결국 샤리체프는 [[안양 LG 치타스]]의 [[골키퍼 코치]]로 보직을 옮겨 생활하다가 안양측의 꼼수(?)로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해 2004년까지 활약하며 K리그의 전설로 등극한다.  
 +
 
  
 
== 논쟁 거리 ==
 
== 논쟁 거리 ==

FootballK WIKI-에서의 모든 기여는 다른 기여자가 편집, 수정, 삭제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자세한 사항은 FootballK WIKI:저작권 문서를 보세요).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