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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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최태욱.jpg
국가대표 시절의 최태욱

최태욱 (1981년 3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2000년부터 2014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윙 포워드이다.




선수 프로필

  • 이름 : 최태욱
  • 출생일 : 1981년 3월 13일
  • 신체 : 173cm / 65kg
  • 수상 경력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동메달
2009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MF 부문 선정
  • 국가대표 경력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대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
2000 ~ 2005년, 2009년, 2012년 국가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30경기 출전 4득점)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 39경기 출전 14득점)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14경기 출전 11득점)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0 안양 LG 치타스 안양 LG 치타스 K리그 16 16 1 3 0 0
2001 31 9 0 3 3 0
2002 22 13 2 1 0 0
2003 36 17 3 5 2 0
2004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23 11 5 3 1 0
2006 Teamlogo psfc.png 포항 스틸러스 25 19 2 2 0 0
2007 19 11 1 1 0 0
2008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26 20 4 3 1 0
2009 32 16 9 12 1 0
2010 15 10 2 6 0 0
Teamlogo gs.png FC GS 16 10 6 2 0 0
2011 13 13 0 3 0 0
2012 28 29 2 7 0 0
2013 클래식 10 11 0 0 0 0
2014 울산 현대 울산 현대 1 1 0 0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313 206 37 50 8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8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

연도 소속팀 직책
2014.05 ~ 2014.12 울산 현대 울산 현대 유소년 스카우트
2015.01 ~ 2015.11 Teamlogo sefc.png 서울 이랜드 U-15 코치
2015.11 ~ 현재 감독


선수 생활

유소년 생활

인천 부평고등학교 시절인 1999년, 박용호, 이천수 선수와 함께 부평고 트리오로 불리었다. 당대 부평고 트리오의 위상은 전국고교무대를 일찌감치 평정하고 탈고교급으로 평가받았는데, 이게 어느정도였냐면 부평고 트리오를 고려대학교로 스카우트하기위해 고려대 1,2학년 축구부 선수들이 부평고와 친선매치를 치룰 지경이었다.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고교졸업 선수를 대학교로 불러서 연습경기를 하는것은 더러있어도, 고교선수를 스카우트 하기위해 대학 선수들이 고등학교를 찾아간 사례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안양 LG 치타스 시절

고려대학교의 뜨거운 구애(?)에도 불구하고, 부평고 트리오 중 최태욱과 박용호 선수는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해 고졸 프로선수의 길을 택했다. 입단 조건은 계약금 2억, 연봉 2천만원에 4년 계약의 조건이었다. 안양 입단 후 소속팀과 올림픽대표팀, 국가대표팀에서 바쁜 행보를 이어가던 최선수는, 2003시즌 한 시즌 최다 출장 및 3골 5도움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찍는데 까지 성공하였다. 이미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4강 달성으로 군면제 혜택까지 받았던 상황. 최선수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치솟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2004년 K리그 창단 구단이었던 인천 유나이티드는 인천 지역 출신인 최선수의 영입을 시도, 무려 11억원이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안양에 지불하며, 인천의 창단 멤버로 최태욱 선수를 영입하는데 성공하였다.


인천 시절과 J리그 생활

인천에서 5골 3도움을 기록하며 마니치에 이어 팀 내 득점 2위에 랭크된 최선수는, 04시즌 종료를 앞두고 해외진출을 추진하였고 2005년 1월, 시미즈 S.펄스로 이적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적료만 1억 5000만엔 (당시 한화로 약 16억 5,000만원), 연봉 5,000만엔, 2년 계약의 호조건이었다. 시미즈로 이적해서는 조재진과 함께 공격진에서 활약하며 J리그에서 25경기 출장 6골, 나비스코 컵 6경기에서 3골, 일왕배 4경기에서 1골 등의 성적을 올렸으나, 시즌 종료 후 국내 복귀를 선언, 울산 현대포항 스틸러스의 줄다리기 끝에 2006년 2월, 포항 스틸러스 유니폼을 입기에 이른다.[1]


포항과 전북 시절

2006년 포항에 입단하였지만, 당시 3-4-1-2 포지션을 사용하던 포항에서는 최태욱 선수에게 맞는 자리가 없었다. 결국 자신이 원치않는 포지션이었던 윙백 역할을 요구받으면서 최선수의 위상은 점점 추락해갔고, 2007년 플레이오프 때는 벤치에도 거의 앉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07시즌이 끝난 후, 2:2 트레이드로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전북으로 이적한 후에도, 최 선수는 한동안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윙백 신세는 벗어났지만, 최강희 감독 역시 최 선수에게 적극적인 수비가담과 투쟁심을 요구했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2군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의 조련과 선수의 노력이 후반기부터 빛을 발하면서 완벽하게 부활, 이듬해인 2009년에는 이동국, 루이스2, 에닝요와 함께 "F4"를 구축하며 전북의 우승을 이끌었다.


