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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 위기상황은 할렐루야 축구단도 비켜가지 못했는데 할렐루야 축구단의 모기업인 신동아 그룹 산하의 기독교 선교횃불재단<ref>최순영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기독교선교원의 후신으로 1991년 양재동에 횃불선교센터가 지어지면서 이름을 변경하였다. 할렐루야 선수단의 숙소와 구단사무실이 센터내에 위치해 있었다. 최순영이 재단이사장으로 있다 최순영이 경제관련비리로 수감되어 있을 때는 부인이자 국민의 정부 시절 옷로비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룬 이형자씨가 재단이사장으로 있었다. </ref>이 98년 9월 구단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구단주를 잃은 할렐루야는 선수들의 자비를 모아 참여하는 등 어렵사리 1998년 실업리그를 마무리 하고 일부 선수들은 [[K리그 드래프트 1999|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구단으로 적을 옮기게 되었으며, 팀은 12월 말 공식 해체되었다.   
 
1997년 IMF 위기상황은 할렐루야 축구단도 비켜가지 못했는데 할렐루야 축구단의 모기업인 신동아 그룹 산하의 기독교 선교횃불재단<ref>최순영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기독교선교원의 후신으로 1991년 양재동에 횃불선교센터가 지어지면서 이름을 변경하였다. 할렐루야 선수단의 숙소와 구단사무실이 센터내에 위치해 있었다. 최순영이 재단이사장으로 있다 최순영이 경제관련비리로 수감되어 있을 때는 부인이자 국민의 정부 시절 옷로비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룬 이형자씨가 재단이사장으로 있었다. </ref>이 98년 9월 구단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구단주를 잃은 할렐루야는 선수들의 자비를 모아 참여하는 등 어렵사리 1998년 실업리그를 마무리 하고 일부 선수들은 [[K리그 드래프트 1999|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구단으로 적을 옮기게 되었으며, 팀은 12월 말 공식 해체되었다.   
  
같은해 2월, 이랜드의 운영 포기로 인해 이랜드 축구단에서 다시 원래의 이름인 [[임마누엘 축구단]]으로 원상 복귀한 후<ref>2월에 구단 해체를 결정하였고 팀 이름도 임마누엘로 원상복귀 되었지만 이랜드 측에서 98년 시즌까지 최소한의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하었으므로, 실제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진 것은 할렐루야와 비슷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랜드 회장 박성수씨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므로 계약서와는 별도로 이후 할렐루야 시기에도 구단 물품 및 용품 지원은 꾸준히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할렐루야의 유니폼 스폰서로 참여하기도 하였다.</ref> 힘겹게 구단을 운영하던 [[이영무]]씨에 의해 재창단하게 되었다. 선교횃불재단이 해체를 결정한 할렐루야팀에 기존에 남아 있던 선수들에 임마누엘축구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합류시킨 후 전국의 개신교 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기로 하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437712 할렐루야축구단, 2월말 재창단] -1999년 1월 13일, [[연합뉴스]]-</ref> 1999년 2월 공식 창단식을 가지고 [[한국실업축구연맹]]에 등록, 리그의 중단없이 실업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ref>98년 말을 기점으로 할렐루야는 신동아 그룹의 지원이 끊어졌고 임마누엘은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선교구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신교계의 지원이 절실하였는데 임마누엘보다 할렐루야가 훨씬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할렐루야 중심으로 팀을 존속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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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해 2월, 이랜드의 운영 포기로 인해 이랜드 축구단에서 다시 원래의 이름인 [[임마누엘 축구단]]으로 원상 복귀한 후<ref>2월에 구단 해체를 결정하였고 팀 이름도 임마누엘로 원상복귀 되었지만 이랜드 측에서 98년 시즌까지 최소한의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하었으므로, 실제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진 것은 할렐루야와 비슷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랜드 회장 박성수씨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므로 계약서와는 별도로 이후 할렐루야 시기에도 구단 물품 및 용품 지원은 꾸준히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할렐루야의 유니폼 스폰서로 참여하기도 하였다.</ref> 힘겹게 구단을 운영하던 [[이영무]]씨에 의해 재창단하게 되었다. 선교횃불재단이 해체를 결정한 할렐루야팀에 기존에 남아 있던 선수들에 임마누엘축구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합류시킨 후 전국의 개신교 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기로 하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437712 할렐루야축구단, 2월말 재창단] -1999년 1월 13일, [[연합뉴스]]-</ref> 1999년 2월 공식 창단식을 가지고 [[한국실업축구연맹]]에 등록, 리그의 중단없이 실업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ref>98년 말을 기점으로 할렐루야는 신동아 그룹의 지원이 끊어졌고 임마누엘은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선교구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신교계의 지원이 절실하였는데 임마누엘보다 할렐루야가 훨씬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할렐루야 중심으로 팀을 존속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ref><ref>[http://news.kbs.co.kr/news/view.do?ncd=3799024 할렐루야 축구단 재창단] -1999년 3월 16일, [[KBS]]-</ref>
 
