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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 선수는 [[부천 SK]]와의 경기 때마다 [[윤정환]]을 전담 마크하는 역할을 맡았다. 윤정환 선수도 기술과 스피드를 겸비한 선수였지만, 악착같이 달라붙는 윤성효의 마킹에 고전을 면치못했고 이를 지켜본 다른 팀들도 부천과의 경기때마다 윤정환을 전담 마크하는 수비수를 따로이 지정해두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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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는 [[부천 SK]]와의 경기 때마다 [[윤정환]]을 전담 마크하는 역할을 맡았다. 윤정환도 기술과 스피드를 겸비한 선수였지만, 악착같이 달라붙는 윤성효의 마킹에 고전을 면치못했고 이를 지켜본 다른 팀들도 부천과의 경기때마다 윤정환을 전담 마크하는 수비수를 따로이 지정해두기에 이르렀다.  
  
* 윤선수가 1998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1999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코치로 부임하였을 당시, 수원 2군은 해이해진 기강과 경기 능력으로 문제의 온상이었다. 이에 불만을 표시하던 윤코치는, 선수들과 함께 똑같이 훈련하였으며 급기야 자신이 직접 2군 출장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경기를 뛰며 선수들을 규합, 진두 지휘하기에 이른다. 이를 보고받은 [[김호]] 당시 수원 감독은 윤성효 코치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며 은퇴를 번복케하고 플레잉코치로 1군 엔트리에 등록시켜 다른 수원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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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가 1998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1999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코치로 부임하였을 당시, 수원 2군은 해이해진 기강과 경기 능력으로 문제의 온상이었다. 이에 불만을 표시하던 윤성효는, 선수들과 함께 똑같이 훈련하였으며 급기야 자신이 직접 2군 출장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경기를 뛰며 선수들을 규합, 진두 지휘하기에 이른다. 이를 보고받은 [[김호]] 당시 수원 감독은 윤성효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며 은퇴를 번복케하고 플레잉코치로 1군 엔트리에 등록시켜 다른 수원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게 하였다.  
  
 
* <del> 2011시즌 윤성효의 수원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타팀 팬들은 '[[세제믿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del> 착각이 있는데 세제믿윤이라는 응원가를 만든건 그랑블루였고 그 줄임말인 세제믿윤은 이미 전부터 사용중이었으나 부진한 모습으로 인해 응원가가 비하의 용어가 된사례 [[국내축구갤러리]]에선 [[손정탁]] 신드롬에 이은 이슈메이커로 자리매김하였다. '''세제믿윤! 성효종신!'''
 
* <del> 2011시즌 윤성효의 수원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타팀 팬들은 '[[세제믿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del> 착각이 있는데 세제믿윤이라는 응원가를 만든건 그랑블루였고 그 줄임말인 세제믿윤은 이미 전부터 사용중이었으나 부진한 모습으로 인해 응원가가 비하의 용어가 된사례 [[국내축구갤러리]]에선 [[손정탁]] 신드롬에 이은 이슈메이커로 자리매김하였다. '''세제믿윤! 성효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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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는 수원 감독 부임 후 첫 [[GS]]전에서 패하였지만 이후 내리 7연승을 거두며 북패킬러로써 K리그 정의구현에 힘썼다. 수원에서의 마지막 GS전이 무승부로 끝나면서 연승행진은 마감했지만 8경기 연속 무패라는 대위업을 달성하였다. 이후 2013 시즌부터 부산 감독을 맡으면서 이 기록을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고 3월 17일 GS와의 홈경기에서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두면서 팀빨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며 GS전 9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
  
 
== 경력 ==
 
== 경력 ==

2013년 3월 18일 (월) 17:49 판

파일:윤성효.jpg
윤성효 수원 감독 (좌)

윤성효(尹星孝, Yoon, Sung Hyo, 1962년 5월 18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86년부터 2000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수비수로 활동하였다.


선수 프로필

  • 이름 : 윤성효
  • 출생일 : 1962년 5월 18일 생
  • 신체 : 170cm / 70kg
  • 수상 경력
1986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MF 부문 선정
1996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DF 부문 선정
  • 국가대표 경력 : 1989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아 예선 국가대표
  • 현 소속팀 : 선수생활 은퇴


  • 프로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한일은행 축구단 1986 20 1 5 1 3 0
포항 제철 1987 20 8 2 1 0 0
포항 제철 1988 7 1 1 0 1 0
포항 제철 1989 22 9 1 2 1 0
포항 제철 1990 25 7 0 0 2 0
포항 제철 1991 21 10 0 1 2 0
포항 제철 1992 33 10 0 3 4 0
포항 제철 1993 34 20 2 1 1 0
대우 로얄즈 1994 20 3 2 1 2 0
부산 대우 로얄즈 1995 27 7 0 2 7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 34 2 5 1 9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7 26 2 3 1 3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8 19 16 2 0 2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0 3 3 0 0 1 0
통산(K리그) - 311 99 23 14 38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7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


  • 수상 경력
    • 전국급 각종 대학 축구 대회 최우수 감독상 9회 수상


  •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연도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ACL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 10 5 4 7위 4강 우승 8강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 18 4 10 4위 4강 준우승 4강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2 20 13 11 4위 컵대회 미개최 8강 -
부산 아이파크 2013
통산 (K리그) - 48 22 25


