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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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970년생 K리거에 관한 것입니다. 1988년생 K리거에 대해서는 김도훈2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김도훈1.jpg
축구천재 김도훈

김도훈(1970년 7월 21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95년부터 2005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공격수 출신의 지도자이다. K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게터. 현재는 은퇴하여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맡고 있다. 동명이인으로 2011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1988년생 김도훈과 구별하기위해 등록명은 김도훈1이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김도훈
  • 출생일 : 1970년 7월 21일
  • 신체 : 183cm / 79kg
  • 수상 경력
2000년 K리그 득점왕 수상, K리그 시즌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 선정
2001년 올해의 키카골 선정
2003년 K리그 득점왕, K리그 시즌 MVP, K리그 시즌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 선정
2004년 AFC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수상,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인기선수 선정
2005년 K리그 대상 공로상 수상, 앙드레김 특별상 수상
  • 국가대표 경력
1988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
1993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96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대표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 (와일드카드)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본선 대표
2002년 북중미 골드컵 본선 대표
2003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본선 대표
(통산 A매치 72경기 출장 30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특기 사항
K리그 개인 통산 공격포인트 1위 (155포인트)
6년 연속 리그 두자리수 골 기록 (K리그 유일)
단일시즌 개인 최다 득점 (28골) (2003시즌)
단일시즌 개인 최다 공격포인트 (41포인트) (2003시즌)
단일시즌 1경기 당 공격포인트 획득률 1위[1] (2003시즌)
K리그 200경기 이상 출전 선수 중 통산 1경기당 공격포인트 획득률 최다[2]
K리그 최다 해트트릭 기록 보유자 : 6회 (ACL, FA컵 포함시 총 9회)
K리그 최고령 해트트릭 주인공 (만 35세 1개월 1일)
  • 리그 기록 (실업 포함)
연도 소속팀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5 전북 다이노스 전북 다이노스 25 5 9 5 3 0
1996 22 9 10 3 0 0
1997 전북 현대 다이노스 전북 현대 다이노스 14 2 4 1 2 0
2000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27 2 15 0 2 0
2001 35 1 15 5 5 0
2002 30 11 10 4 2 0
2003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40 1 28 13 2 0
2004 32 6 10 3 3 0
2005 32 18 13 7 3 0
통산 (K리그) 257 55 114 41 22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7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 주요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
2006년 ~ 2012년 Teamlogo sifc.png 성남 일화 천마 코치
2013년 Teamlogo gwfc.png 강원 FC
2014년 대한민국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2015년 ~ 2016년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2016년 11월 ~ 현재 Teamlogo uhfc.png 울산 현대
  • 감독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ACL 비고
2015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유나이티드 클래식 13 12 13 8위 - 준우승 - -
2016 5 9 14 중도 해임
2017 울산 현대 울산 현대 - - - - - - - -
통산 K리그 클래식 18 21 27 승률 27.2%
승/무/패는 리그(K클+K챌)에서 거둔 것만, 리그 외 대회는 최종 성적만 기록한다.


유소년 생활[편집]

경상남도 통영시 출생으로, 통영중학교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통영중학교를 거쳐 울산 학성고등학교와 서울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연세대 졸업 후 곧바로 상무에 입대하며 군복무를 일찌감치 마친바있다. 상무 시절인 1994년,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김도훈은 동년 9월 13일 동대문운동장에서 벌어진 우크라이나와의 친선경기에서 후반 19분 한정국의 크로스를 받아 멋진 바이시클킥으로 선제골을 엮어내면서 대한민국의 2:0 승리를 이끌었던바있다. A매치 데뷔전에서의 데뷔골 기록. 김도훈의 전설은 1994년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프로 생활[편집]

전북 시절[편집]

1995년 상무 제대와 동시에 전북 다이노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5년 드래프트에서 최대어였던 김도훈은 신생팀 우선지명권을 갖고 있던 전남 드래곤즈가 지명할 것으로 확실시 되었다. 하지만 같은해 11월 전북 다이노스가 창단되며 조금 더 늦게 창단된 전북이 우선권을 갖게 된 상황이 발생하였고, 결국 전북 초대 감독이었던 故차경복 감독은 그 김도훈을 가장 먼저 지명하게 되어 김도훈은 전북 다이노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입단 당시 이미 국가대표로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던 대형신인이라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개막전이었던 전남 드래곤즈와의 아디다스컵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화려한 프로 데뷔무대를 가졌다. 이러한 쾌조의 상승세를 타고 신인왕 후보 1순위로 까지 거론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전반기 중반 불의의 부상을 당하게 되어 한동안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결국 의욕적으로 노렸던 신인왕은 타이틀은 노상래에게 돌아가게 된다.


J리그 시절[편집]

1997년 시즌 전에 맺은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으로 해외로 나갈수 있으나 2년 뒤 전북으로 복귀한다' 조건부 계약에 따라서 해외진출을 모색하였고, J리그 비셀 고베와 임대형식으로 계약하였다. 1998 시즌 비셀 고베는 다음 해에 새로 구성되는 J2로 강등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정규리그 17골과 컵대회 2골을 기록하는 김도훈의 대활약 덕분에 강등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99년에는 더 좋은 조건으로 재계약하게 되었고 1999년에도 10골을 넣으며 그 위용을 이어갔다. 2년동안 J리그 통산 58경기 27골을 기록한다.