 
  
 
== K2리그 및 내셔널리그 ==
 
== K2리그 및 내셔널리그 ==

2018년 12월 8일 (토) 23:05 판

할렐루야 축구단
할렐루야.png
기본정보
정식명칭 안산 H FC
원어명 로마 : Hallelujah Football Club
이전이름 할렐루야 축구단(프로)
(1980~1985)
할렐루야 축구단(아마)
(1986~1998)
할렐루야 축구단(재창단)
(1999~2002)
익산할렐루야
(2003)
김포할렐루야
(2003~2006)
안산할렐루야
(2007~2011)
안산 H FC
(2012)
클럽색          
하양, 빨강
창단년도 1980 (고양 Hi FC)
1999 (한국프로축구연맹)
홈경기장 안산 와~스타디움
(35,000석)
연고지 경기도 안산시[1]
운영
감독 이영무
소속리그 내셔널리그
홈페이지
현재시즌

할렐루야 축구단(Hallelujah Football Club)은 1980년 창단한 한국 최초의 프로 스포츠구단이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간 슈퍼리그에 참여하였으나 1985년 말 돌연 아마추어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실업팀이 되었다. 1998년 경제위기 상황으로 인해 해체되었으나 1999년 임마누엘 축구단이영무를 중심으로 재창단되어 한국 기독교 22개 교단 총무단의 후원을 받는 기독교 선교 축구단이되었다. 이후 꾸준히 실업축구에서 활동하다 2003년 내셔널리그의 전신인 K2리그 출범에 참여했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라는 구단목적으로 인한 반발로 인해 연고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익산, 김포 등을 떠돌다 2006년 11월 24일 안산시와 연고지 협약을 맺어 2012년까지 안산 할렐루야 축구단이라는 명칭으로 내셔널리그에 참여했다. 2012시즌을 앞두고 K리그 2부 진출을 준비하며 이름을 안산 H FC로 개명하였고 결국 2013년부터 고양 Hi FC라는 이름으로 K리그 챌린지에 참여하게 되었고 2016년 고양 자이크로 FC라는 이름으로 참여했으나 결국 K리그를 탈퇴, 2017년부터 다시 할렐루야 축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선교축구단이 되었다.


개괄

1998~99년의 해체와 재창단으로 인해 구단의 역사에 대한 논쟁이 있다. 고양 Hi FC에서는 할렐루야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축구단이라 주장하며 엠블렘에 1980이라는 창단년도를 표기하고 있으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1980년 창단된 팀과 1999년 재창단된 팀은 별도의 팀으로 기독교 선교 축구단 2호인 임마누엘 축구단이 전신으로 할렐루야 축구단이 해체하자 소속 선수들을 규합하면서 할렐루야 축구단으로 재창단한 것으로 보고 고양 Hi FC(K25)의 K리그 클럽 등록번호를 할렐루야 독수리(K11)와는 별개의 팀으로 부여하였다.