유소년 생활

경상남도 김해시 출신으로, 부산광역시의 동래중, 동래고, 서울 연세대학교를 나왔다. 동래중 시절까지 학업과 체육 특기생 생활을 병행하다가 동래고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전업 축구선수를 꿈꾼 특이한 케이스이기도.. 동래고 시절부터 청소년대표에 뽑히지는 않았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고교 수비수로 활약하여 서독 재한인협회의 초청으로 서독 축구캠프에 참가하기도 하였다.[1] 동래고 졸업 후,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윤성효는 1,2학년 시절 래프트 윙으로 뛰며 곧잘 골을 성공시키는 공격 자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3학년 무렵부터 연세대 축구부에서 거의 출장시간을 갖지못하였고,[2] 대학 졸업을 앞두고 경기를 거의 소화하지 못한 윤성효는 연세대 졸업 후, 가까스로 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며 축구 생활을 계속해나갈 수 있었다.


프로 생활

1998년 리그 우승 당시 윤성효 (가운데)





플레이 스타일

터프한 맨마킹과 돌파 능력으로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않고 활약했던 수비자원이었다. 단순히 터프한 것만 아니라 발도 매우 빠른 선수였기 때문에, 웬만한 공격수가 아니면 윤성효를 제껴내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일은행 축구단 시절만 해도 테크니션 윙어에 가까웠지만,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보다 체력과 스피드에 역점을 두고 하드 트레이닝을 거듭했다고. 이 같은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15년동안이나 K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지도자 생활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코치 및 2군 감독으로,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숭실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재임하였으며, 2010년 6월부터 2012년까지 수원 감독으로 활동하는등 지도자 커리어를 차근차근 밟아온 케이스이다. 2010년 수원 블루윙즈 감독으로 후반기 수원의 부활을 이끌었지만 2011년과 2012년 연이은 부진과[3] 전술 스타일에 대한 팬들의 반발 등으로 말미암아, 결국 잔여계약기간 6개월을 남기고 전격경질[4]되었다. 만세!!! 그리고 2012년 12월, 불과 수원 삼성에서 사퇴한지 5일만에 부산 아이파크 사령탑으로 부임하였다. 으악!!!!!!


감독 스타일

숭실대학교 시절에 썼던 플랜B 시스템[5]을 쓰고 있지만, 이 전술이 프로에선 통하지않아 고전중이다. 그 전술이 통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현재 리그 8위에 올라있지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 그냥 있어도 욕먹을 판국에 선수가 없다 타령을 늘어놓아 팬들의 심기를 건드는중.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공격적으로 경기를 해서 못이기면 못이겼다고 뭐라하고, 수비적으로 해서 이기면 수비했다고 뭐라 한다 라고 말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오 세제믿윤 오오.


에피소드

  • 윤성효는 부천 SK와의 경기 때마다 윤정환을 전담 마크하는 역할을 맡았다. 윤정환도 기술과 스피드를 겸비한 선수였지만, 악착같이 달라붙는 윤성효의 마킹에 고전을 면치못했고 이를 지켜본 다른 팀들도 부천과의 경기때마다 윤정환을 전담 마크하는 수비수를 따로이 지정해두기에 이르렀다.
  • 윤성효가 1998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1999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코치로 부임하였을 당시, 수원 2군은 해이해진 기강과 경기 능력으로 문제의 온상이었다. 이에 불만을 표시하던 윤성효는, 선수들과 함께 똑같이 훈련하였으며 급기야 자신이 직접 2군 출장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경기를 뛰며 선수들을 규합, 진두 지휘하기에 이른다. 이를 보고받은 김호 당시 수원 감독은 윤성효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며 은퇴를 번복케하고 플레잉코치로 1군 엔트리에 등록시켜 다른 수원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게 하였다.
  • 2011시즌 윤성효의 수원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타팀 팬들은 '세제믿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착각이 있는데 세제믿윤이라는 응원가를 만든건 그랑블루였고 그 줄임말인 세제믿윤은 이미 전부터 사용중이었으나 부진한 모습으로 인해 응원가가 비하의 용어가 된사례 국내축구갤러리에선 손정탁 신드롬에 이은 이슈메이커로 자리매김하였다. 세제믿윤! 성효종신!
  • 윤성효는 수원 감독 부임 후 첫 GS전에서 패하였지만 이후 내리 7연승을 거두며 북패킬러로써 K리그 정의구현에 힘썼다. 수원에서의 마지막 GS전이 무승부로 끝나면서 연승행진은 마감했지만 8경기 연속 무패라는 대위업을 달성하였다. 이후 2013 시즌부터 부산 감독을 맡으면서 이 기록을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고 3월 17일 GS와의 홈경기에서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두면서 팀빨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며 GS전 9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

경력


같이 보기


외부링크


참고

  1. 참고로 당시 축구캠프에 참가한 5명의 한국선수가 각각 윤성효, 박양하, 함현기, 호성호, 변종국이었다.
  2. 기량이 모자란 것도 훈련태도가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 연세대 감독이 윤성효 선수를 기용하지 않았다고. 때문에 윤성효는 개인훈련만 했다고 한다.
  3. 부진한 성적까지는 아니지만, 삼성전자 측이 투자한 금액에 비해 성적이 좋지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4. 형식상 자진사임이지만 수원팬들을 비롯해 대부분은 경질로 생각하고 있다.
  5. 수비를 내리고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에게 공을 몰아주는 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