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버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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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버팔로
Buffalo.png
기본정보
정식명칭 전북 버팔로 프로축구단
원어명 로마 :Chonbuk Buffalo
이전이름 완산 푸마
(1993.1.16~1993.11.3)
완산 제우 엑스터
(1993.11.4~1994.2.21)
전북 엑스터[1]
(1994.2.22~1994.3.17)
전북 버팔로[2]
(1994.3.18~1994.11.23)
창단년도 1993년
홈경기장 전주종합운동장
연고지 전라북도
운영
운영법인 (주)제7전북 프로축구단
(1994.3~1994.9)
한국프로축구연맹
(1994.9~1994.11)
구단주 문수기
단장 정일진
감독 김기복
소속리그 K리그
홈페이지
현재시즌


역사

완산 푸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완산 푸마 사태후에 컴퓨터 조립기업인 제우정보의 스폰을 받아 새롭게 전북 엑스터로 94 시즌에 데뷔를 앞두고 있었으나 1994년 3월15일 정일진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새 구단주 문수기 (주)보배 대표이사와 배성수 (주) 제우정보 대표이사가 만난자리에서 제우정보의 년간 12억원(3년간 36억원)의 계약은 허위이고 실제로는 년간 3억원으로 밝혀졌다는 이면계약 사실을 폭로한다. 이로 인해 다시한번 리그 참가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지만 3월18일 보배소주의 대표이사 문수기 구단주가 팀 운영의 강한의지를 보여주었고 구단주가 재정을 책임진다는 조건부로 전북 프로축구단 창단이 허용되었고 프로축구에 참가하게 되었다. 팀 명칭은 전북 버팔로 축구단이었으며, 완산 푸마 사태로부터 무려 2년여가 지난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물의로 인해 구단 스스로 드래프트에는 참여하지 않았고[3] 완산 푸마의 프로리그 참가가 무산되며 그동안 드래프트와 트레이드로 이뤄놓은 전력들도 은퇴하거나 타 구단으로 이적해 버리며 24명의 선수단이 존재했지만 팀은 대학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그나마 팀이 안 엎어지고 K리그에 참가한데 감지덕지하며 김기복 감독의 지휘아래 1994년 K리그에 참가하였지만 팀 지원은 완산 푸마 때보다 별반 나아진게 없었다. 김기복 감독은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시간보다 돈빌리러 다니느라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았고, 전북 버팔로 형편을 취재하러 간 기자에게 김기복 감독이 통사정해 돈을 꾸어서 선수단 밥값을 해결(?)하는 등 전설같은 일화를 남겼다. 결국 문수기 구단주는 힘에 부치면서 1994년 8월말 버팔로 운영을 포기를 선언했고[4][5] 1994년 9월6일 이사회에서 팀 해체를 전제로 한 연맹의 한시적 직영운영이 결정되며,[6] 구단 사무실은 폐쇄된다. 1994년 11월12일 일화 천마와의 경기를 치룬 뒤 11월23일 승인이 취소되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협력업체 현양이 10억원을 출자하고 현대자동차를 홍보 스폰서로 20억원을 후원하여, 독립법인체 전북 다이노스를 재창단 함에 따라 전북 축구의 맥을 이어나간다. 이에따라 전북 버팔로 축구단의 백송, 김경래 등 몇몇 선수는 재창단한 전북 현대 다이노스와 계약을 맺으며 프로 생활을 이어갔으나 대다수의 선수는 1년도 안되는 짧은 프로 생활을 마치고 전북 버팔로와 운명을 같이하고 말았다.

현재의 전북 현대 모터스 역사의 출발은 전북 다이노스가 공식 창단식을 거행한 1994년 12월부터로 잡고 있기 때문에 전북 버팔로와는 단절되어 있으며 그 역사는 K리그 공식 사이트에서도 별개로 흑역사 취급하고있다.[7]

기록

역대 성적

시즌 리그 순위 경기 승점
1994년 K리그 7위 30 3 5 22 30 62 14
아디다스컵 6위 6 2 0 4 7 15 6


전북 버팔로 역대 선수


전북 버팔로의 역대 등록 선수 목록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분류:전북 버팔로의 선수를 클릭하십시오.
● 표시는 이듬해 전북 다이노스 창단맴버.