따라서 이 문서는 고양 Hi FCK리그 챌린지 참여 이전의 활동 중 수퍼리그에서 활동했던 프로팀 할렐루야 독수리 시절을 제외한 실업팀 할렐루야 축구단 / 안산 H FC의 활동에 대해 다루며, 1999년 이전의 전신팀 중 하나인 임마누엘 축구단 / 이랜드 축구단은 별도의 문서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역사

할렐루야 축구단 및 임마누엘/이랜드 축구단의 역사 개괄

창단과정

1979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취임한 신동아그룹의 오너 최순영씨가 자신의 축협 회장 취임시 공약[2]중 하나인 프로리그를 위해 1980년 12월 20일 창단한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축구단이었다. 축구의 대중화 및 기독교 선교가 창단 목적이었기 때문에 보통 기업구단들이 그룹 자회사 산하에 구단을 두는 것과 달리 최순영이 이사장으로 있던 선교단체인 한국기독교선교원 산하에 구단을 두었고, 창단 감독이던 김용식 이하 선수 전원이 개신교 교인이거나 개신교에 입교할 사람으로 구성되었으며, 팀명은 할렐루야가 되었다.[3]

그러나 할렐루야팀이 창단되었으나, 정작 다른 프로팀이 생기지 않았고 프로 리그가 출범되지 못해 곤란함을 겪게 되었다.[4] 그래서 1981~82년 동안 미주(북아메리카)와 홍콩 등지의 국제 축구대회에 출전하기도 하고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일명 박스컵) 에도 출전하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자웅을 겨루기도 하였다. 1982년에는 신앙과 축구 사이의 중심문제로 논란이 생겼는데 결국 할렐루야 축구단의 창단주역이었던 이영무를 비롯하여, 신현호, 조병득, 김철용, 박민재 등 5명의 선수가 4월 29일 제명, 탈퇴되어 12명의 선수만 남게 되는 위기 상황에 쳐하기도 하였다.[5]


슈퍼리그 시절

이 부분의 본문은 할렐루야 독수리입니다.

1983년 드디어 프로팀과 실업리그 선발팀이 함께 출전하는 슈퍼리그가 개막되면서 할렐루야도 참가하게 되었는데 첫해 우승을 차지해 K리그 초대 챔피언이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83년 우승 이후 주축 멤버들의 대거 은퇴 선언과 타 팀 이적등으로 전력이 처지면서 84, 85시즌에는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결국 1985년 가을, 85시즌을 끝으로 슈퍼리그 참가 포기와 더불어 아마추어팀 전환[6]을 선언하면서 프로 무대에서 할렐루야 축구단은 사라지고 말았고, 이후 프로 축구와는 다른 실업 축구로써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실업 전환 이후

할렐루야 축구단이 프로리그 참가를 포기하였다지만 여전히 선수단은 건재했고, 덕분에 아마 축구계에서는 최강의 자리를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유지하였다.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및 각급 실업 축구대회를 90년대 석권하였고, K리그 드래프트로 수많은 선수를 프로에 배출시키기도 하였다.


할렐루야 해체 및 부활

1997년 IMF 위기상황은 할렐루야 축구단도 비켜가지 못했는데 할렐루야 축구단의 모기업인 신동아 그룹 산하의 기독교 선교횃불재단[7]이 98년 9월 구단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구단주를 잃은 할렐루야는 선수들의 자비를 모아 참여하는 등 어렵사리 1998년 실업리그를 마무리 하고 일부 선수들은 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구단으로 적을 옮기게 되었으며, 팀은 12월 말 공식 해체되었다.

같은해 2월, 이랜드의 운영 포기로 인해 이랜드 축구단에서 다시 원래의 이름인 임마누엘 축구단으로 원상 복귀한 후[8] 힘겹게 구단을 운영하던 이영무씨에 의해 재창단하게 되었다. 선교횃불재단이 해체를 결정한 할렐루야팀에 기존에 남아 있던 선수들에 임마누엘축구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합류시킨 후 전국의 개신교 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기로 하고[9] 1999년 2월 공식 창단식을 가지고 한국실업축구연맹에 등록, 리그의 중단없이 실업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10][11]

