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은행

CHB조흥은행의 마지막 CI

조흥은행(朝興銀行, Chohung Bank)은 신한은행의 전신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자 은행이었다. 1897년 2월 한성은행으로 설립되어, 2006년 4월 1일 신한은행을 합병하여 신한은행으로 변경되었다.[1] 조흥은행 축구단1969년 3월 19일 금융단 4번째 축구단으로 창단되어 금융단축구리그실업축구에서 활동하였다가 1983년 12월, 금융단 축구단 중 4번째로 해체되었다.



조흥은행편집

연혁편집

 
조흥은행 심벌마크 변천사
  • 1897년 2월 1일 : 한성은행 설립. 본점은 현재의 종로 영풍빌딩 자리로 추정.
  • 1903년 : 공립은행으로 전환, 본점을 종로구 안국동으로 이전
  • 1905년 : 주식회사로 전환. 본점을 중구 다동으로 이전
  • 1912년 : 본점을 중구 남대문로 1가(현, 신한은행 광교영업부)로 이전
  • 1938년 : 해동은행 인수
  • 1941년 : 경상합동은행[2]을 합병
  • 1943년 10월 : 동일은행[3]이 합병하여 조흥은행으로 개칭(조선을 흥하게 한다는 뜻)
  • 1956년 3월 : 증권거래소 상장
  • 1966년 12월 : 본점 신축. 18층, 최초의 엘리베이터 설치
  • 1969년 : 조흥은행 축구단 창단
  • 1983년 : 조흥은행 축구단 해체
  • 1985년 7월 : 조흥은행 CIP(Corporate Identity Program)도입 (떠오르는 3개의 태양)
  • 1997년 : 창립100주년을 기념하여 광화문지점에 조흥금융박물관 개관(현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
  • 1999년 5월 3일 : 충북은행과 합병 및 조흥은행 새 CI 선포. CHB조흥은행
  • 1999년 9월 : 강원은행과 합병.
  • 2003년 9월 : 신한금융그룹 계열 편입
  • 2004년 7월 2일 : 상장폐지
  • 2006년 4월 1일 : 구 조흥은행과 신한은행과 합병하여 신한은행으로 개칭

조흥은행 축구단편집

조흥은행 축구단은 1969년 3월[4] 창단되어 1983년 12월 해체된 실업 축구단이다. 창단 시점부터 1981년까지 함흥철 전 국가대표 감독이 13년간 지휘봉을 잡아 좋은 성적을 거두어 왔으나, 함흥철 감독이 자진 사임한 뒤로는 명맥만 유지하다 1983년을 끝으로 해체되었다.


주요 성적편집

  • 금융단 축구대회
    • 우승 : 1969년 (대통령배)
    • 준우승 : 1971년 (대통령배), 1972년 (국무총리배)


주요 인물편집

조흥은행 축구단 주요 인물
함흥철홍인웅조한흥홍충승강창기


에피소드편집

  • 창단 당시 중동고 졸업생 6명, 중앙대 졸업생 5명, 경희대 졸업생 2명으로 시작하였는데, 이후 선수들이 군입대를 하게 되자 선수층이 극도로 얇아져 부진에 빠지게 됐고, 이후 한동안 군 제대자 위주로 선수를 선발했었다고 한다.
  • 위에서 언급한대로 군입대 사례가 이어지다 보니, 특히 골키퍼가 부족했다. 압권은 1970년 추계실업축구연맹전의 사례로 당시 조흥은행 골키퍼 2명이 모두 군입대를 하자 함흥철 코치가 선수 등록을 하고 출전을 감행, 12경기 출장 7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던바 있다. 이후 1977년의 경우에도 골키퍼가 1명밖에 남질 않아, 국가대표 수문장 출신인 함흥철 당시 조흥은행 감독이 여차하면 뛸 준비를 해야했으며, 실제로 대회 도중 골키퍼가 퇴장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함흥철 씨가 직접 교체투입되어 경기를 치루기도 하였다.[6]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합병 상호는 신한은행이나 존속 법인은 조흥은행으로 한다고 하였으나 법인의 역사만 승계하고 상호 법인명 모두 신한은행이 되었다. 결국 통합 신한은행이 조상제한서의 상석을 차지하는 것 외에는 조흥은행은 완전히 버림받았다.
  2. 1928년 7월 대구은행과 경남은행이 합병하여 설립되어 대구에 본사를 둔 민족계 지방은행, 조선총독부의 민족계 은행 통합에 따라 한성은행에 통합되었다.
  3. 1931년 한일은행과 호서은행을 합병한 후 설립된 민족계 은행이다. 1942년 호남은행도 흡수하였다.
  4. 창단식이 1969년 3월이고 1968년 9월에 창단에 들어갔다.
  5. 해군과 공동우승.
  6. 당시 함흥철 씨의 나이는 '4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