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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위치한 신라중학교, [[동래고등학교]]를 나온 [[부산 아이파크]] 유소년 육성군 중 한명이다. 신라중 축구부 창단 멤버로 뛰기위해 1년을 휴학했으며, 이후 신라중 시절부터 에이스로 활약하며 부산 유스의 기대주로 성장했다. 신라중 3학년 시절부터 모종의 일로<ref>승인 선수가 신라중 3학년이 되었던 시점에, 선수등록이 잘못되어버려 승인 선수는 신라중이 참가하는 각급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1년 휴학했기 때문에 나이가 문제되었던 것. 그러자 부산 아이파크 측은 최승인 선수를 부산 2군으로 불러들여 훈련시켰다.</ref> [[R리그]]를 소화하게 되었으며 이 같은 상황은 [[동래고등학교]]로 진학해서도 계속되었다.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신라중학교, [[동래고등학교]]를 나온 [[부산 아이파크]] 유소년 육성군 중 한명이다. 신라중 축구부 창단 멤버로 뛰기위해 1년을 휴학했으며, 이후 신라중 시절부터 에이스로 활약하며 부산 유스의 기대주로 성장했다. 신라중 3학년 시절부터 모종의 일로<ref>승인 선수가 신라중 3학년이 되었던 시점에, 선수등록이 잘못되어버려 승인 선수는 신라중이 참가하는 각급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1년 휴학했기 때문에 나이가 문제되었던 것. 그러자 부산 아이파크 측은 최승인 선수를 부산 2군으로 불러들여 훈련시켰다.</ref> [[R리그]]를 소화하게 되었으며 이 같은 상황은 [[동래고등학교]]로 진학해서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前 동래고 감독인 [[박형주]] 씨는 팀내 에이스인 최승인 선수가 자꾸 R리그로 차출되는데 불만을 품었고, 부산 아이파크 스탭진과 동래고와의 갈등 속에서 최승인 선수 입장은 난처해져만 갔다. 급기야 2009년 여름 무렵, 박형주 감독은 동래고 감독직을 사임하고 [[포철공고]] 감독으로 선임되었고,<ref>그 후 [[손형선]] 前 광양제철고 감독과 불미스러운 일로 지도자 자격이 영구정지된다. 자세한건 [[박형주]] 문서 참조</ref> 최승인 선수는 동래고를 자퇴하고 일본 프로축구 진출을 감행하게 된다.<ref>이에 대해서 왜 최승인 선수가 일본 진출을 택했느냐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이해가 못될 것도 아니다. 기실 학원축구에서 감독이 갖는 비중은 막중하며 선수들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형주 감독이 떠난 동래고 축구부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이런 혼란에서 최승인 선수는 더 이상 동래고에 머무는건 시간낭비라 여겼을 수 있다.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면 되지않냐?' 라고 얘기하기엔 어려운 것이 당시 R리그에서 최승인 선수를 뛰게한 [[강철]] 수석코치 등이 최선수를 가히 좋게 보지않았고, [[K리그 드래프트]]는 규정상 고졸 이상의 나이인 자만이 입단 신청이 가능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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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前 동래고 감독인 [[박형주]] 씨는 팀내 에이스인 최승인 선수가 자꾸 R리그로 차출되는데 불만을 품었고, 부산 아이파크 스탭진과 동래고와의 갈등 속에서 최승인 선수 입장은 난처해져만 갔다. 급기야 2009년 여름 무렵, 박형주 감독은 동래고 감독직을 사임하고 [[포철공고]]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최승인 선수는 동래고를 자퇴하고 일본 프로축구 진출을 감행하게 된다.<ref>이에 대해서 왜 최승인 선수가 일본 진출을 택했느냐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이해가 못될 것도 아니다. 기실 학원축구에서 감독이 갖는 비중은 막중하며 선수들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형주 감독이 떠난 동래고 축구부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이런 혼란에서 최승인 선수는 더 이상 동래고에 머무는건 시간 낭비라 여겼을 수 있다.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면 되지않냐?' 라고 얘기하기엔 어려운 것이 당시 [[K리그 드래프트]]는 규정상 고졸 이상의 나이인 자만이 입단 신청이 가능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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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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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일레븐의 김태석 기자가 2011년 12월 28일자 기사에 언급한 선수가 바로 이 선수.<ref>해당기사 링크 : [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11228135707748&p=besteleven]</ref> 하지만 기사 내용에 잘못된 내용도 있고,<ref>선수가 원해서 일본 진출을 했다기보다도 어른들간의 알력다툼에서 희생된 케이스라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최승인 선수측에 떠넘기는건 지나치다</ref> 왜곡된 시선을 줄 수 있는바, 다른 시각에서 사실을 판단하게 하고자 본 문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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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일레븐의 2011년 12월 28일자 기사에 언급되었던 선수가 바로 이 선수.<ref>해당 기사 링크 : [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11228135707748&p=besteleven]</ref> 하지만 기사 내용이 다분히<ref>선수가 원해서 일본 진출을 했다기보다도 어른들 간의 알력다툼에서 희생된 케이스라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최승인 선수측에 떠넘기는건 가혹하다</ref> 편중된 시선이 우려되는바, 다른 시각에서 사실을 판단하게 하고자 본 문서를 만들었다.
  