K2리그 및 내셔널리그

이영무를 중심으로 전국 기독교 단체의 후원으로 재창단한 할렐루야 축구단은 이후 실업리그를 꾸준히 참여하였으나 90년대 중반 할렐루야와 임마누엘이 서로 우승을 다투던 전성기시절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2003년 K2리그(이후 내셔널리그)가 출범하자 익산을 연고로 리그에 참여하였으나 지자체 주민들의 반발로 후반기에는 연고 경기장을 사용하지 못해 리그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2003년 말 김포를 연고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서산, 험멜 등과 탈꼴찌 경쟁을 하는 상황이었다. 2006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18년만에 우승을 차지하며[12] 상승세를 탔으나 그해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고양KB에 분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하고 말았다. 이후 안산와~스타디움 완공후 축구단을 유치하려던 안산시와 연고협약을 체결하고 2007년부터 안산 할렐루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으며, 2012년에는 종교색을 지우고 향후 K리그 입성을 위해 안산 H FC 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종교색으로 인해 안산시와 갈등을 빚으며 결국 2012년 고양시와 연고협약을 맺고 2013년부터 고양 Hi FC라는 명칭으로 K리그 챌린지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2016년 고양 자이크로 FC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다.

현재

2016년 시즌 종료후에 K리그를 탈퇴, 2017년부터 다시 할렐루야 축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아마추어 선교축구단으로 활동중이다. 고양시절 코치로 활동 했던 서현철씨가 감독으로 활동하며 이사장이었던 이영무씨가 단장으로 활동한다

논쟁

할렐루야 축구단 창단 연도에 대한 논쟁

1998~99년의 해체와 재창단으로 인해 구단의 역사에 대한 논쟁이 있다. 고양 Hi FC에서는 할렐루야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축구단이라 주장하며 엠블램에 1980이라는 창단년도를 표기하고 있으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1980년 창단된 팀과 1999년 재창단된 팀은 별도의 팀이며, 기독교 선교 축구단인 임마누엘 축구단이, 1998년 원조 할렐루야 축구단이 해체하자 소속 선수들을 규합해 1999년 할렐루야 축구단으로 재창단한 것으로 보고 고양 Hi FC(K25)의 K리그 클럽 등록번호를 할렐루야 독수리(K11)와는 별개의 팀으로 부여하고 있다.

이 논쟁은 고양 Hi FC가 선교 구단의 이미지를 제거하고 지역연고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구단을 새로 창단하면서 독수리 모양의 엠블렘과 그 안에 1980이라는 창단년도를 표기한 것 외에는 과거의 역사에 대해 구단 홈페이지에서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면아래로 가라 앉아 있는 상황이나 고양이 여전히 선교구단의 색을 지우지 못하고 과거 할렐루야와 임마누엘의 역사를 승계하고자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꾸준히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


1980년에 창단한 할렐루야 구단의 후신이라는 주장

일단 구단주였던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재창단된 할렐루야의 창단 기념행사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다. 원조 할렐루야 최고 책임자로써 재창단된 할렐루야의 전통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1983년 창단한 임마누엘 축구단의 후신이라는 주장

1999년 재창단 당시 기존 임마누엘 축구단에 할렐루야 출신 선수 10명을 입단시킨뒤 구단명을 변경한것이다. 이영무 감독이 이랜드와 할렐루야가 해체한뒤 두팀의 선수를 모아 다시 재창단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랜드 푸마이랜드의 후원이 끊기고 팀이 해체된게 아니라 임마누엘 축구단으로 다시 팀명을 환원하고 팀을 계속 운영해나갔다. 계속 운영되던 임마누엘 축구단에 단순히 해체된 할렐루야 축구단 출신의 선수들이 입단을 했을뿐이다. 90년대 중반이후 수 없이도 각종 실업축구 무대에서 맞붙어왔던 두팀이고 엄연히 다른팀이었다. 해체된 할렐루야 출신 선수 10명이 임마누엘에 입단하였다 하더라도 재창단된 할렐루야의 기반은 엄연히 임마누엘이다.