다시 전북으로[편집]

2000년 착실히 김도훈의 복귀작업을 추진해온 전북은 K리그 최고대우를 약속하였고 당시 최고연봉인 2억7천만원에 재계약하게 된다. K리그로 돌아온 후 박성배와 투톱을 이루며 J리그 진출 전보다 더욱 성숙한 플레이로 대활약하였고, 그에 힘입어 전북은 창단이래 최고 성적인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하며 최초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비록 아쉽게 K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활약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1년 레오, 비에라 등의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와 함께 찾아온 갑작스러운 성적부진으로 최만희 감독이 시즌 중 사퇴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되자, 시즌 종반 전북은 조윤환 감독을 영입하게 된다. 전북에 새로 부임한 조윤환 감독은 전면적인 팀 리빌딩을 계획하여 전 소속팀인 부천 SK 선수들을 영입해 중용하기 시작했고 과도하게 외국인 선수에 중점을 둔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도훈 선수를 비롯한 기존 전북선수들을 별다른 이유없이 출전명단에서 제외시키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고 게다가 간판 공격수인 김도훈에게 경미한 부상을 이유로 2군행을 지시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3] 결국에는 조윤환 감독의 선수 기용방식에 강한 불만을 터트리게 되었고, 전북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 대상자로 풀린 김도훈 선수는 이적료 6억 5천만원과 K리그 최다 연봉 4억원, 2년 계약으로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게 된다.


성남 시절[편집]

2003년 때마침 성남의 감독은 프로 입문당시 인연을 맺은 차경복 감독이었고, 차감독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김도훈 선수는 제3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3년 시즌 성남 일화 천마는 수십억에 달하는 자금력을 통해 초호화 멤버를 구성하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4라운드 풀리그로 진행된 K리그에서 성남은 시즌 중반부터 일찌감치 우승을 예약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시즌에 해트트릭을 3번씩이나 기록하는 등 40경기 출장 28골 13도움의 괴물같은 활약을 펼친 김도훈 선수의 공이 가장 컸지만 말이다. 이 시즌에는 득점왕 경쟁도 상당히 치열했었는데, 당시 외국인 공격수 마그노, 도도 등과의 득점왕 경쟁에서 1골차로 뒤지고 있었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두 골을 몰아넣으며 득점왕 타이들도 거머쥐게 되었다.



선수 생활 은퇴[편집]

2005년 시즌 종반 최상의 모습으로 은퇴를 해야겠다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대한축구협회에서는 A매치 70경기 이상 출장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공식 은퇴식을 열어주고 있어 규정에 따라 2006년 3월 1일 앙골라와의 A매치경기에서 공식 은퇴식을 갖게 되었다.


지도자 생활[편집]

은퇴 직후 김학범 감독 아래에서 성남 일화 천마의 코치 생활을 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2015년 현재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활동중이다. 여러가지 지도자 연수를 차근차근 준비하며 2011년 단국대학교 박사과정을 마치고 '프로축구 팬의 팀충성도가 경기관람 요인과 소비자행동 결정요인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졸업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K리그 역사상 손에 꼽히는 최고의 골게터로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냥 경기장 안에 있는것 만으로도 언제나 골을 터트려 줄 것 같은 골감각을 지닌 선수였다. 특히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효과적인 공간침투와 함께 이어지는 정교한 슈팅은 상대하는 골키퍼와 수비수들이 가장 상대하기 싫은 공격수로 가장 먼저 선택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에피소드[편집]

  • 한국 역사상 최초로 브라질을 잡을 때 결승골을 넣은 선수이다. 1999년 3월 28일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추가시간에 골을 작렬, 1:0으로 브라질을 격침시켰다.[4] 당시 브라질의 맴버는 카푸, 제 호베르투, 히바우두 등등 면면이 꽤 화려했는데 그런 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 무려 외신에까지 다뤄질 정도로 엄청난 이슈가 되었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팬들은 잠실 주경기장에서 이루어진 경기라 홈 어드밴테이지가 강하게 작용한 경기라고 브라질전 승리를 크게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 신태용 선수와 함께 K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이자 기록의 화신이다. 김도훈 선수와 신태용 선수가 도합해서 200골을 넘게 기록했으니 이건 뭐..; 실제로 신태용 감독은 성남을 지휘하면서 성남 선수 하나가 게으름을 피우자,[5] "나랑 여기 김도훈이는 합치면 200골 이상 넣었어. 너희들 다 합치면 200골 넣었어? 이 쌍놈새끼들 건들거리고 말야, 똑바로 해라"고 일갈하기도 했었다고..;;
  • 또한 김도훈 선수의 대단한 점은 불과 9시즌동안 K리그에서 뛰면서 K리그의 전설적인 기록은 모두 일구어냈다는 점이다. 연세대학교 졸업 후, 상무까지 제대한 뒤 25살에야 K리그 무대에서 데뷔전을 가졌고, 전성기 기량이었던 시절에는 J리그에서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던것. 만약 김도훈 선수가 K리그에서 좀 더 오랜 시간 꾸준히 활약하였다면 어떤 기록을 세웠을지 상상만으로도 쫄깃하다.

경력[편집]

  • 1993 ~ 1994 : 상무 / 실업축구 (군복무)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40경기 출장, 41 공격포인트 기록하며, 경기 당 공격포인트 획득률 102.5%를 기록했다.
  2. 무려 77.5%를 기록하였다.
  3. 특히 득점왕 경쟁에서 언제나 선두권을 유지해왔던 김도훈에게 잦은 엔트리 제외는 경기감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터.
  4. 영상 : http://www.youtube.com/watch?v=IVk7YC3qjBk
  5. 마침 이 선수가 전직 국가대표였다..;


틀:K리그 2000 베스트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