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국

광주 FC의 시절 정조국

정조국 (1984년 4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2003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트라이커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정조국
  • 출생일 : 1984년 4월 23일
  • 신체 : 186cm / 78kg
  • 수상 경력
2003년 K리그 신인상
2004년 2004 하나은행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 득점상
2016년 K리그 클래식 득점상
2016년 K리그 MVPK리그 클래식 시즌 베스트 11 FW 부문 선정
  • 국가대표 경력
2000년 AFC U-17 챔피언십 예선 대표
2002년 AFC 청소년 선수권대회 본선 대표
2003년 200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 대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2006년 AFC 아시안컵 2차 예선 대표
2011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친선경기 선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13경기 출전 4득점)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 10경기 출전 3득점)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20경기 출전 15득점)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 3경기 출전 3득점)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3   안양 LG 치타스 K리그 32 25 12 2 3 0
2004   FC GS 30 22 8 2 2 0
2005 26 22 3 1 1 0
2006 27 25 6 3 2 0
2007 19 13 5 1 4 0
2008 21 13 9 5 4 0
2009 25 21 7 1 2 0
2010 29 23 13 4 1 0
2012 17 17 4 0 2 0
2013   경찰 축구단 챌린지 24 9 9 2 3 1
2014   안산 경찰청 12 11 7 1 1 0
  FC GS 클래식 2 2 0 0 0 0
2015 11 10 1 1 0 0
2016   광주 FC 31 16 20 1 4 0
2017   강원 FC 0 0 0 0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270 187 88 21 25 0
K리그 챌린지 36 20 16 3 4 1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7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전라북도 부안군 출신으로 초등하교 시절 서울로 올라가 갈현초등학교와 대신중학교, 대신고등학교를 거쳤다. 대신고 1학년 시절부터 연령별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고교 3학년 시절 고교 축구와 대표팀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공격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다.


프로 생활편집

안양 시절편집

고교 졸업 후, 김호 수원 감독과 더불어 고교 졸업자와 중퇴자 유망주를 열을 올리던 조광래 감독의 눈에 띄어 중학교 중퇴생인 송진형고명진 등과 함께 조광래의 아이들 사단에 합류하여 K리그 신인선수 선발 2003을 통해 안양 LG에 입단하였다. 입단 첫 시즌부터 신인 중 가장 좋은 활약을 보이고 조광래 감독의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32경기에 나서서 12골 2도움을 올리는 특급 활약을 선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정 선수는 K리그 신인상을 거머쥐기도 하였다.


GS 시절편집

안양에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른 정 선수는 프로 데뷔 소속팀이 서울특별시연고이전을 강행함에따라 FC GS의 첫 시즌 멤버로 활동하게 되었다. 첫 시즌에는 마찬가지로 조광래 감독의 지원아래에서 30경기에 출전하였고, 8득점을 올리는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기도 했으나, 2005년부터 FC GS에 입단하 박주영에게 특급 공격 유망주 자리를 내주면서 입지가 애매해지기도 하였다. 이후 2007년까지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만 완벽히 붙박이 스트라이커로 자리잡지 못하고 후보 스트라이커에 그치고 말았는데,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에서 데얀과 준수한 호흡을 보이며 소속팀의 리그 첫 준우승에 이바지하였으며, 활약을 이어가 쏘나타 K리그 2010에서 포르투갈 국적의 감독 넬로 빙가다의 신임에 힘입어 데얀과 함께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여 FC GS의 첫 번째 우승을 이끌기도 하였다.


프랑스 진출편집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준수한 활약으로 해외 진출에 성공하였으며, 그 팀은 프랑스 1부 리그 소속의 AJ 오세르였다. 2010-10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입단한 정 선수는 2011년 2월 시즌 첫 골을 넣어 순조로운 해외 생활을 하는 듯 하였으나, 대부분 교체로 출전하는 데 그치고 말았고, 반 시즌 동안 두 골로 마무리하였다. 이후 시즌 종료와 함께 AJ 오세르를 떠나 AS 낭시로 임대 이적하게 되었다.[1] 2011-12 시즌 초반에 간간히 경기에 출전하였고, 2011년 10월 올림피크 리옹과 경기에서 낭시 소속으로 첫 득점을 넣는 데 성공하였고 이후 한 골을 더 추가하였으나, 이후 득점 소식을 알리지 못하고 시즌 두 골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 종료와 함께 AJ 오세르에서 방출되었다.