1999년 창단한 이름만 같은 다른 구단이라는 주장

원조 할렐루야 축구단의 운영주체였던 기독교선교횃불재단이 1997년 창단한 할렐루야 유소년 축구클럽을 지금까지도 운영을 해오고 있다는것은 1999년 2월 재창단한 99년 재창단한 할렐루야 축구단은 1980년에 창단한 원조 할렐루야 축구단은 별개의 구단이라는 주장을 가리킨다. 하지만 1999년 재창단된 할렐루야는 안산 시절, 별도의 유소년 축구팀을 창단했고 고양에서는 하이드림 유소년이라는 별도의 유소년 축구단을 운영중에 있다. 즉 2014년 현재, 기독교선교횃불재단의 할렐루야 유소년 축구클럽과 고양 Hi FC의 유소년 축구클럽은 완전히 별개의 클럽이기 때문에, 기독교선교횃불재단이 운영하던 원조 할렐루야 축구단과 1999년 재창단한 할렐루야 축구단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연고지 변경 논쟁

할렐루야의 경우 연고지 변경을 자주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때문에 할렐루야 축구단, 익산할렐루야, 김포할렐루야, 안산할렐루야, 고양 Hi FC로 이어지는 축구단을 FC GSSK 유나이티드와 같은 연고이전 구단으로 해석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쟁을 말한다. 다만 초창기 프로 시절의 잦은 연고지 변경은 연고지의 이전이라기 보다는 연고지 배정과정에서 다른 팀들의 연고지를 우선 배정하고, 축협 회장[13]의 구단이었던 할렐루야는 연고가 없는 지역에 마지막으로 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수퍼리그 출범 당시에는, 대우 로얄즈 (부산, 경남), 유공 코끼리 (경기, 인천), 포항제철 돌핀스 (대구, 경북), 국민은행 까치 (전북, 전남) 등이 선점하지 않은 충청도와 강원도를 연고로 삼았으며, 이후 84년부터 럭키금성 황소의 연고지가 충청도로 배정되면서 할렐루야의 연고지는 강원도로 축소, 이후 전라도를 연고로 활동하던 국민은행이 실업리그로 돌아가자 전라도를 연고로 가져가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수퍼리그는 지역감정 유발을 이유로 홈&어웨이를 하지 않고 유랑리그를 펼쳤기 때문에 당시 연고 배정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러했던 할렐루야 축구단의 연고이전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실업축구연맹이 내셔널리그를 준비 및 출범을 전개한 2000년대 이후 부터다. 할렐루야 축구단은 2000년부터 인천광역시 등 여러 곳을 연고지로 삼고자 하였으나, '기독교 선교 축구단'이라는 팀의 정체성에 대한 연고지의 반발로 인해 이러한 시도가 무산되었다. 결국 2003년 연고지를 기반으로 한 K2리그가 출발하자 전국에서 가장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높은 지역인 전북 북서부에 위치한 익산시를 연고로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익산시 지자체의 미협조, 지자체 주민들의 부정적 입장[14]과 원광대학교 등 익산에 자리 잡은 원불교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2003년 후반기, 익산할렐루야는 K2리그에 참가하지도 못하고 2003년말 전북 익산시에서 경기도 김포시로 연고를 이전하며 이후 김포에서 2006년까지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2007년, 이번에는 안산와~스타디움의 완공 후 축구팀을 유치하고자 했던 안산시와 연고협약을 맺으며 또 한번의 연고이전을 감행한다. 그러나 안산에서도 지나친 종교색으로 인해 지역 구단으로서의 역할 정립에 실패하자, 안산시와 할렐루야의 관계는 뒤틀리기 시작했고 결국 2012시즌 종료 후 할렐루야는 또 다시 연고이전을 감행하여 이영무 감독의 고향이자 개신교 신자인 최성 시장이 있는 경기도 고양시로 이전을 선언한 뒤, K리그 챌린지에 입성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2000년대 들어서만 익산 → 김포 → 안산 → 고양으로 총 4번의 연고이전을 감행한 것. 이를 소위 패륜으로 봐야할지에 대해 찬반 논의를 게재하면 다음과 같다.


연고이전 구단으로 패륜이라는 주장

지난 2006년 내셔널리그, 고양 국민은행과의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연고지 이전계획을 발표했고 이와 관련해서 항의를 하는 김포팬이 존재했다. 무엇보다도 연고이전 결정으로 인하여 상처받은 팬이 생겨났고 당시의 챔피언 결정전때 할렐루야가 패배하며 승격이 무산됐지만 만약 승리해서 승격을 해서 안산연고지로 프로에 입성했다면 분명 지금의 일반적 여론과는 달리 다른평가가 내려졌을것이라고 본다.

