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모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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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우르모브.jpg
부산 시절의 우르모브(앞)
뒷쪽의 대전 선수는 한정국이다.

조란 우루모프 (1977년 8월 30일 ~ 현재)는 세르비아 국적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사이드 풀백이다.



선수 프로필

  • 이름 : 조란 우루모프 (Zoran Urumov)
  • 국적 :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세르비아 세르비아
  • 출생일 : 1977년 8월 30일
  • 신체 : 180cm / 73kg
  • 수상 경력
2001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K리그 도움왕 석권
  • 현 소속 클럽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9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대우 로얄즈 K리그 12 8 1 0 4 0
2000 부산 아이콘스 부산 아이콘스 21 13 3 2 7 0
2001 33 12 3 11 11 0
2002 25 9 3 3 1 1
2003 부산 아이콘스 부산 아이콘스 14 7 7 1 2 1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8 8 1 0 0 0
2004 21 20 1 3 2 0
통산 K리그 134 77 19 20 30 2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12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K리그 입단 이전

K리그 생활

부산 시절

김호곤 감독이 지휘봉을 잡던 시절 부산은, 전반에는 수비적으로 웅크리고 있다가 후반에는 공격적인 오버래핑으로 상대팀을 혼란시키는 전술을 써먹곤 했는데 우르모브가 이 전술의 키를 잡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즉 우르모브가 공격가담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부산 공격의 시작이자 끝이었을 정도. 특히 우성용, 마니치 등 장신의 부산 선수들에게 크로스를 떠먹여주며 공격 포인트를 쏠쏠히 모아 2001년에는 수비수임에도 K리그 도움왕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게된다.

하지만 2002년 김호곤 감독이 아테네 올림픽대표 감독직 선임을 이유로 부산의 지휘봉을 놓으면서 우르모브의 입장도 꼬이기 시작한다. 김감독의 후임으로 부산에 들어온 이안 포터필드는 정통 잉글리쉬 4-4-2 신봉자였기 때문. 포터필드에게 사이드 풀백이란 수비위치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롱패스만 잘 걷어내면 되는 존재였고, 오버래핑으로 빛을 발하던 측면 수비수 우르모브는 포터의 전술과 대립적인 위치에 놓여있었다. 결국 우르모브를 스트라이커로 돌리는 등 잡음을 내다 2003년 7월 우르모브를 FA로 풀어버리고 만다.[1]


수원 삼성

그리고 수원은 FA가 된 우르모브를 냉큼 줏어갔다. 계약금 35만달러, 연봉 12만달러에 3년계약의 조건. 수원에 입단한 후, 2004시즌 부상으로 시즌 초반을 날리긴했지만 이후 복귀하면서, 공격형 미드필더 및 윙백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2004년 7월 29일 수원에 방한한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호쾌한 프리킥 결승골을 꽃아넣으며 1-0 승리를 이끌면서 수원 팬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2004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김병지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수원의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2004시즌 종료 후, 고국에서 이적 제의가 오자 선수 황혼기 정리를 위해 수원과의 계약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은퇴 후에는 에이전트로 활동 중이라고 한다. 가끔 터키 안탈리아 등지에서 K리그 팀들이 전지훈련을 가질때 우르모브가 반가운 얼굴을 드러내곤 한다고. 그러다가 옛 친정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불가리아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일리안의 입단을 성공시키면서 다시 국내 축구 팬들에게 근황을 알리기도 했다.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이 수비수였지만, 공격적인 재능에서 빛을 발했던 선수이다. K리그 역사상 신홍기 선수와 함께 '공격형 수비수(?)'라 자타가 공인할만한 선수. 프리킥과 코너킥 찬스에서 킥력의 정확도와 세기는 당대에 이기형, 고종수 정도를 제외하면 따라올 자가 없었다.


에피소드

  • 바르샤 뿐만이 아니라 페예노르트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둔 선수이다. 유럽 팀에게 2연승을 거둔 K리그 소속 선수는 드물지 않을까?
  • 수원에서의 활약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FC 바르셀로나 격침의 인상이 강렬했고 프로의식도 좋았기에 수원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섭팅콜도 있다.
'우르모브 우르모브 너의 왼발의 마법을 보기 위해 노래해~'
  • 에이전트로 활동하면서 K리그에 처음으로 선수를 보내는 대형 에이전시의 중개인으로 나선 우르모브는 K리그에 검증된 선수를 보내야된다고 강력히 주장해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불가리아 국가대표 주전인 일리안을 입단시키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세심한 노력은 좋았지만 일리안은 적응 문제와 치골 부상이 겹쳐 무득점에 그쳐 쫓겨나고 말았고, K리그에 동유럽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의 진출 교두보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지닌 우르모브를 머쓱하게 만들었다.[2]


K리그 경력


같이 보기


참고

  1. 당연히 이 때 부산팬들은 난리가 났고, 어떻게 K리그 도움왕 출신에 2003년 전기리그에만 7골을 쏟아넣은 선수를 저런식으로 내보내냐고 구단을 성토하기에 이르렀다. 부산 서포터 단체인 POP가 구단 사무국을 항의 방문하고, 포터필드와의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포터필드는 '전술하고 맞지않는 선수였다.'는 말만을 남겼지만.. 이 때부터 부산 서포터들과 포터필드와의 갈등의 골은 돌아올수 없는 선을 넘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
  2. 일리안의 개인 기량은 준수하였다. 다만, 정대세 선수의 이적으로 급하게 영입되며 계약을 마치자마자 실전에 투입되고 스타일상 맞지 않는 타겟 스트라이커 역할을 소화해야 되는 악조건이 있었다. 게다가 부상까지 겹치는 험난한 K리그 생활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