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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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종부.JPG
국가대표 시절 김종부

김종부(1965년 1월 13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비운의 축구 천재로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선수이다.



프로필[편집]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김종부
  • 출생일 : 1965년 1월 13일
  • 신체 : 183cm / 72kg (선수 시절)
  • 국적 : 대한민국 대한민국
  • 국가대표 경력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본선 대표
1984년 LA 올림픽 아시아 예선 대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대표
1983년 ~ 1990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25경기 출장 8골)
  • 현 소속팀 : 선수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슈팅 경고 퇴장
포항제철 아톰즈 포항제철 아톰즈 1988 15 7 0 5 24 0 0
1989 18 14 1 2 8 1 0
대우 로얄즈 대우 로얄즈 1990 22 5 5 1 38 1 0
1991 7 7 0 0 9 0 0
1992 6 6 0 0 4 0 0
일화 천마 일화 천마 1993 5 5 0 0 1 0 0
1994 3 3 0 0 2 0 0
대우 로얄즈 대우 로얄즈 1995 5 5 0 0 5 0 0
통산 (K리그) - 81 52 6 8 91 2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팀명 리그 직책
1997년 ~ 1998년 거제고등학교 축구부 고등축구 감독
1999년 ~ 2004년 동의대학교 축구부 대학축구
2006년 ~ 2009년 중동고등학교 축구부
2010년 수원 FC 유소년 축구팀 유소년 축구
2011년 ~ 2012년 양주 시민축구단 K3 챌린저스리그
2013년 ~ 2015년 화성 시민축구단
2016년 ~ 현재 경남 FC K리그 챌린지


선수 시절[편집]

유소년 생활[편집]

김종부 스카우트 파문[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입니다.


K리그[편집]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이후, 대우 로얄즈현대 호랑이 축구단의 공동 임대 형식으로 포항제철 아톰즈에 2년 임대되었다. 어부지리로 김종부를 얻은 포항은 대우에만 이적료 1억 1천만원을 지급하며 김종부 영입에 열의를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에 입성한 김종부는 데뷔 시즌 K리그 도움왕을 차지하면서 역시 김종부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으로 1년여간 운동을 쉬었던 부작용이 오래가지않아 나타나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체력은 갈수록 떨어져 교체되는 횟수가 잦았고, 잦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시달렸던 것. 결국 포항제철은 김선수가 이름값을 못한다는 평가와 함께, 대우와 현대 측에 김종부의 처분을 논의했고 대우는 수비수 손형선과 이적료 2천만원을 내주는 것을 조건으로 김종부를 대우에 입단시키는데 성공했다.



대우에 입단한 김종부는 포항제철을 상대로 득점포를 가동하는등 1990시즌만 5골을 기록하며 서서히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희망섞인 기대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91년 조덕제 선수가 김종부 선수의 자리를 노리며 급성장했고, 김종부 선수는 몇경기 출장하지도 못했거니와 출장한 경기마다 부진한 움직임 끝에 교체당해 아쉬움만을 남겼다. 결국 1993년 김종부를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키웠던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일화 천마에 입단하게 되었다. 계약금은 0원, 월봉 120만원의 조건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일화에 입단한 김선수였지만, 일화에서의 생활도 순탄치는 않았다. 김종부 선수의 포지션에는 93년부터 95년까지 K리그 3연패라는 무지막지한 업적을 일구게되는 전설적인 선수들이 즐비했고, 제 기량이 아닌 김선수가 이들과의 경쟁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던 것.. 결국 94시즌을 끝으로 일화에서도 퇴단한 김종부는 95시즌 대우에서의 생활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모든 이들이 극찬해 마지않았던 천재 축구선수의 쓸쓸한 퇴장이었다..

국가대표 시절[편집]

1983년 6월 청소년대표팀의 에이스로 혜성처럼 등장해, 당대 최고의 재능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동년 11월 곧바로 성인 국가대표팀으로 콜업되어 LA 올림픽 아시아예선에서 활약하였으며, 불과 만 18세의 나이로 A매치 해트트릭을 작성하는 등 한국 축구의 구세주로 등극하였다. 게다가 김종부 스카우트 파문이 터지면서 소속팀에서 경기를 소화하지 못한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섰음에도, 불가리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월드컵 본선 최초 득점 및 승점을 만들어내는데 공헌하기도 하였다. 이후 K리그에서 자리를 잡지못하며 부진하던 1990년까지도 국가대표에는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출장하였다.


지도자 생활[편집]

대우 로얄즈에서 선수 생활을 정리한 김종부 씨는, 대우 측의 배려로 1997년부터 부산 대우 로얄즈 U-18 격이었던 거제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이후 거제고를 대통령금배 고교축구대회 8강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김감독은, 99년부터 부산 동의대학교 축구부 감독직을 수행하는 등 부산ㆍ경남 권에서 활발한 지도자 생활을 전개하였던바 있다. 2006년부터는 모교인 중동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았으며, 2010년대 이후로는 K3 챌린저스리그 감독직을 수행하는 등 착실히 지도자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2014년에는 화성 FC를 이끌고 K3 챌린저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작은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스타일[편집]

선수 시절[편집]

지도자 스타일[편집]

경남 FC에서는 플랫 4-4-2 포메이션을 통해 경기를 풀어 나갔다. 특징적인 세부 전술은 크게 도드라지는 것이 없는 평범한 전술이지만 공격수들의 포텐을 터뜨리는 데 상당히 일가견이 있다. 수 시즌째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 온 송수영이호석을 팀의 핵심 공격자원으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에피소드[편집]

  • 배우 박중훈씨와 절친으로 알려져있다. 화성 FC 창단식 및 출정식에 참석하여 화성FC와 김종부 감독에게 건승을 기원했다. [1]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