패륜이 아니라는 주장

연고이전은 분명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할렐루야 축구단은 워낙 특수한 구단이며 기존의 구단들과 같은 잣대를 무조건 적용하긴 어렵다고 본다. 일단 지나친 종교색으로 할렐루야 축구단의 입성에 반감을 가지는 여론이 연고지내에서 분명히 존재해 왔으며, 내셔널리그의 시청구단이나 프로리그의 시민구단처럼 지역축구 발전의 목적이 아닌 아마추어내에서 선교를 위한 구단이었다. 하지만 실업축구가 내셔널리그로 재출범하면서 연고제도가 도입이 되었다. 할렐루야 축구단은 계속 자리를 지켜온거지만 리그환경은 변한것이다.지원금을 이유로 연고이전을 한 할렐루야 축구단도 문제지만 원래 실업축구가 지역연고에 기반하는 대회도 아니었던건 분명한 사실이다. 아직 정착하지도 않은 실업축구 지역연고를 프로축구와 같은 지역연고 확립을 이유로 비판하는것은 올바르지 않다.


선수단[15]

프런트

  • 구단주 : 박종순
  • 단장 : 이영무


코치진


선수


기록

주요 성적

대회명 순위 연도
내셔널리그 우승
준우승 2006
내셔널선수권대회 우승
준우승 2008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 1988, 2006
준우승 1994, 2002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준우승 1991, 1994, 1995, 1997, 1998
전국체전 우승
준우승


역대 주요 선수

수퍼리그 시절
조병득, 박성화, 이영무, 황재만, 신현호, 이용수, 오석재, 김진옥
실업축구 시절
김현민

이외 할렐루야 축구단에 몸담은바 있는 이들의 기록을 확인하시려면,
분류:할렐루야 독수리의 선수 (1983 ~ 1985)
분류:할렐루야 축구단의 선수 (1986 ~ 1998)
분류:안산 할렐루야의 선수 (1999 ~ 현재) 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역대 감독

순번 이름 선임 취임 사임 재임시즌
수퍼리그 시절
1대 김용식 1980/12 [16] 1980/12 1982/03/05
1981-1982
2대 함흥철 1982/03/06[17] 1982/03/06 1985 1982-1985
실업축구 시절
황재만[18] 1989 1989 1989-?
신현호 1996/10/19 ?-1996
조병득 1996/10/20[19] 1996/10/20 1998/11/17 1997-1998
내셔널리그 시절
이영무 1999/04/03 1999/04/03 2012 1999-2012


제반사항

역대 엠블렘


홈구장

수퍼리그 당시에는 지역감정 악화 등의 이유로 명목상의 연고지만 있었지 실제 홈구장은 없었고 실업축구도 K2/내셔널리그 출범 이전에는 중앙개최방식의 대회만 개최했었기 때문에 2003년에야 처음으로 연고협약을 맺고 홈구장에서 경기를 하게 되었다.