특기 사항

  • K리그 최다 연패 기록팀 (10연패)


에피소드

  • 유독 대우 로얄즈에게 강한 모습을 보였던 팀이다. 전북 버팔로가 얻은 3승2승이 대우 로얄즈를 상대로 거둔 성과일 정도. 게다가 아디다스컵 2승 중 1승도 역시 대우에게 거둔 승리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 전북 버팔로에서 대활약한 김경래, 김동훈 선수 등의 전 소속팀이 다름아닌 대우 로얄즈였기 때문. 이들은 오랜시간 대우 로얄즈 멤버였음에도 2군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던 선수들이었으나 전북 버팔로로 이적 후 대우 로얄즈를 상대로 멋지게 복수하는데 성공했다.
  • 김기복 당시 전북 버팔로 감독에 의하면, 홈이든 원정 경기든 선수단 숙소가 정해져있지 않아 경기가 끝나고 어디로 선수를 데려가야할지 부상이나 휴가 선수의 경우, 며칠날까지 어디로 복귀하라고 지시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목동 운동장에서 일화 천마와 마지막 경기를 치른 뒤, 갈비집에서 나름대로의 해단식을 마치며 유종의 미는 거두었다고 한다.
  • 공식적으로 이 구단을 지원한 기업은 3개 기업이 있지만. 모두 끝이 좋지 않았다. 완산 푸마 시절 메인스폰서이던 몬테로사 인터내셔널은 93년 겨울에 이랜드에 인수되었고, 전북 엑스터 시절의 메인스폰서이던 제우정보는 95년 4월에 부도처리 된다. 버팔로를 이끌던 보배소주도 95년 7월에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97년 4월 조선맥주가 인수하게된다. 한때 각자 시장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기업들이었으나 프로축구단을 이끌거나 후원할 정도로 재무구조가 튼튼하지도 않았다.
  • 국내에서 처음으로 연고지명이 공식 구단명에 들어간 구단이다.[8]1996년 완전지역연고지제도[9] 실시이전인 1995년 전남 드래곤즈전북 다이노스가 연고지명을 공식 구단명에 넣었으나,버팔로는 이보다 1년이 앞선다.
  • 이듬해 창단된 별개의 구단인 전북 다이노스95 아디다스컵 전주 개막전에서 완산 푸마와 버팔로의 회원권을 우대한다는 문구를 홍보 포스터에 넣는다. 이는 다이노스가 버팔로를 승계한다는것이 아니라. 어려운 시절 전북 축구 발전에 동참한 지역팬들을 우대하고 프로축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한다.[10]


