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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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선수시절이흥실.jpg
선수 시절의 이흥실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참가 당시 모습이다.

이흥실(1961년 7월 10일~)은 대한민국 국적의 미드필더 출신 지도자로, 2015년부터 안산 경찰청에서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선수 프로필

  • 이름 : 이흥실
  • 출생일 : 1961년 7월 10일
  • 신체 : 168cm / 65kg
  • 국가대표 경력
198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데뷔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84년 LA 올림픽 아시아 예선 대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대표
(통산 A매치 8경기 출장)
  • 수상 경력
1985년 K리그 신인상 수상
1986년 K리그 정규리그 MVP 수상
1989년 K리그 도움상 수상
1985, 86, 87, 89, 90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5회 수상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특기사항
초대 K리그 신인왕 수상
K리그 시즌 베스트 11 최다 수상자 랭크 공동 4위 (5회)
3년 연속 K리그 시즌 베스트 11 수상[1]
  • 선수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제철 아톰즈 포항제철 아톰즈 K리그 1985 21 5 10 2 1 0
1986 28 3 6 3 0 0
1987 29 4 12 6 3 0
1988 16 6 1 2 2 0
1989 39 6 4 11 3 0
1990 19 1 7 5 1 0
1991 15 11 4 6 0 0
1992 15 7 4 0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 182 43 48 35 10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3시즌 종료 기준.

지도자 프로필

  •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
1991 ~ 2004 마산공업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2005 ~ 2011 전북 현대 모터스 수석 코치
2012 감독 대행
2014 경남 FC 수석 코치 → 2군 감독
2015 안산 경찰청 감독


  • 감독 기록
소속팀 연도 승점 리그 컵대회 FA컵 ACL
전북 현대 2012 79 22 13 9 82 49 준우승 미개최 16강 조별예선
통산 (K리그) 클래식 79 22 13 9 82 49 승률 5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3시즌 종료 기준.


유소년 생활

경상남도 진해 출신으로 진해 덕산초등학교, 마산중앙중학교를 거쳐 마산공고, 서울 한양대학교를 나왔다. 덕산초 5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였으며, 고교 시절부터 전국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대학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한양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한양대 2학년 시절 처음으로 대표팀에 선발되는 등 정상급 선수로 두각을 나타낸바 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후보에 맴돌아 아쉬웠을듯..


프로 생활

1985년 포항제철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미 정상급 기량을 가진 선수로 널리 알려진데다 한양대 시절 은사였던 최은택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되어, 데뷔 직후부터 꾸준한 출전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에 보답하듯 이흥실 선수는 프로 무대에서 두경기 출장만에 데뷔골을 터트리고, 어려운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기록. 85시즌 10골-2도움의 활약으로 K리그 신인왕에 오르게 된다. 이 때 K리그 신인왕을 처음 선정했기 때문에, 이흥실 선수는 K리그 역사상 신인왕 1호라는 타이틀도 얻게되었다.

(추가해야함)

1992년 FA 제도에 대한 구단과의 마찰로 1년 후 완산 푸마로 이적 했으나, 완산이 리그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하자 대통령배 참가 후 은퇴하였다.

선수 시절 플레이 스타일

80년대 시절, 드문 플레이스타일을 가진 테크니션으로 스피드와 발재간을 동시에 지닌 미드필더였다. 특히 공격적 재능에 충실하여 슈팅과 패스를 자유자재로 넣어줄 수 있는 선수였다.[2]