같이 보기


참고

  1. 연고 변천사는 충청도,강원도강원도전라도실업축구익산시김포시안산시의 순이다.
  2. 당시 최순영의 공약이자 축협의 당면과제는 크게 축구전용구장, 승강제프로축구 출범이었다.
  3. 할렐루야(Hallelujah)는 하느님을 찬양하라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로 개신교에서 많이 사용되며, 가톨릭에서는 알렐루야 혹은 찬미 예수라는 표현을 사용하므로 개신교적인 단어라 할 수 있다. 개신교측에서는 개신교라는 단어보다 기독교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나 기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가톨릭) 모두를 칭하는 단어이다.
  4. 때문에 정식 창단은 80년 12월에 했지만 공식 경기는 이듬해 3월에야 이루어졌다. 즉 1981년 3월 28일, 할렐루야 축구단은 동대문운동장에서 브라질 Americano를 초청해 친선 경기를 가졌으며 이영무의 골과 상대팀의 자책골을 더해 2:1로 데뷔전 승리를 거두었던 것. 이후 동년 4월 11일에는 대전공설운동장에서 홍콩 1부 리그 팀인 세이코를 초청해 이영길, 이영무, 신현호의 연속골로 3:1 대승을 거두었던바 있다. 그러나 경기간 간극도 길었고, 이벤트성 초청 경기에 국한된 한계가 있었다.
  5. 탈퇴된 선수들은 기독교 선교구단인 할렐루야가 신앙보다 축구만 신경쓰고 있으며 할렐루야 감독이 되기 위해 입교한 함흥철 감독과 나머지 선수들의 신앙심이 부족하다고 하고 구단측에서는 경기전 운동장에서 지나칠 정도로 기도를 하여 경기에 지장을 주며 간증선교를 위해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하는 등 축구선수로서의 책임을 망각하고 신앙에만 몰두한다고 대립했다. 결국에는 이수정 할렐루야 축구단 단장이 주장 이영무에게 좀 더 훈련에 매진하라고 했으나 그에 대해 반발하고 5명의 선수가 탈퇴를 선언하여 결국 5명의 선수가 제명. 이영무는 탈퇴후 임마누엘 축구단을 꾸려 코치겸 선수로 활동하면서 목사까지 되었고 나중에는 할렐루야 축구단의 단장이 되었으니 승리의 이영무. 좀 ㅎㄷㄷㄷ한 스토리.
  6. 원래는 구단 매각을 추진했지만 협회장의 구단해체에 대한 반발 및 기독교계의 반발(신의 부름에 부응하기 위한 팀을 매각한다는게 말이 안된다며..)로 인해 매각 계획은 철회하고 아마추어로 전환하여 운영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김덕기의 프로축구 30년<23> 아듀, 프로 1호 독수리 날개 접다 -스포탈코리아, 2013년 4월 3일-
  7. 최순영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기독교선교원의 후신으로 1991년 양재동에 횃불선교센터가 지어지면서 이름을 변경하였다. 할렐루야 선수단의 숙소와 구단사무실이 센터내에 위치해 있었다. 최순영이 재단이사장으로 있다 최순영이 경제관련비리로 수감되어 있을 때는 부인이자 국민의 정부 시절 옷로비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룬 이형자씨가 재단이사장으로 있었다.
  8. 2월에 구단 해체를 결정하였고 팀 이름도 임마누엘로 원상복귀 되었지만 이랜드 측에서 98년 시즌까지 최소한의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하었으므로, 실제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진 것은 할렐루야와 비슷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랜드 회장 박성수씨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므로 계약서와는 별도로 이후 할렐루야 시기에도 구단 물품 및 용품 지원은 꾸준히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할렐루야의 유니폼 스폰서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9. 할렐루야축구단, 2월말 재창단 -1999년 1월 13일, 연합뉴스-
  10. 98년 말을 기점으로 할렐루야는 신동아 그룹의 지원이 끊어졌고 임마누엘은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선교구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신교계의 지원이 절실하였는데 임마누엘보다 할렐루야가 훨씬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할렐루야 중심으로 팀을 존속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11. 할렐루야 축구단 재창단 -1999년 3월 16일, KBS-
  12. 당시 언론에서는 1988년 이후 18년만에 대통령배를 우승했다고 하였다. 88년 우승팀은 임마누엘이 아니라 할렐루야였다. 할렐루야, 18년만에 대통령배축구 우승 -2006년 3월 30일, 스포츠서울-
  13.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인 최순영 씨는 축구협회 회장 겸 할렐루야 독수리 축구단의 구단주였다.
  14. 전국에서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하지만, 35% 수준에 불과했다.
  15. 2012년 시즌종료 시점 명단. 즉 할렐루야가 내셔널리그에 마지막으로 참가하던 시점이다.
  16. [1]
  17. [2]
  18. 1989년 황재만 감독, 신현호 코치 체계로 운영되다 황재만 감독이 총감독이 되고 신현호 코치가 감독직을 맡게 되었고, 1996년 성적 문제로 신현호 감독이 해임되고 조병득 감독이 취임하였으나 황재만 총감독은 구단이 해체될 때까지 유임되었다. 황재만 감독은 하지 마비로 인해 휠체어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시절에도 신현호 코치가 일정부분 감독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19. [3]
  20. 2011년 전국체전 준비관계로 주경기장이 아닌 보조구장을 사용하다가 결국 2012년에 이르러서도 주경기장이 아닌 보조경기장을 사용하였다. 사용료 부담으로 인한 듯.. 그러고도 4천원씩 받아먹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