전북 버팔로 사건 연혁

  • 1991년 09월 27일 - 전라 진도개 프로축구단 창단 발표(전주코아호텔)
  • 1992년 03월 06일 - 푸마, 창단신청서 제출
  • 1992년 03월 09일 - 대한축구협회 프로위원회, 창단승인 유보 결정
  • 1992년 03월 11일 - 완산 푸마 프로축구단으로 팀명 변경
  • 1992년 06월 19일 - 대한축구협회 프로위원회, 창단승인 유보 결정
  • 1992년 07월 14일 - 완산 푸마, 창단승인
  • 1992년 08월 18일 - 정규풍 감독 선임
  • 1992년 09월 28일 - 선수단 합동훈련 돌입
  • 1992년 10월 01일 - (주)완산스포츠클럽 법인 설립
  • 1992년 11월 26일 - 6개구단 단장협의회, 완산 푸마 승인유보 건의의결
  • 1992년 11월 28일 - 대한축구협회 제6차 상임이사회, 완산 푸마 승인 재확인
  • 1992년 11월 30일 - 선수 드래프트 참여
  • 1993년 01월 16일 - 완산 푸마 프로축구단 창단식 (전주관광호텔)
  • 1993년 02월 10일 - 선수단 계약금 미지급 확인
  • 1993년 02월 16일 - 대한축구협회, 선수등록 기한 2월28일로 연장(실질적으로는 3월2일)
  • 1993년 02월 28일 - 선수단,코칭스탭 계약금 지급 마무리
  • 1993년 03월 02일 - 계약금으로 지급된 어음부도, 선수등록 무산
  • 1993년 03월 12일 - 선수단 급여.계약금 지급, 참가 재요청
  • 1993년 05월 05일 -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프로2군 자격으로 참가
  • 1993년 11월 04일 - 제우정보와의 스폰서 체결, 제우 엑스터 출범
  • 1994년 02월 16일 - (주)완산스포츠클럽으로부터 분리 독립,(주)제7전북프로축구단 법인설립 [11]
  • 1994년 03월 15일 - 정일진 단장, 기자회견 스폰서 이면계약 폭로
  • 1994년 03월 18일 - 대한축구협회, 조건부 참가 허용. 구단명 전북프로축구단으로 변경
  • 1994년 03월 30일 - 프로리그 데뷔전(VS 유공(순천))
  • 1994년 04월 02일 - 첫 홈경기 (VS LG(전주))
  • 1994년 04월 30일 - 프로 1승 (VS 대우(구덕))
  • 1994년 08월 25일 - 문수기 구단주, 구단포기
  • 1994년 09월 06일 - 한국프로축구 연맹 직영체제
  • 1994년 10월 16일 - 구단 사무실 폐쇄
  • 1994년 11월 12일 - 마지막 경기 (VS 일화(목동))
  • 1994년 11월 23일 - 연맹 이사회, 창단승인 취소(해체)

갤러리


같이 보기


외부 링크

[6] (김현회 "버팔로와 다이노스, 그리고 지금의 모터스 이야기")

참고

  1. <프로축구소식>전북 엑스터 사무실 개설 (1994년 02월 23일 연합뉴스) [1]
  2. 축구協 제7구단 정규리그 참여 허용키로 (1994년 03월 18일 연합뉴스) [2]
  3. 그러나 이 역시 표면적인 이유였고,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새로운 선수를 지명하여 계약금을 줄 여유가 없어서 불참하는것으로 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엑스터와의 후원 조인식 이후 전력 강화의 방안으로 94년 드래프트 참여를 밝힌바가 있었다. 그러나 드래프트에 참여하더라도 선수들은 작년처럼 7구단에 지명될것을 우려하여 드래프트 참가를 포기하는일이 반복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4. 전북버팔로, 정규리그 참여 재확인 (1994년 08월 31일 연합뉴스) [3]
  5. 1994년 보배소주는 4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구단주의 사재로 반년만에 5억여원이 들었으니 큰 부담이 아닐수가 없었다.
  6. 프로축구聯,전북팀 연말까지 지원키로 (1994년 09월 06일 연합뉴스) [4]
  7. 현대, 전북에 별도축구팀 창단 (1994년 11월 24일 연합뉴스) [5]
  8. 포항제철 아톰즈의 경우는 연고지명인 포항이 아니라 기업명인 포항제철이 들어간것이다. 당시 언론에서도 포항제철 아톰즈의 구단명을 순위표에 약자로 표시할 때 포철로 표시하였다. 1995년 법인화를 통해 포항 아톰즈로 팀명이 변경됐을때 순위표에 약자로 포항을 표기하였다.
  9. 이를 계기로 팀명에 공식적으로 연고지명이 표기됐고 언론도 모기업명이 아닌 연고지명으로 표기했다.
  10. 월간축구 1995년 5월호 66P
  11. 1994년 2월16일에 신규 법인설립과 함께 팀명을 전북버팔로로 변경된것으로 알려진 기사들이 있고, 대한축구협회에서 발행한 94하이트배코리안리그 가이드북도 이리 표기하고 있으나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3월까지는 전북 엑스터라는 팀명을 사용했음을 알수있다. 전북 엑스터로 팀명을 변경하면서 (주)제7전북프로축구단 법인설립을 한것으로 추정된다.
  12. 이 엠블럼은 공식이미지가 아닌 신문기사에 나온 이미지에 컬러를 입혀 복원한 복원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