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축구단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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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 위기상황은 할렐루야 축구단도 비켜가지 못했는데 할렐루야 축구단의 모기업인 신동아 그룹 산하의 기독교 선교횃불재단<ref>최순영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기독교선교원의 후신으로 1991년 양재동에 횃불선교센터가 지어지면서 이름을 변경하였다. 할렐루야 선수단의 숙소와 구단사무실이 센터내에 위치해 있었다. 최순영이 재단이사장으로 있다 최순영이 경제관련비리로 수감되어 있을 때는 부인이자 국민의 정부 시절 옷로비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룬 이형자씨가 재단이사장으로 있었다. </ref>이 98년 9월 구단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구단주를 잃은 할렐루야는 선수들의 자비를 모아 참여하는 등 어렵사리 1998년 실업리그를 마무리 하고 일부 선수들은 [[K리그 드래프트 1999|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구단으로 적을 옮기게 되었으며, 팀은 12월 말 공식 해체되었다.   
 
1997년 IMF 위기상황은 할렐루야 축구단도 비켜가지 못했는데 할렐루야 축구단의 모기업인 신동아 그룹 산하의 기독교 선교횃불재단<ref>최순영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기독교선교원의 후신으로 1991년 양재동에 횃불선교센터가 지어지면서 이름을 변경하였다. 할렐루야 선수단의 숙소와 구단사무실이 센터내에 위치해 있었다. 최순영이 재단이사장으로 있다 최순영이 경제관련비리로 수감되어 있을 때는 부인이자 국민의 정부 시절 옷로비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룬 이형자씨가 재단이사장으로 있었다. </ref>이 98년 9월 구단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구단주를 잃은 할렐루야는 선수들의 자비를 모아 참여하는 등 어렵사리 1998년 실업리그를 마무리 하고 일부 선수들은 [[K리그 드래프트 1999|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구단으로 적을 옮기게 되었으며, 팀은 12월 말 공식 해체되었다.   
  
같은해 2월, 이랜드의 운영 포기로 인해 이랜드 축구단에서 다시 원래의 이름인 [[임마누엘 축구단]]으로 원상 복귀한 후<ref>2월에 구단 해체를 결정하였고 팀 이름도 임마누엘로 원상복귀 되었지만 이랜드 측에서 98년 시즌까지 최소한의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하었으므로, 실제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진 것은 할렐루야와 비슷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랜드 회장 박성수씨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므로 계약서와는 별도로 이후 할렐루야 시기에도 구단 물품 및 용품 지원은 꾸준히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할렐루야의 유니폼 스폰서로 참여하기도 하였다.</ref> 힘겹게 구단을 운영하던 [[이영무]]씨에 의해 재창단하게 되었다. 선교횃불재단이 해체를 결정한 할렐루야팀에 기존에 남아 있던 선수들에 임마누엘축구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합류시킨 후 전국의 개신교 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기로 하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437712 할렐루야축구단, 2월말 재창단] -1999년 1월 13일, [[연합뉴스]]-</ref> 1999년 2월 공식 창단식을 가지고 [[한국실업축구연맹]]에 등록, 리그의 중단없이 실업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ref>98년 말을 기점으로 할렐루야는 신동아 그룹의 지원이 끊어졌고 임마누엘은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선교구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신교계의 지원이 절실하였는데 임마누엘보다 할렐루야가 훨씬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할렐루야 중심으로 팀을 존속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ref><ref>[http://news.kbs.co.kr/news/view.do?ncd=3799024 할렐루야 축구단 재창단] -1999년 3월 16일, [[KBS]]-</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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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해 2월, 이랜드의 운영 포기로 인해 이랜드 축구단에서 다시 원래의 이름인 [[임마누엘 축구단]]으로 원상 복귀한 후<ref>2월에 구단 해체를 결정하였고 팀 이름도 임마누엘로 원상복귀 되었지만 이랜드 측에서 98년 시즌까지 최소한의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하었으므로, 실제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진 것은 할렐루야와 비슷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랜드 회장 박성수씨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므로 계약서와는 별도로 이후 할렐루야 시기에도 구단 물품 및 용품 지원은 꾸준히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할렐루야의 유니폼 스폰서로 참여하기도 하였다.</ref> 힘겹게 구단을 운영하던 [[이영무]]씨에 의해 재창단하게 되었다. 선교횃불재단이 해체를 결정한 할렐루야팀에 기존에 남아 있던 선수들에 임마누엘축구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합류시킨 후 전국의 개신교 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기로 하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437712 할렐루야축구단, 2월말 재창단] -1999년 1월 13일, [[연합뉴스]]-</ref> 1999년 2월 공식 창단식을 가지고 [[한국실업축구연맹]]에 등록, 리그의 중단없이 실업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ref>98년 말을 기점으로 할렐루야는 신동아 그룹의 지원이 끊어졌고 임마누엘은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선교구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신교계의 지원이 절실하였는데 임마누엘보다 할렐루야가 훨씬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할렐루야 중심으로 팀을 존속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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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2리그 및 내셔널리그 ==
 
== K2리그 및 내셔널리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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