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우

대전 시티즌 시절의 이관우

이관우(李官雨, 1978년 2월 25일 ~ )는 K리그 대전 시티즌,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활약한 선수로, 라이벌 관계인 시티즌과 블루윙즈 양 팀의 상징적인 선수로 남아있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선수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이관우 (Lee Kwan-Woo)
  • 출생일 : 1978년 2월 25일
  • 신체 : 175cm / 69kg
  • 주로 쓰는 발 : 양 발
  • 수상 경력
2003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MF 부문 선정
2006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MF 부문 선정
2007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MF 부문 선정
  • 국가대표 경력
1996년 AFC U-19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대표
1997년 FIFA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대표
1999년 시드니 올림픽 예선 대표
2000년, 2002년 북중미 골드컵 국가대표
2003년 아시안컵 예선 국가대표
2003년 동아시아축구대회 국가대표
2008년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A매치 통산 13경기 출전 1득점)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 28경기 출전 7득점)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8경기 출전 4득점)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0   대전 시티즌 K리그 12 9 1 1 2 0
2001 12 8 6 4 2 0
2002 19 8 2 1 6 0
2003 38 30 4 5 2 5
2004 29 19 5 2 8 0
2005 32 10 4 5 9 0
2006 23 12 3 3 2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15 7 2 4 2 0
2007 35 23 4 5 2 0
2008 28 28 2 3 3 0
2009 3 2 0 0 1 0
2010 1 1 0 0 0 0
통산 K리그 246 156 30 30 42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6년 1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15.01 ~ 2015.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2 코치
2016.01 ~ 2017.11 감독
2017.11 ~ 현재   수원 FC 수석코치


선수 생활편집

유소년 시절편집

서울에서 태어난 이관우는 중화초등학교, 한양중학교, 한양공업고등학교, 한양대학교를 거쳤다. 한양공고 시절 이관우는 뛰어난 축구센스와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양공고를 제50회 전국중고축구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관우는 이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이관우는 96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97년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20세 이하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에 전반 10분만에 3골을 허용하는 등 탈탈 털린 끝에 2-4로 졌고,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아다일톤에게 무려 6골을 허용하는 굴욕속에 3-10으로 패배, 처참하게 탈락했다. [1] [2] 이 경기에서 이관우는 0-6으로 뒤진 상황에서 통렬한 프리킥 골을 성공하며 잇단 삽질에 답답해하던 축구팬들의 맘을 달래주었다. 한양대학교에 진학해서도 이관우는 맹활약했고 이를 바탕으로 프로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3]


대전 시절편집

이관우가 대전으로 입단하게 되는 과정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한양대학교 시절 이관우는 J리그 아비스파 후쿠오카와 당시 계약금 2천만엔(약 2억4천만원), 2000년 연봉 4천800만엔(약 5억 7천만원)에 이미 입단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하지만, 계약 전에 드래프트를 신청한 것이 문제였다. 당시 최하위 팀이었던 대전은 당연히 이관우를 지명했고, 이관우는 국내 계약을 우선으로 하는 프로 규정에 따라 이중계약자 신분이 되어 선수생활에 위기를 맞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 이관우가 후쿠오카로의 이적을 철회하면서 이관우는 대전의 자주색 유니폼을 입고 K리그 무대를 밟게 되었다.

데뷔 시즌인 2000년, 12경기 1골 1도움으로 연착륙한 이관우는 2001년 12경기 6골 4도움을 기록하며 대전의 사상 첫 FA컵 우승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대전시절 이관우는 직접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빈도는 적었지만, 탁월한 시야를 바탕으로 다른 동료선수들에게 볼을 공급하면서 팀의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뿐만 아니라, 이관우가 세트 피스 전담키커였을 정도로 프리킥 정확성도 높았다. 이관우는 2006년 전반기까지 165경기에 출장, 25골 21도움을 기록하며 대전에 없어서는 안될 스타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수원 시절편집

 
수원 시절의 이관우

2006년 여름 이적시장, 충격적인 이적 소식이 들려왔다. 이관우의 수원 이적이 확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이 이적건도 대전의 이해관계가 얽힌 트레이드였다. 당시 이관우는 2006시즌이 끝나면 FA자격을 취득하게 되어 있었고, 당연히 이관우는 해외 진출을 노린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돈 한푼 없이 이관우를 보낼 수 없었던 대전은 국내 타 구단에 이관우의 이적을 타진했다. 나중에 사장이 바뀌면서 이 일은 없던 일이 되는가 싶었지만, 이관우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큰 상처를 받았고, 결국 구단에 이적을 요청하면서 선수와 구단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대전팬들은 이관우의 등번호인 8번을 쓴 플래카드게이트기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이관우의 이적을 반대했지만, 결국 2006년 7월 22일, 그의 수원 이적이 확정되었다.

수원으로 이적 후 7월 26일 FC GS와의 컵대회에서 선발 출전한 이관우는 무난한 활약으로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2006년 8월 24일 FC GS전에서 멋진 시저스킥으로 팀에 동점골을 안겨주었다. 이 경기에서 그랑블루를 향해 경례 세리머니를 하면서 수원 팬들의 가슴에 자기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이관우의 이같은 활약으로 전반기 하위권으로 처져있던 수원은 13경기 무패를 달리며 대약진,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벌어진 K리그 챔피언십에서도 포항 스틸러스에 승리하며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수원은 챔피언 결정전이라는 중요한 길목에서 열린 마계대전에서 김두현, 모따, 네아가의 맹활약에 우승컵을 내줬고, 대한민국 FA컵 결승에서도 전남 드래곤즈에 패배하며 무관의 제왕에 머물러야만 했다.