국내로 복귀편집

AJ 오세르를 퇴단한 군 복무를 위해 국내 복귀를 기정 사실화 했고, 다시 친정팀 FC GS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후반기 동안 4골을 넣었다. 이후 경찰청 축구단으로 입대에 성공하였으며, 2014년까지 경찰청 소속 주포로 활약하였다. 이후 2014년 9월부로 군 전역으로 다시 팀에 복귀하였으나, 부상 등의 이유로 전체적으로 컨디션 난조에 빠지고 말았고, 이는 2015년까지 이어져 다시 GS로 돌아온 박주영과 함께 공격을 이끌 것이란 기대와 무색하게 11경기에 출전하여 1득점을 올리는 것이 전부였고, 경기력도 심각하게 저하되고 말게 되었다.


광주 시절편집

2016년 오랜 기간 활동하였던 FC GS를 떠나 김민혁과 함께 광주 FC에 입단하였다. 근래들어 심각한 부진과 주전 스쿼드에도 들지 못하는 모습으로 실전 감각이 저하되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있기도 했으나, 남기일 감독은 정 선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하였고, 시즌 개막전부터 득점포를 가동하고 중요한 경기마다 골을 넣는 활약으로 광주의 특급 공격수로 대활약 중에 있다. 8월까지 14골을 넣으며 득점 부문 선두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프로 통산 한 시즌 개인 최다 득점인 2010년 13득점을 반 시즌 만에 돌파하여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게다가 프로 300경기와 프로 통산 100골을 넣기도 했다. 이후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기도 했으나, 하위 스플릿 라운드 최종전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경기에서 동점골을 성공, 한 시즌 20골을 넣는 저력을 보이며 K리그 득점상시즌 베스트 11 그리고 K리그 MVP를 수상해 3관왕에 올랐다.


강원 입단편집

그러나 광주 FC를 떠나는 것이 확정되며 새로운 소속팀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J리그 진출이 유력했으나, 2016년 12월 21일로 이적 시장에서 역대급 행보를 보이는 강원 FC에 입단하게 되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높은 골 결정력과 안정적인 볼 소유를 장점으로 하는 스트라이커이다. 그러나 20대 시절까지 정적인 움직임에 좋은 신체 조건을 가지고 적극적인 몸싸움을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에피소드편집

  • 2003년 대활약으로 당시 안양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기도 하였으나, 이후 벌어진 연고이전 사태를 적극 옹호하는 발언으로 안양팬들과 사이가 완전히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 2009년 탤런트 김성은 씨와 결혼에 성공하였다. 결혼 이후 아들 정태하 군이 2010년 태어나자 정 선수도 맹활약을 하였는데, 이를 두고 "분유캄프"로 불리기도 하였다.
  • 프랑스 진출과 군 복무 이후 급격히 떨어진 컨디션으로 당시 소속팀 팬들에게 퇴물 취급까지 받기에 이르렀는데, 2016년 광주로 이적이 신의 한수가 되며 2003년 2010년보다 기량이 더 좋아졌다는 제2의 전성기로 평가를 받았고, 한 시즌 20골을 넣는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과시하였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03   안양 LG 치타스 K리그
2004 ~ 2010   FC GS K리그
2011.01 ~ 2012.07   AJ 오세르 프랑스 리그 1
→ 2011.07 ~ 2012.06   AS 낭시 프랑스 리그 1 임대
2012.07 ~ 2015.12   FC GS K리그 클래식
→ 2013 ~ 2014   안산 경찰청 K리그 챌린지 군복무
2016   광주 FC K리그 클래식
2017 ~ 현재   강원 FC K리그 클래식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정조국 선수를 AJ 오세르로 불러들인 감독이 AS 낭시로 팀을 옮기게 되면서 다시 임대로 불렀던 것이라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