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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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절 최현

최현 (1978년 11월 7일 ~ )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다.



프로필

  • 이름 : 최현
  • 생년월일 : 1978년 11월 7일생
  • 신체 : 192cm / 90kg
  • 국가대표 경력
1994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발
1996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1997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1999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본선 대표
2001년 국가대표 상비군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실점 도움 경고 퇴장
부천 SK 2001 0 - - - -
2002 26 0 40 0 1 0
2003 13 1 24 0 1 0
광주 상무 2004 0 - - - - -
2005 0 - - - - -
SK 유나이티드 2006 7 2 7 0 0 0
2007 16 1 19 0 4 0
경남 FC 2008 0 - - - - -
부산 아이파크 2008 4 0 3 0 0 0
2009 33 2 46 0 5 0
2010 1 0 2 0 0 0
대전 시티즌 2011 5 0 13 0 0 0
통산 (K리그) - 105 6 153 0 11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유소년 시절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광안중학교, 동아고등학교를 거쳐 서울 중앙대학교를 졸업한 선수이다. 동아고 시절인 1994년부터 청소년대표에 발탁된 이래, 전도유망한 골키퍼로 크게 활약하였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차세대 국가대표 골리로 기대를 받아왔지만, 최선수의 성장기는 다사다난하였는데.. 1997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20세 이하 세계청소년월드컵에 한국 U-20 대표로 선발되었던 최현 선수는 당대 최고의 유망주 골리였던 정유석 선수와 1선발을 다투었으나,[1] 한국 청대의 본선 예선 상대였던 남아공, 프랑스, 브라질 중 최현 선수는 프랑스 전에 선발 골리로 출장해 당시 프랑스 청소년대표였던 앙리트레제게에게 4실점하는 시련을 겪은바 있다. 여기에 정유석 선수는 남아공 전은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지만, 브라질 전에서 10실점을 기록하며 무너져버렸다.. 결국 청소년대표팀은 역대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세계 무대에 도전했지만 1무 2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안고 귀국해야만 했다.

이러한 97 청소년 월드컵에서의 대참패는 소위 쿠칭쇼크로 회자되며 당시 청대 멤버들에게 상당한 마이너스로 작용했고, 이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 발탁에도 이어졌다. 서기복 선수를 비롯해 올대 주전급 멤버로 기대받던 선수들이 쿠칭 쇼크를 기점으로 죄다 올대 멤버에서 탈락하고만 것. 최선수의 경우는 앞선 이들과 달리, 시드니올림픽 본선 최종 엔트리까지는 들었지만 본선 전경기 뿐만 아니라 여타 평가전에서도 신예 김용대 선수에게 밀려 2선발에 머물러야 했다.


프로 입단후 시련

시드니 올림픽 이후,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2001년 드래프트를 신청. 부천 SK에 4순위로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부천의 1선발 골리인 이용발 선수가 2001시즌 전경기 무교체 출장 기록을 세워버려 최현 선수는 신인 시절 단 한차례도 출장하지 못하였으나, 이듬해인 2002년 이용발 선수의 전북 현대 모터스 행 이후, 당시 또다른 부천의 신인 골리였던 한동진 선수와 함께 2002 시즌 부천의 선발 골리로 나섰다. 그러나 부천 수비진과의 커뮤니케이션 부족과 자신감 결여로 대량 실점을 막아내지 못하며 무너져버렸는데 특히, 당시 특급 공격수 샤샤에게 4골을 선물(?)한 불명에 주인공에 오르기도 하였다.


대전에 오기까지

부천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채 군입대를 택한 최현 선수는 광주 상무 전역 후, SK 유나이티드로 이적. 거기서 2시즌을 보낸뒤, 자유계약으로 경남 FC에 입단하였다. 그러나 경남 입단 후, 불과 6개월 만에 신승경 선수와 트레이드 되어 2008년 7월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게 된다. 부산 아이파크에서는 경쟁상대인 타골리들의 부진으로 1선발을 다시 꿰차게 되었으며 2009시즌은 붙박이 주전 골리로 개인 통산 1시즌 최다 출장 기록도 세우며 선전했다. 그러나 2009시즌 부상중인 몸에도 무리한 출장이 잦았던 탓에 2010시즌에는 폼이 완전히 무너졌다. 결국 2010시즌 1경기 출장에 그치며 거의 은퇴수순에 들어간 최현 선수는 2010 시즌 종료 후, 부산에서 방출되었다.

이대로 선수 생활이 끝날수도 있던 상황에서, 양동원 선수의 이탈과 최은성의 은퇴 준비로 서브 골리가 급했던 대전 시티즌은 최현 선수에게 입단제의를 넣었고, 결국 최현은 대전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대전에서는 2011년 K리그 컵대회에서 주로 출전하며 5경기를 나와 13실점의 부진한 활약을 보였으며, 2012시즌에는 김선규 선수[2]에게 밀려 2선발로 간간히 경기에 나섰다.


은퇴

2012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한 최현은 2013년부터 포철공고 (현재는 포항제철고등학교)의 GK 코치로 부임하여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

전체적으로 무난한 실력을 보여주지만 기복이 심하다는 평을 들었다. 부천SK 시절엔 중계방송에서 부천의 최대 약점중 하나로 최 선수를 뽑았을 정도... 그래도 잘할 때는 평균 이상의 능력을 보여줬으며, 부산 시절에는 이범영의 컨디션 난조 이후 대체할 자원이 없자 당시 부상을 안고있었던 최선수가 부산의 골문을 지키는 투혼을 보여줘, 부산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요컨대 근성가이였던 셈.

같이 보기

참고

  1. 믿기진 않겠지만 정유석 선수가 당시에는 김용대보다 훨씬 뛰어난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2. 공교롭게도 김선규 선수는 최현 선수의 동아고 후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