지도자 생활

은퇴 후 바로 모교인 마산공고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고 13년간 마산공고를 이끌며 어린 선수를 육성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던 2005년 여름, 조윤환 감독의 사임으로 공석이었던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으로 최강희 감독이 부임하면서 평소 최감독과 절친했던 이흥실 씨도 전북 현대 모터스의 수석코치로 동시에 부임하게 된다. 이후 최강희와 이흥실 두 콤비는 어려웠던 팀 사정을 딛고 2005년 FA컵 우승,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009년 2011년 K리그 우승 등의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2012년 최강희 감독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의 임대(?)가 결정되었고 자연스럽게 이흥실 수석코치가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대행을 맡아 1년간 팀을 이끌었다. 시즌 초반 경기력의 저하, 후반기 수비진의 잇따른 부상 등 악재 속에서도 2012 K리그 준우승을 일구어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ACL과 FA컵 등 여타 대회의 조기 탈락 등을 이유로 결국 1년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고 말았다. 2014시즌을 앞두고 경남 FC수석 코치로 부임, 이차만 감독을 보좌하게 되었다. 2014시즌 중반, 세르비아 출신인 브랑코 기술고문이 선수단에 합류하면서 이흥실 수석코치가 2군 감독으로 좌천되어, 논란이 일었다.[3] 2015년부터 안산 경찰청의 감독을 맡게된다.


지도 스타일

  • 공격 중심의 전술을 운용하고 있지만, 팀 스피드를 끌어올리기 보다는 공을 점유하고 빈 공간을 계속적으로 찾아들어가는 움직임을 중요시한다. 때문에 공격형 미드필더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기 운영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에피소드

  • 1980년대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이자 포항의 전설적인 프랜차이즈 선수이나, 국가대표에서의 활약도가 약했고[4] 당대 포철의 꽃은 최순호 였던 관계로 많은이들에게 선수 시절의 활약상이 전승(?)되지 못하고있다.
  • 80년대 K리그의 조악한 그라운드 사정은 테크니션이었던 이흥실 선수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무릎 부상은 달고 뛰다시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기록을 세웠으니.. 혹자는 이흥실 선수가 지금의 인프라에서 K리그 무대를 호령하였다면, 신태용을 넘어 60-60 클럽도 가능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 선수 시절의 화려함에 비해, 지도자로서의 경력은 아직 미지수라는게 중론. 마산공고 시절에는 좋은 선수들을 여럿 길러냈지만 이들 중 K리그 승부조작에 연루된 선수가 3명이나 나와[5] 이흥실 씨의 마음을 아프게하였으며.[6] 전북의 지휘봉을 임시로(?) 잡은 2012시즌 현재도 최강희 감독과 비교되어 늘상 까이고있다. 대표적인 상용구가 이흥실 감독대행의 이름을 빗대 만든 흥겹게 실점. 다행히 6월에 접어들면서 팀이 급격하게 안정되어 흥실매직 소리를 듣기도..
  • 경남 창단 이후 새로운 감독을 선임해야 할 때마다 끊임없이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이다. 경남으로 오기 전 까지만 하더라도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에 속했으나, 이와 별개로 이흥실은 고향팀인 경남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경남 창단을 준비하던 2005년 도민주 공모에 참여하였으며, 비록 대행이었지만 K리그 팀 감독을 역임했던 그가 수석코치로 경남으로 간 이유도 고향팀에서 헌신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7]


경력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1. 또다른 3년 연속 수상자는 홍명보가 있다.
  2. 하지만 프로 무대에서의 플레이와 달리 대표팀에서는 수비력이 상당히 강조되었고 때문에 리그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던 이흥실 선수도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표팀에 자주 선발되지는 못하였다.
  3. 관련 기사 : 경남 FC 외국인 기술고문 효과 있을까 [1]
  4. 당시 K리그의 위상이 국가대표 양성소 수준 이었던걸 상기해보자
  5. 김인호, 김동희, 故 정종관
  6. 특히 이흥실, 정종관, 김인호 선수가 모두 전북에 소속되어있던 시절 위 세명을 묶어 마산공고 트리오라 불렀는데 그 중 2명이 축구계에서 흑역사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7. 관련기사 : 땀으로 만든 '도민구단 신화' 이대로 묻혀선…


  1. 넘겨주기 틀:K리그 1985 베스트 11
  2. 넘겨주기 틀:K리그 1986 베스트 11
  3. 넘겨주기 틀:K리그 1987 베스트 11틀:K리그 1989 베스트 11틀:K리그 1990 베스트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