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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당시 프랑스 대표팀 명단중에 국가대표로 성장한 선수가 앙리와 트레제게를 비롯해 윌리 사뇰, 테디 뤼쌩, 윌리엄 갈라스, 미카엘 실베스트르, 니콜라스 아넬카 등이었다. 심지어 아넬카는 주전도 아니고 후보였다! 이 멤버에게 3-10으로 져도 할말이 없었다.  
 
*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당시 프랑스 대표팀 명단중에 국가대표로 성장한 선수가 앙리와 트레제게를 비롯해 윌리 사뇰, 테디 뤼쌩, 윌리엄 갈라스, 미카엘 실베스트르, 니콜라스 아넬카 등이었다. 심지어 아넬카는 주전도 아니고 후보였다! 이 멤버에게 3-10으로 져도 할말이 없었다.  
  
* 브라질은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10-3으로 승리했지만, 브라질의 토닝요 감독은 ''' 3골이나 먹힌 수비진들은 반성을 해야할 것''' 이라고 오히려 수비진들을 욕했고, 이에 자극받은 브라질은 16강전 벨기에를 맞아 10-0으로 완벽하게 승리했다. <REF> 이때는 선수들이 고루 골을 기록했는데, 현재 페네르바체에서 활약중인 알렉스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외에 알바로가 2골, 로니가 2골, 에델, 아다일톤, 엘리아스가 나란히 1골씩을 기록했다 </DEL> </REF> 이에 국내 축구팬들은 벨기에보단 낫다며 위안 삼을 수 있었다. <REF> 하지만 브라질은 8강전에서 리켈메가 버티고 있던 아르헨티나에 0-2로 패해 탈락했다. 골만 많이 넣으면 뭐해 우승을 못했는데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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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은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10-3으로 승리했지만, 브라질의 토닝요 감독은 ''' 3골이나 먹힌 수비진들은 반성을 해야할 것''' 이라고 오히려 수비진들을 욕했고, 이에 자극받은 브라질은 16강전 벨기에를 맞아 10-0으로 완벽하게 승리했다. <REF> 이때는 선수들이 고루 골을 기록했는데, 현재 페네르바체에서 활약중인 알렉스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외에 알바로가 2골, 로니가 2골, 에델, 아다일톤, 엘리아스가 나란히 1골씩을 기록했다 </REF> 이에 국내 축구팬들은 벨기에보단 낫다며 위안 삼을 수 있었다. <REF> 하지만 브라질은 8강전에서 리켈메가 버티고 있던 아르헨티나에 0-2로 패해 탈락했다. 골만 많이 넣으면 뭐해 우승을 못했는데 </REF>
  
 
* 당시 MBC에서 중계해주었고 당시 MBC의 캐스터가 [[박종환]]이 해설을 맡았는데, 남아공전에서 이관우에게  단독찬스가 나자 흥분한 나머지 방송임을 망각하고
 
* 당시 MBC에서 중계해주었고 당시 MBC의 캐스터가 [[박종환]]이 해설을 맡았는데, 남아공전에서 이관우에게  단독찬스가 나자 흥분한 나머지 방송임을 망각하고

2011년 8월 11일 (목) 05:13 판

쿠칭참사 는 1997년 말레이시아 20세 이하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현재 U-20 월드컵)에서 출전한 대한민축 대표 선수들이 졸전끝에 1무 2패로 16강에서 탈락하자 이에 낙담한 축구팬들이 붙인 별명이다. 다른 말로 쿠칭의 비극, 쿠칭 쇼크 라고도 말한다.


당시 상황

당시 대표에 선발된 선수들은 이러했다.

감독 = 박이천
코치=이영기 김황호
선수= GK 정유석 (아주대) 최현(중앙대)
DF 조세권 박진섭 (이상 고려대) 한종성(성균관대) 박준홍 심재원 (이상 연세대) 남기성(한양대) 문변모(경기대)
MF 서기복(이상 연세대) 이정민 (고려대) 정석근(아주대) 김만중(명지대) 김도균(울산대)
FW 안효연(동국대) 박병주(한성대) 양현정(단국대) 이관우(한양대)


프로팀에는 단 한명도 없었고 각 대학교에서 최고라 불리던 선수들이 모두 뽑혀갔다. 당시에는 이관우, 조세권, 박진섭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갔기 때문에 83년 이후 다시 4강을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해 있었다. 게다가 브라질은 버겁더라도 프랑스는 당시 우리와 대등한 전력이라고 평가했었고, 남아공은 당연히 우리의 1승 제물로 삼을 것이라는 평가를 했었다. (남아공과 브라질에 대한 평가는 맞았지만, 프랑스에 대한 평가는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아시아 예선

대한민국은 홈 그라운드에서 열린 96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최강전력 답게 태국, UAE 등을 이기며 승승장구했고, 결승전에서 정석근과 이관우, 양현정이 연속 골을 퍼부어 덜 다듬어진 오프사이드 덫을 앞세운 중국을 3-0으로 완파하며 가볍게 우승을 차지했다. 많은 축구팬들은 이 대회를 보면서 드디어 83년 이후 4강을 넘어 결승까지 진출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해준 대회였다. (하지만 이 꿈은 불과 1년뒤 산산이 조각조각 나버린다.)