* 2013시즌 최승인 선수가 기록한 4골 모두, 경기시간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추격 및 동점골을 넣은 상황<ref>대구전 0-2 상황에서 2골을 몰아치며 동점까지 따라붙는 상황을 만들었고, 2013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만회골을 기록하였다.</ref>이거나, 선취골이라도 득실차 때문에 추격골을 계속 넣어야하는 다급한 상황<ref>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선취골을 기록했지만, 강원은 1차전 1:4 패배를 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2골을 더 넣어야되는 다급한 상황이었다.</ref>이었기 때문에 최선수는 골 세러머니를 할 겨를도 없이 하프라인으로 공을 가져가기에 바빴다. 강원팬들은 그 점을 안쓰럽게 생각하며 2014 시즌에는 최승인 선수가 자신만의 골 세레머니를 멋지게 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길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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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시즌 최승인 선수가 기록한 4골 모두, 경기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추격 및 동점골을 넣은 상황<ref>대구전 0-2 상황에서 2골을 몰아치며 동점까지 따라붙는 상황을 만들었고, 2013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만회골을 기록하였다.</ref>이거나, 선취골이라도 득실차 때문에 추격골을 계속 넣어야하는 다급한 상황<ref>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선취골을 기록했지만, 강원은 1차전 1:4 패배를 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2골을 더 넣어야되는 다급한 상황이었다.</ref>이었기 때문에 최선수는 골 세러머니를 할 겨를도 없이 하프라인으로 공을 가져가기에 바빴다. 강원팬들은 그 점을 안쓰럽게 생각하며 2014 시즌에는 최승인 선수가 자신만의 골 세레머니를 멋지게 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길 희망하고 있다.
 
 
* 부산 이적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 일각에선 팀에 합류를 거부하고 잠적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정상적으로 선수 등록을 마쳤다.
 
  
  

2021년 2월 17일 (수) 23:57 기준 최신판

강원 시절 최승인

최승인(1991년 3월 5일~)은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2013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 중인 스트라이커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최승인
  • 출생일 : 1991년 3월 5일
  • 신체 : 180cm / 75kg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13 Teamlogo gwfc.png 강원 FC 클래식 12 11 4 1 1 0
2014 챌린지 20 21 2 2 1 0
2015 31 20 11 3 4 0
2016 Teamlogo bifc.png 부산 아이파크 0 0 0 0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12 11 4 1 1 0
K리그 챌린지 51 41 13 5 5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7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신라중학교, 동래고등학교를 나온 부산 아이파크 유소년 육성군 중 한명이다. 신라중 축구부 창단 멤버로 뛰기위해 1년을 휴학했으며, 이후 신라중 시절부터 에이스로 활약하며 부산 유스의 기대주로 성장했다. 신라중 3학년 시절부터 모종의 일로[1] R리그를 소화하게 되었으며 이 같은 상황은 동래고등학교로 진학해서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前 동래고 감독인 박형주 씨는 팀내 에이스인 최승인 선수가 자꾸 R리그로 차출되는데 불만을 품었고, 부산 아이파크 스탭진과 동래고와의 갈등 속에서 최승인 선수 입장은 난처해져만 갔다. 급기야 2009년 여름 무렵, 박형주 감독은 동래고 감독직을 사임하고 포철공고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최승인 선수는 동래고를 자퇴하고 일본 프로축구 진출을 감행하게 된다.[2]


프로 생활[편집]

J2쇼난 벨마레는 3년 계약으로 최승인 선수를 영입했고, 부산 아이파크는 최승인 선수를 육성한 댓가로 12만 5천달러를 받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쇼난 입단 후 최승인 선수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했고, 이후 2011년에는 JFL 팀으로 임대되는등 페이스가 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쇼난 측은 부산 아이파크에 약속한 12만 5천달러를 미지급한채 최승인 선수를 방출시켜버렸고, 승인 선수는 2012년 드래프트를 신청하게 된다. 하지만 12만 5천달러를 받지못한 부산측의 반응은 냉담했고, 일본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최승인 선수에 대해 다른 K리그 구단들도 메리트를 느끼지못했다. 결국 아무도 최승인 선수를 지명하지 않았다. 2012년 1월 현재, 최승인 선수는 입단 테스트를 뛰면서 번외 추가지명을 노리는 중이다.

