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국

성남 시절 최성국과 김동현

최성국(崔成國, 1983년 2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였으나, 공전불후의 K리그 승부조작 사건 당시 대표적 가담자 중 하나로 한국축구계에서 퇴출되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최성국
  • 출생일 : 1983년 2월 8일
  • 유스클럽 : 고려대학교 중퇴
  • 신체 : 172cm / 68kg
  • 현 소속팀 : 축구계 제명
  • 국가대표 경력
2003 FIFA U-20 월드컵 대표
2004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
2005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2007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통산 A매치 24경기 출장 2골)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울산 현대 호랑이 2003 27 22 7 1 5 0
울산 현대 호랑이 2004 19 10 1 4 2 0
울산 현대 호랑이 2005 16 14 1 3 4 0
울산 현대 호랑이 2006 35 13 9 4 3 0
성남 일화 천마 2007 28 20 3 2 3 0
성남 일화 천마 2008 26 24 7 3 3 0
광주 상무 2009 28 5 9 3 2 0
광주 상무 2010 24 6 4 2 5 1
성남 일화 천마 2010 4 1 0 1 1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 12 9 1 2 2 0
통산 (K리그) - 219 124 42 25 30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8월 1일 기준.


유소년 시절편집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동곡초등학교, 역곡중학교, 정명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를 중퇴하였다. 167cm로 단신이었던 최성국은 민첩하고, 개인기가 좋아 환상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 2, 3명을 쉽게 따돌리는 점이 디에고 마라도나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리틀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붙었다. 최성국은 학원 축구계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여효진, 차기석, 정조국과 함께 대표팀의 훈련생으로 뽑히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자원으로 기대를 모았다. 또한 청소년대표에도 발탁, 대한민국 U-20 팀이 19세 이하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03년 개최된 FIFA U-20 월드컵에서 당대 최고 기대주였던 김동현과 투톱으로 출전[1], 이번엔 4강 신화 재연을 호언장담 해봤지만 16강전에서 일본 청대에게 덜미를 잡히며 탈락하고 말았다. 이때 최성국 선수는 16강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한국축구의 체면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울산 시절편집

청소년대표로 승승장구하던 최성국은 2003년 울산 현대에 계약금 3억, 연봉 2천만원, 계약기간 5년의 최고급 계약을 통해 울산에 입단하였다.[2] 첫 시즌 27경기에 나와 7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고, 팀도 승승장구하며 성남 일화 천마와 우승 경쟁을 벌였지만 당시 최강전력을 자랑하던 성남에 밀려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고, 신인왕 타이틀도 안양 LG 치타스정조국에게 밀리며, 신인왕 자리도 놓쳤다. 이듬해인 2004년 최성국은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과 본선에 잇달아 출전하면서, 피로가 누적된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상까지 당하면서 19경기 1골 4어시스트로 2년차 징크스에 허덕이기도.. 이듬해엔 2005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2차전에서 골을 기록하는 등 [3] 팀의 우승에 공헌했지만, 가시와에서 잠시 임대되었다가 온 탓에[4] 시즌 성적은 16경기 1골 3어시스트로 부진했다.

하지만 프로 4년차를 맞이한 2006년, 35경기에 출전 9골 4도움을 기록하면서 소포모어 징크스를 떨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A3 챔피언스컵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성남 시절편집

2006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성남은 공격 라인의 강화를 위해 최성국을 영입하기로 판단을 내렸고, 울산에 이적료만 약 12억을 내주면서 최성국을 데려왔다. 최성국은 이적 첫 시즌인 2007년 28경기에 나와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기록면으로 보면 부족한 활약으로 보일 수 있으나 당시 최성국이 뚫어준 활로를 통해 모따, 두두가 골을 넣었기에 많은 호평을 받았고, 이듬해인 2008년에는 7골 3도움을 기록하면서 스탯도 준수하게 뽑아내기에 이른다. 특히 2008년 8월 2일에는 한국과 일본 프로축구 사상 첫 올스타 맞대결인 'JOMO CUP 2008'에서 대회 MVP를 차지하는등 물오른 기량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조모컵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승컵과 인연은 없는 편이었는데 2007년에는 정규 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포항에 밀려, 2008년에는 전북 현대에 밀리면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상무 시절편집

2008시즌 종료 후 광주 상무에 입대한 최성국은, 상무의 주전 공격수로 낙점 받으면서 첫 해부터 28경기 9골 3도움을 기록, 상무 돌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이듬해인 2010년에도 24경기 4골 2도움을 기록하고 9월 전역하여 성남에서 4경기를 더 뛰었고,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엔트리에도 들면서 성남의 ACL 우승에 밥 숟가락을 얹었다.