대회 준비

당시 우리는 '죽음의 조'라고 불리던 B조에 속했다. 당시 프랑스는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등 훗날 프랑스 국가대표의 주축이 된 선수들이 모여있었고 브라질은 세계최강의 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남아공만이 유일하게 약체였다.

본선 조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A조= 말레이시아 모로코 우루과이 벨기에
B조= 한국 남아공 프랑스 브라질
C조= 가나 아일랜드 중국 미국
D조= 일본 스페인 코스타리카 파라과이
E조= 헝가리 아르헨티나 호주 캐나다
F조= 멕시코 아랍에미리트연합 코트디부아르 잉글랜드

박이천 감독은 97년 선수권대회에 맞추어 평가전을 진행했다. 개최국인 남아공에 대비해 가나와 평가전을 가졌고, 브라질에 대비해 아르헨티나와 평가전을 가져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호성적을 거뒀다. 이어서 미국과의 평가전에서 1승 1무를 기록하면서 좋은 흐름을 이어갔고, 대회에 나설 23명을 확정하고 말레이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때까지 많은 사람들을 이 대회가 처참하게 끝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본선 무대

하지만, 타국의 기후를 적응하기에 보름정도 시간이 필요했던데 반해 대표팀은 불과 일주일전에 말레이시아로 출국했다. 결국 기후 적응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게다가 상대팀 분석 시스템도 갖추어져 있지 않던 시절 선수들은 유명한 선수들의 이름만을 인지하고 그 선수들을 막는다는 복안을 세우고 있었고, 결국 이러한 복안은 대패를 자초하는 원인이 되었다.

첫 경기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역시 아시아 최강에 걸맞게 전후반 내내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94 미국월드컵 볼리비아전과 마찬가지로 골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관우가 전반 13분 페널티지역 왼쪽 모서리 외곽에서 오른발 슛을 날렸으나 골키퍼 로버츠의 손끝에 걸려 튀어나왔고, 남기성이 재차 슈팅했지만 역시 로버츠의 발에 걸려 득점과는 연결되지 못했다. 이 골이 들어갔다면 한결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갔겠지만 들어가지 않으면서 경기가 베베 꼬이기 시작했다. 27분 박병주가 페널티지역 오른쪽 모서리 부근에서 때린 오른발 슛이 크로스바를 맞힌데 이어 이관우가 후반 37분과 38분 로버츠와 1:1로 맞선 상황에서 두 차례 모두 허공으로 날리거나 골키퍼 정면으로 볼을 갖다 주면서 결국 0:0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1]

두번째 상대는 유럽의 강자 프랑스였다. 이때 박이천 감독은 약간은 이해할 수 없는 전술을 들고 나왔는데, 사이드백이었던 박진섭을 스위퍼로 삼고 박준홍,심재원,김도균을 중앙 쓰리백으로 내리면서 앙리와 트레제게를 막도록 지시했는데, 결국 이 전술은 전반 10분만에 철저하게 무너졌다. 전반 1분 트레제게의 패스를 받은 앙리가 강력한 오른발 발리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내기 시작하더니 전반 3분 앙리의 패스를 받은 트레제게가 가볍게 두번째골을 뽑아냈다. 전반 10분에는 다시 앙리가 미드필드 왼쪽에서 15m가량을 단독으로 치고들어가 세번째골을 넣었다. 협력수비는 없었고 철저한 대인마크 위주였던 대한민국 선수들의 기량과 앙리의 개인기량은 하늘과 땅차이였다. 이후 후반 7분 트레제게가 추가골을 넣으면서 0:4가 되었고, 프랑스는 선수까지 교체하며 여유를 부렸다. 후반 9분 드디어 대한민국이 골을 성공시켰다. 주인공은 바로 스위퍼였던 박진섭이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아무튼 첫 골로는 성에 안찼는지 박진섭은 후반 23분 패널티킥을 얻어냈고, 직접 차 넣으면서 2:4로 추격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공을 발 끝에 달고 뛰는 앙리보다 느린 한국 수비진으로서는 네 골만 허용한 게 다행일 정도의 경기였다. 결국 대한민국은 브라질전이 남은 가운데 1무 1패로 16강 진출이 어려워져 가고만 있었다.