하지만 결국 K리그 입단에 실패한 최선수는 챌린저스리그 청주 직지 FC에서 1년간 활동하다가 2013년 드래프트에 재도전, 결국 추가지명 끝에 강원 FC에 입단하였다. 이후 강원에서 한동안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였으나 6월부터 차츰차츰 모습을 드러내다 11월 27일 對 대구 FC 전에서 후반 교체출장해 2골을 터뜨리며 팀의 무승부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경기에서 대구가 강원을 꺽을 경우, 강등권 경쟁이 혼돈에 빠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승인의 2골의 가치는 어느 때보다 빛났다. 이후 최승인 선수와 김동기 선수 등의 분전으로 K리그 클래식 12위를 기록한 강원은 K리그 챌린지 우승팀인 상주 상무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루었는데, 플레이오프 1,2차전에서 최승인 선수는 모두 골을 기록하며 큰 경기에서 강한 선수임을 입증해보였다. 아쉽게도 강원은 상주 상무에 종합 스코어 4:2로 뒤져 강등을 당하게 되었지만, 최선수의 발굴에 강원팬들은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는 평. 최선수는 이후 시즌 막판 활약에 힘입어 강원과 재계약에 성공, 2014시즌에도 강원에서 뛰게 되었다. 2015년 시즌에는 두 자릿 수 득점에 성공하며 기량이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 최 선수는 시즌 종료와 함께 K리그 클래식전북 현대 모터스에 이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 빠르고, 침투에 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공중볼 경합에 약한 편도 아니다. 공격수로서 재미있는 재능을 지닌 선수라는 평. 역습시 상대 수비라인의 전진배치를 순간적으로 깨는 능력이 있는가 하면, 공중볼에도 곧잘 머리를 갖다 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징을 종잡을 수 없는 타입이라 항간에서 말하는 골사냥꾼의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에피소드[편집]

  • 베스트일레븐의 2011년 12월 28일자 기사에 언급되었던 선수가 바로 이 선수.[3] 하지만 기사 내용이 다분히[4] 편중된 시선이 우려되는바, 다른 시각에서 사실을 판단하게 하고자 본 문서를 만들었다.
  • 2013시즌 최승인 선수가 기록한 4골 모두, 경기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추격 및 동점골을 넣은 상황[5]이거나, 선취골이라도 득실차 때문에 추격골을 계속 넣어야하는 다급한 상황[6]이었기 때문에 최선수는 골 세러머니를 할 겨를도 없이 하프라인으로 공을 가져가기에 바빴다. 강원팬들은 그 점을 안쓰럽게 생각하며 2014 시즌에는 최승인 선수가 자신만의 골 세레머니를 멋지게 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길 희망하고 있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09.07 ~ 2010.12 일본 쇼난 벨마레 J리그 디비전1
2011 일본 츠에겐 카나자와 JFL
2012 대한민국 청주 직지 FC 챌린저스리그
2013 ~ 2015 Teamlogo gwfc.png 강원 FC K리그 클래식K리그 챌린지
2016 ~ 현재 Teamlogo bifc.png 부산 아이파크 K리그 챌린지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승인 선수가 신라중 3학년이 되었던 시점에, 선수등록이 잘못되어버려 승인 선수는 신라중이 참가하는 각급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1년 휴학했기 때문에 나이가 문제되었던 것. 그러자 부산 아이파크 측은 최승인 선수를 부산 2군으로 불러들여 훈련시켰다.
  2. 이에 대해서 왜 최승인 선수가 일본 진출을 택했느냐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이해가 못될 것도 아니다. 기실 학원축구에서 감독이 갖는 비중은 막중하며 선수들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형주 감독이 떠난 동래고 축구부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이런 혼란에서 최승인 선수는 더 이상 동래고에 머무는건 시간 낭비라 여겼을 수 있다.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면 되지않냐?' 라고 얘기하기엔 어려운 것이 당시 K리그 드래프트는 규정상 고졸 이상의 나이인 자만이 입단 신청이 가능했다...
  3. 해당 기사 링크 : [1]
  4. 선수가 원해서 일본 진출을 했다기보다도 어른들 간의 알력다툼에서 희생된 케이스라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최승인 선수측에 떠넘기는건 가혹하다
  5. 대구전 0-2 상황에서 2골을 몰아치며 동점까지 따라붙는 상황을 만들었고, 2013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만회골을 기록하였다.
  6.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선취골을 기록했지만, 강원은 1차전 1:4 패배를 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2골을 더 넣어야되는 다급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