수원 시절편집

2011시즌을 앞두고 12억원의 이적료로 수원으로 이적했다. 재정난이었던 성남이 더 이상 최성국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5] 최성국은 수원 입단 1주일 만에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솔선수범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즌에 들어서자, 최성국은 골욕심에 치우친 나머지 패스하기를 꺼렸고, 주장이라는 선수가 팀에 도움이 안되는 플레이를 하면서 수원은 무승의 늪에 빠져만 갔다. 그 무렵 승부조작 파문의 칼끝이 최성국을 겨누자 최성국은 워크샵에서 나는 결백하다라고 주장했지만, 7월의 첫날, 승부조작 모의에 참석한 사실을 시인하였고,[6] 이후 드러난 검찰 조사에서 김동현을 꼬드긴 브로커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최성국의 주장은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 최성국이 받은 돈은 고작 400만원, 선수 연봉에 100분의 1도 안되는 돈 때문에 선수 인생을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후편집

결국 승부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게된 최성국은 수원 구단으로부터 임의탈퇴 처분과 함께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축구계 복귀 허용 절대 불가, 전원 선수 및 지도자 자격 영구 박탈 징계를 확정받았다. 그러는 와중에 최성국은 선수 생활에 미련이 남았는지 마케도니아로 날아가 FK 라보트니키 팀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이 팀에는 2001년부터 2004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뛰었던 코난이 코치로 있다. 현지에서도 최성국을 영입해야 하냐 마느냐로 찬반논란이 붙은 상태다.

결국 2012년 3월 15일, FIFA는 최성국 선수를 비롯해 K리그 승부조작 가담자 전원에 대해 선수자격 영구 박탈과 해외 이적금지를 발표했다.[7] 이러한 조치 이후로도 2013년까지 축구계 복귀를 시도하려는 정황이 포착돼, 축구 팬들에게 공분을 사기도. 결국 2013년 8월 19일, 대한축구협회는 최씨를 비롯한 승부조작자들의 그라운드 복귀 및 징계경감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분노한 여론 진화에 나선 뒤로는 축구계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있다.


에피소드편집

 
보성국
  • 최성국은 '보성국' 이라는 다소 민망한 별명으로도 불렸는데, 올림픽 대표팀 시절 찍은 한장의 사진에서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최성국의 바지가랑이가 절묘하게 파인 탓이었다.
  • 올림픽대표팀 이후 CF가 들어왔는데 피자나라 치킨공주 CF였다. 이 CF는 광고 내용의 초현실성적 강렬함과 저녁 시간대 광고라는 지명도 높은 시간대 출연으로 인해, 당대 축구팬뿐만 아니라, 저녁 만화를 보려고 TV 앞에 모였던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이 CF로 최성국은 치킨성국으로 나름 어린이들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승부조작으로 망해써요


  • 고려대 시절 대한민국 FA컵에 참가, 4골을 득점하며 2001년 FA컵 득점왕을 수상하였다. 대한민국 FA컵 역사상 유일하게 프로선수가 아닌 신분임에도 득점왕을 차지한 케이스.


주요 기록편집

  • 울산 현대 호랑이
K리그: 2005
슈퍼컵: 2006
A3 챔피언스컵: 2006
  •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2007
AFC 챔피언스리그: 2010
  • 개인
FA컵 득점왕: 2001
K리그 컵 득점왕: 2006
조모컵 2008 MVP: 2008
대통령 표창장: 2002
진주 MBC배 최우수 선수: 2000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프로스펙스 특별상: 2004


참조편집

  1. 아이러니하게도 이 당시 투톱을 이룬 두명을 비롯해 청소년대표 시절 맺어진 인연을 빌미삼아 승부조작에 가담한 경우가 많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씁쓸한 대목
  2. 당시 신인 최고 상한 계약금액이 3억이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발표된 계약금은 3억이었으나, 울산이 최성국 선수를 데려오려고 3억 이상의 웃돈을 얹어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3. 당시에 이 골이 최성국의 왼팔에 맞고 들어가면서 핸드볼이 아니었냐는 논란에 휩싸였었다. 방송으로 보면 핸드볼 맞는거 같았는데......
  4. 최성국은 가시와에서 9경기에 출전했지만 한 골도 넣지 못했다.
  5. 다만 일각에서는 최씨의 승부조작 혐의를 감지한 성남이 재빨리 수원에 처분한거 아니냐는 설도 돌았다. 허나 승부조작은 상무 시절에 했기 때문에 성남도 이를 알기는 힘들지 않았겠냐는 의견이 많았고 시간도 많이 흐르면서 그런 주장은 잊혀지고 말았다.
  6. 본인의 말로는 당시 상무의 코칭 스태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묵살 당했다고 주장했고, 이후 당시 상무 코치였던 이수철 감독이 구속되면서, 죄는 다르지만 승부 조작을 실제로 묵인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재판 결과 이수철 감독은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죄질이 인정되었으나 최성국과 김동현이 주장한 협박, 공갈 혐의는 무혐의로 입증되었다.
  7. 참고기사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