세번째 경기는 바로 당시 세계최강이었던 브라질. 브라질은 당시에 아다일톤이 이끄는 공격진과 비니시우스가 이끈 수비진이 적절하게 조화된 최강팀이었다. [2] 솔직히 이기긴 힘들고 비기는 작전으로 와일드카드에 모든 것을 걸어보자는 작전을 짰다. 전반 10분까지는 잘버텼다.경기 시작 43초만에 이관우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2분17초만에 김도균이 골지역 중앙에서 위협적인 슈팅을 날려 "어? 설마 혹시?" 라는 기대감을 갖게 해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전반 19분 비니시우스의 코너킥을 페르난다가 헤딩으로 받아넣으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골문은 열려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다일톤은 31분에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자신의 첫 골을 터뜨리더니 33분과 37분에는 연속 페널티킥으로 해트트릭을 작성했고 40분에 골키퍼 정유석이 놓친 볼을 골지역에서 다시 집어넣는 진기록을 세웠다. 전반 43분에 페르난다가 골을 성공시키며 점수는 6-0. 휴식시간 뒤 후반을 맞은 한국은 정석근과 김만중을 교체 투입하며 활로를 모색했고, 후반 11분 결실을 맺었다. 이관우가 패널티박스 왼쪽에서 강력한 프리킥으로 만회골을 넣었다.[3] 그러나 후반 23분에 조세권이 경고 2회로 퇴장당하면서, 다시 비극이 찾아왔고 후반 23분과 24분, 엘리아스와 아다일톤에게 연달아 골을 연속 내줘 점수는 1-9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후반 28분 정석근이 만회골을 넣었지만, 후반 37분 다시 엘리아스에게 골을 내줘 점수는 2-10. 후반 종료직전 이정민이 만회골을 넣었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 골이었다. 결국 90분이 지난뒤 스코어는 3-10. 국제대회의 한 경기에서 10골을 내준 것은 지난 48년 런던올림픽때 스웨덴에 12-0으로 패한 이후 39년만이었고, 7점차 패배는 이 대회사상 최다 점수차로 기록되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남아공에게도 밀리면서 조 꼴찌로 16강도 못가보고 짐을 싸고 말았다. 이에 반해 일본은 코스타리카를 6-2로 대파하고 스페인과 1-2로 대등하게 싸운끝에 16강에 진출했고 이후 16강전에서 호주를 격파 8강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면서 더 많은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에피소드

  • 당시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우리 골문을 상대로 6골을 넣은 아다일톤의 이름에 ‘많을 다(多)’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심도 있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당시 프랑스 대표팀 명단중에 국가대표로 성장한 선수가 앙리와 트레제게를 비롯해 윌리 사뇰, 테디 뤼쌩, 윌리엄 갈라스, 미카엘 실베스트르, 니콜라스 아넬카 등이었다. 심지어 아넬카는 주전도 아니고 후보였다! 이 멤버에게 3-10으로 져도 할말이 없었다.
  • 브라질은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10-3으로 승리했지만, 브라질의 토닝요 감독은 3골이나 먹힌 수비진들은 반성을 해야할 것 이라고 오히려 수비진들을 욕했고, 이에 자극받은 브라질은 16강전 벨기에를 맞아 10-0으로 완벽하게 승리했다. [4] 이에 국내 축구팬들은 벨기에보단 낫다며 위안 삼을 수 있었다. [5]
  • 당시 MBC에서 중계해주었고 당시 MBC의 캐스터가 박종환이 해설을 맡았는데, 남아공전에서 이관우에게 단독찬스가 나자 흥분한 나머지 방송임을 망각하고

"때,,,,때려!!" 라고 외쳤었다. 천성 지도자 본능은 어쩔수 없나보다

참조

  1. 이 경기가 끝나고 이관우는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2. 하지만 프로무대에서는 아다일톤과 알렉산드로를 제외하곤 성공한 선수를 보기 힘들다. 비니시우스가 울산에서 몸담은 것을 보면......
  3. 골영상은 여기에 http://play.mgoon.com/Video/V13911
  4. 이때는 선수들이 고루 골을 기록했는데, 현재 페네르바체에서 활약중인 알렉스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외에 알바로가 2골, 로니가 2골, 에델, 아다일톤, 엘리아스가 나란히 1골씩을 기록했다
  5. 하지만 브라질은 8강전에서 리켈메가 버티고 있던 아르헨티나에 0-2로 패해 탈락했다. 골만 많이 넣으면 뭐해 우승을 못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