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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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원(李昌源, Lee, Chang Won, 1975년 7월 10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K리그에서 수비수로 활동하였다.


프로필[편집]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이창원
  • 출생일 : 1975년 7월 10일
  • 신체 : 183cm / 75kg
  • 현 소속팀 : 포항스틸러스에서 선수 생활 은퇴


  • 프로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전남 드래곤즈 2001 15 2 0 0 0 0
2002 11 3 0 0 3 0
2003 8 2 0 0 0 0
2004 29 3 0 1 3 0
2005 26 1 1 0 7 0
포항 스틸러스 2006 27 8 0 0 8 0
2007 22 6 0 0 3 0
2008 5 0 0 0 1 0
2009 0 0 0 0 0 0
통산(K리그) - 143 25 1 1 25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0년 1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10 포항 스틸러스 스카우터 → 코치
2011 ~ 2015.5 포항제철고등학교
(포항 스틸러스 U-18)
감독
2015.6 ~ 2016 대전 시티즌 수석코치
2017 ~ 2018 옌볜 푸더 U23 감독
2019 대전 시티즌 코치
2020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2021 ~ 현재 대구 예술대 감독

선수 생활[편집]

유소년 생활[편집]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출생하여 포철동초, 포철중, 포철공고 등 포항의 유스 시스템을 모두 거친 선수다. 고등학교 때 간 디스토마 등에 걸리면서 축구를 그만둘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극복했다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영남대학교에 진학하여,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준우승ㆍ전국체전 우승 등을 경험한 뒤, 졸업 후 이랜드 축구단에서 실업 축구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선수가 들어간지 얼마 안돼, 이랜드 축구단은 해체되고 말았고 이후 상무 축구단에 입단, 병역 의무를 일찌감치 마친 뒤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하였다.


K리그 생활[편집]

대학을 졸업하고 상무까지 마친 뒤 다소 늦은 나이에, 2001년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하여 2순위로 지명을 받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하였다. 이후 5년 동안 활약한 후 2006년 고향 팀인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였다. 이후 포항 소속으로 2007년 K리그 우승ㆍ2008년 FA컵 우승ㆍ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많은 우승을 경험 한 뒤, 2009년 11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경기에서 은퇴식을 갖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당시 포항 팬들 앞에서 좋은 지도자로 돌아올것을 약속을 하기도 하였다고..


플레이 스타일[편집]

유상수, 이영수, 주영호, 최거룩 등 당대 K리그 터프가이(?)들이 모두 모여있었던 전남 수비진에서, 제 역할을 다해내면서도 상대적으로 영리한 수비를 보이며 상대팀 공격수들을 애먹게 만드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지도자 생활[편집]

은퇴 후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코치로 4개월 간 일하였다.

2010년 5월 10일 포항 스틸러스의 레모스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4개월 만에 경질됨에 따라 박창현 수석 코치가 대신 지휘봉을 잡는 감독 대행 체제로 전환된 이후, 박 감독을 보좌하기 위해 최문식 포항 리저브팀 코치가 1군 코치로 올라가게 되었고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이창원 코치가 부임하였다. 데뷔전인 경남 FC 리저브팀과의 원정 경기에서 전반에만 2골을 내주고 수비수 김창훈까지 퇴장당하면서 패색이 짙었지만 이창원 코치는 수비 형태를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바꾸고 공격 숫자를 그대로 두는 '맞불' 작전을 펼쳐 고기구의 만회골과 김대호의 극적인 동점골로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2010년에는 팀의 R리그 B조 우승을 이루었다.

2011년에는 포항 스틸러스 산하의 U-18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고교클럽 챌린지리그 3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2013년에는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고등부 왕중왕전 결승에 올라, 전북 U-18 전주 영생고를 3-1로 격파하고 더블 우승을 달성하였다. 특히 2014년에는 왕중왕전 결승에서 아쉽게 패하며 2연패는 실패하였으나 문화체육장관배, 대통령금배, 전국체전, 한 중 일 국제 친선대회등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하며 4관왕을 차지하였다.

성적 뿐만 아니라 문창진, 이광혁, 황희찬, 이진현, 김동현 등 대형 유망주들을 길러냈다는 점도 높게 평가할 부분이다. 다음해인 2015년 5월, 대전 시티즌 최문식 신임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전 시티즌의 수석코치로 취임하며 최문식 감독을 1년 6개월동안 보좌하였다. 2017년 3월 당시 박태하 감독이 이끌던 중국슈퍼리그 연변푸더의 19세 및 2군팀 감독으로 선임되며 중국으로 향하게 된다. 2018년 12월 황선홍 감독이 부임하며 2군에서의 성과를 인정받아 1군 코칭 스태프로 합류하였다. 그러나 3개월 간의 전지 훈련을 끝으로 2019년 3월, 시즌을 시작하지 못한채 팀이 해체되었고 한국으로 복귀하였다.

2019년 7월 대전 시티즌 코치로 다시 부임, 약 3년반 만에 대전으로 복귀하여, 반 시즌간 이흥실 감독을 보좌하기도 하였다.

2020년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 부임, 1년여간 활동했다.

2021년 고교, 프로, 해외 팀까지 지도하며 터득한 경험의 폭과 감독으로써의 역량을 넓히기 위해 대구 예술대에 부임했다고 한다.

부임 첫 해에는 명맥만을 겨우 유지하던 팀을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U리그 9권역 2위를 차지, 창단 최초로 왕중왕전에 진출시키며 지도력을 과시하였다.

2022년 제 103회 전국체전 경북 대학 대표 선발전 우승으로 경북 대표로 선발되었고, 제 58회 백두대간기 추계대학축구연맹전 역시 창단 후 첫 우승의 성과를 보여주며, 2005년 팀창단 이후 17년만에 사상 첫 대학축구 우승을 차지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비록 고교축구를 평정하였지만 대학 축구는 매우 달라 성적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과 의문을 특유의 리더쉽과 축구 철학으로 정면 돌파하여 모든 축구인들이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하던 팀을 부임 1년 8개월만에 대학 축구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에피소드[편집]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 리스트인 정재은씨와 2008년 결혼했다. 그런데 2008년에는 베이징올림픽과 남아공월드컵 예선 등으로 FA컵 일정이 12월까지 밀린 상황이었는데, 소속팀 포항이 FA컵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바람에 결혼식 날짜를 연기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경력[편집]

  • 1999 ~ 2000 : 상무 / 실업 (군복무)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