은퇴 시기까지

2010년 시즌 중에 GS로 이적, 이후 2014시즌을 앞두고 울산 현대의 김동석 선수와 1:1 트레이드 되며 울산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울산 입단 후 ACL 2경기와 리그 1경기를 소화한 최선수는, 2014년 3월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 연골 손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고 이후 적지 않은 나이를 고려해 2014년 5월 15일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후로는 울산 현대 유소년 스카우터로 활동한다고 한다.


국가대표 생활

올림픽대표2000년 시드니 올림픽2004년 아테네 올림픽, 2차례 연속 본선 멤버에 뽑혔던 선수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예비 엔트리 구성 당시에는 고교생 출신으로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활약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이후 2000년 4월 7일, 아시안컵 예선전 對 몽골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를 출장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루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에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어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3.4위전 후반전에 교체 투입으로 출장하며 월드컵 4강 공헌을 인정받아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이후 한동안 국가대표와 연을 잇지 못하다가 2005년 동아시아 축구대회에서 잠시 활약하였으며,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예선 당시에도 잠시 발탁되었으나 월드컵 본선 최종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던바 있다. 2009년 5월에는 4년여만에 대표팀에 복귀하기도 하는등,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2000년대 초반의 입지를 되찾지는 못했다.


플레이 스타일

100미터를 11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발이 장점. 다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몸싸움을 꺼리고 투쟁심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전북에서 이루어낸 부활은 이러한 소극적인 플레이스타일을 드디어 고쳐낸 결과라는 듯.


은퇴 이후

울산에서 유소년 스카우트로 2014년까지 활동하다가 2015년 K리그 챌린지의 신생팀 서울 이랜드 FC의 15세 이하 유소년팀 코치로 부임하였으며, 2015년 11월부터 감독으로 승격하였다. 현재에도 서울 이랜드 FC의 U-15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6년 7월부터 김병지 씨와 함께 SPOTV의 해외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지도자 생활과 겸하고 있다.[2]


에피소드

  • 2000년대 초반, 한창 이름 날리던 시절에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초특급 유망주로 이천수와 함께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2002년 이후 성장세가 둔화된걸 보면 월드컵 대표 발탁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백지훈, 이승렬 등의 선배격(?)이라 할만할듯. 셋다 모팀 출신인건, 일단 넘어가자 하지만 앞서 두 선수와 달리 최태욱 선수는 K리그에서 나름의 족적을 남기며 활약하였으니 아쉬움은 덜한 편이다.
  • 2012년 2월 자신의 트위터에 승부조작을 한 최성국을 두둔하는 트위터를 올려 축구팬들에게 비판받은바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성국 화이팅이다. 한번이라도 죄를 짓지않거나 거짓말하지 않았다면 성국이를 비판해도 좋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 아내의 남편. 세 아이의 아빠인 성국이를 비판하지말자. 누구나 실수를 할수있다. 나도 그 상황이였다면 실수하지 않았다고 장담 못한다.


최태욱은 비난의 여론이 거세지자 트윗을 삭제하고 사과글을 올렸다. 축구선수 동료로써 최성국이 매우 안타까워 축구팬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비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3]


경력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00.01 ~ 2003.12 안양 LG 치타스 안양 LG 치타스 K리그
2004.01 ~ 2004.12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K리그
2005.01 ~ 2006.01 일본 시미즈 에스펄스 J리그 디비전1
2006.01 ~ 2007.12 Teamlogo psfc.png 포항 스틸러스 K리그
2008.01 ~ 2010.07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2010.07 ~ 2013.12 Teamlogo gs.png FC GS K리그 클래식
2014.01 ~ 2014.05 울산 현대 울산 현대 K리그 클래식
선수 생활 은퇴


같이 보기

참고

  1. 본래 인천에서 시미즈로 이적할 당시, 국내 복귀 시에는 무조건 인천으로 돌아온다는 계약 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포항은 거액의 이적료를 시미즈와 인천 양쪽에 지불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그만큼 포항이 최태욱 선수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2. '레전드' 김병지-최태욱, 2016-17 프리미어리그 해설 맡는다
  3. 물론 동료로써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있겠지만, 그런건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할 일이지, 공개된 공간에서 대중을 기만한 축구선수를 옹호했던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오죽하면 서호정 기자가 힘 내란 말은 트위터 말고 카톡에서 하세요.라고 했겠는가.. 이 사건을 계기로 얼마나 K리그 선수들의 프로의식과 팬들에 대한 책임감이 바닥인지 드러났으며, 트위터가 과연 공적인 공간인지도 곱씹어볼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그냥 최태욱과 양준아를 욕하기에만 급급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