2007년에도 이관우는 35경기 4골 5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지만, 팀은 단 하나의 우승컵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2008년, 이관우는 28경기에 출전 2골 3도움을 기록했고, 넓은 행동반경과 시야를 바탕으로 공격진들에게 활로를 열어주기 시작했다. 이관우의 활약 덕분에 수원은 2008년 리그컵K리그를 제패하였고, 이관우는 프로생활 첫 정규리그 우승의 감격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2009년 이관우는 부상으로 고작 3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고, 2010년에는 무릎 부상 때문에 단 1경기에 출장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신임 감독이던 윤성효는 과감한 세대 교체를 단행했고, 잦은 부상과 나이 때문에 뛰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이관우를 방출시킨다. 졸지에 자유 계약 신분이 된 이관우는 뛸 팀을 모색했지만, 높은 연봉과 부상 위험성을 알고 있는 다른 구단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하였고, 결국 그는 아무 팀과도 계약하지 못한 채 이적 시장을 마무리해야 했다.


수원에서 퇴단 후, 싱가포르 진출까지편집

현재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동탄 신도시 부근에서 이관우의 낙지 한마당이라는 낙지집을 운영하고 있다. 입소문이 잘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편이라고 한다. 정작 본인은 선수생활에 욕심이 나는 것 같기도. 그러던 2013년, 결국 싱가포르 리그의 홈 유나이티드에 전격 입단하였다. 팀의 감독인 이임생과 같은 팀에서 뛴 경험이 있는 김대의 등의 조언이 컸던 듯. 이후 2013시즌 S리그에서 5월 현재까지 13경기를 나와 5골을 쓸어담으며 대활약 했다.[4] 이후 2014 시즌까지 홈 유나이티드에서 32경기 출전 10골을 기록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운 이관우는 2014년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연이은 부상으로 주력이 좋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돌파할 때와 동료를 이용할 때를 잘 알고 있었다. 뛰어난 테크닉과 넓은 시야, 패스 센스는 그를 리그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만들어놓았다. 일반적인 한국 선수들이 양 발 사용능력이 좋지만 이관우는 양 발을 완전히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전술적으로 큰 이점이 되기도 하였다.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강한 임팩트를 바탕으로 한 강하고 기술적인 프리킥이 위협적이다.


지도자 생활편집

그의 첫 지도자 커리어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2 코치이며 2015년에 유소년 육성에 힘을 쏟았다. 이듬해 2016년부터는 U-12팀 감독으로 승격되었으며 수원 시절 팀 동료였던 한병용 코치와 함께 팀을 이끌고 있으며 성종현 코치 등이 추가로 합류하여서 유소년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2017년 11월에는 김대의 감독의 요청을 받아 수원 FC 수석코치에 선임, 프로팀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축구 해설가로 진출편집

2015년부터 여자 축구 대회에서 해설로 모습을 나타냈으며, UEFA 유로 2016에서 MBC 중계 해설진에 합류하여 메이저 국제 대회 해설가로 대중들에게 모습을 비추었다.


에피소드편집

  • 대전시절 팀 동료였던 김은중과 함께 대전을 이끌었다. 당시 이관우는 서글서글한 외모와 뛰어난 축구 실력을 바탕으로 여자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 여자팬들이 지금의 퍼플크루가 되는데에는 이관우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 이관우는 유독 FC GS와의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수원에서 기록한 공격포인트의 대부분이 GS를 상대로 넣은 골이다.
  • 이관우는 드물게 대전과 수원에서 모두 레전드로 남아있는 선수다. 대전에서 뛸 당시에는 해외진출의 유혹을 뿌리치고 대전에 7년동안 있었던 것이 대전팬들로 하여금 레전드로 불리게 하는 요인이 되었고, 수원에서는 2006년 8월 24일 FC GS전에서 멋진 시저스킥으로 팀의 동점골을 넣고 거수경례 세레모니를 보여주며 수원팬들의 호감을 얻었다. 이에 수원팬들은 입단한지 2개월 만에 이관우 콜을 만들었고, 이관우도 이에 멋진 플레이로 보답하며 대전과 수원에서 모두 좋은 이미지의 선수로 남아있다. 이제 GS만 안가면 된다
  • 고등학교 시절, 청대에서의 활약으로 이관우는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의 빅 클럽 스포르팅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회택 감독을 따라 한양대로 가게 되었는데 나중에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재활에만 3년을 매달리게 된다. 당시 이회택 감독은 '내가 선수 앞길을 망쳤다' 라면서 한탄했었다고. 그 후 2003년 역시 포르투갈의 거함 SL 벤피카에서 오퍼를 받았지만 '대전에서 좀 더 뛰고 싶다' 라면서 거절하였다 한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00.01 ~ 2006.07   대전 시티즌 K리그
2006.08 ~ 2010.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2013 ~ 2014   홈 유나이티드 S.리그
선수 생활 은퇴


같이 보기편집

참조편집

  1. 많은 축구팬들은 쿠칭참사라 부르고 있다.
  2. 여담이지만 그 당시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비니시우스는 06년 울산에서 활약한 그 비니시우스이며, 6골을 넣으며 한국진영을 폭격했던 아다일톤은 현재 루마니아 리그의 FC 바슬루이에서 뛰고 있다.
  3. 당시 브라질 감독은 10골을 넣은 공격진에 칭찬하기 보다, 3골을 실점한 수비진들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브라질은 16강전에서 벨기에를 맞아 10:0으로 승리하면서 우리나라는 그나마 세골이나 넣었다고 위안 삼을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4. 관련기사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