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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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노상래

노상래 (1970년 12월 15일 ~ 현재)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3년부터 2004년까지 실업리그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스트라이커이다. 현재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프로필

선수 프로필

  • 이름 : 노상래
  • 출생일 : 1970년 12월 15일
  • 출생지 : 대한민국 전북 군산
  • 신체 : 175cm / 74kg
  • 수상 경력 및 특기 사항
1995년 K리그 신인왕득점왕시즌 베스트 FW 부문 3관왕
K리그 단일 클럽 득점 순위 7위
K리그 통산 득점순위 14위
40-40 클럽 기록 보유자
  • 국가대표 경력
1992년 AFC 아시안컵 예선 대표
1995년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대표
1996년 AFC 아시안컵 예선ㆍ본선 대표
1998년 FIFA 월드컵 예선 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25경기 출전 6득점)[1]
  • 현 소속 클럽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5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K리그 33 2 16 6 4 0
1996 32 14 13 7 5 1
1997 17 9 7 3 2 0
1998 31 8 10 8 7 0
1999 36 11 11 6 1 0
2000 37 21 9 5 0 0
2001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27 19 5 4 0 0
2002 6 5 0 0 1 0
2003 대구 FC 대구 FC 21 18 4 1 4 1
2004 6 5 1 0 1 0
통산 K리그 246 112 76 40 25 2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8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

연도 소속팀 직책
2005 ~ 2006 대한민국 김희태 축구센터 코치
2007 대한민국 아주대학교
2008 ~ 2011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2012.06 ~ 2012.08 Teamlogo gwfc.png 강원 FC 수석 코치
2012.08 ~ 2014.11 Teamlogo jdfc.png 전남 드래곤즈
2014.11 ~ 2016.10 감독
2016.10 ~ 현재 수석 코치


선수 경력

유소년 시절

군산구암초등학교, 군산제일중학교, 군산제일고등학교, 숭실대학교를 나온 선수이다.


실업 시절

1993년 주택은행 축구단에 입단, 1994년까지 2년간 뛰었다.


프로 시절

1995년 전남의 창단 맴버로 입단, 데뷔 시즌 득점왕과 신인상을 휩쓸었고 이후에도 롱런하며 전남의 상징적 선수로 자리매김 하였다. 하지만 2002년을 끝으로 나이 문제 등을 이유로 퇴단하였으며, 이후 해외 진출을 모색했지만 여의치 않자 대구 FC에 입단하며 1년 반 동안 활동한 뒤, 2004시즌 중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국가대표 시절

프로 무대에서는 90년대를 풍미한 선수로 이름을 날린 것과 달리, 국가대표와는 비교적 인연이 없는 선수 중 한명이었다. 1992년 아시안컵 예선을 아마 선발로 파견할 당시, 노선수는 숭실대 재학 신분으로 발탁되며 첫 태극 마크를 달았으며, 이후 95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와 각종 A매치 경기, 그리고 1997년에 있었던 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맹활약했지만 이후로는 국가대표에 발탁되지 못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전설의 캐논슈터로 기억되고 있다. 슈팅강도도 엄청났지만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를 완벽히 속이는 반박자 빠른 슛팅 타이밍은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도자 경력

감독 생활 이전

은퇴 후, 김희태 씨의 축구 교실에서 코치로 활동하였으며, 아주대학교를 거쳐 친정팀 전남 드래곤즈의 코치로 활동하기도 했다. 노상래 코치는 2011년까지 활동한 다음 2012년 여름에는 강원 FC 수석 코치로 부임하기도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남 정해성 감독이 사임하고 하석주 수석 코치가 감독에 부임하게 되면서 그 자리를 다시 노상래 씨가 복귀하여 대신하게 되었다. 이후 2014년까지 하석주 감독을 보좌하며 활동했었으며, 그 시즌을 끝으로 하 감독이 아주대학교 감독으로 복귀 할 것을 선언하고 전남의 지휘봉을 내려놓자 감독으로 선임되기에 이르렀다.


전남 감독 시절

그렇게 선수 시절과 코치 시절을 같이 보내온 전남 드래곤즈의 9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노상래 감독은 2015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감독으로 전남을 총괄하게 되었으며, 시즌 첫 해에는 시즌 초반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오르샤 선수와 이종호 선수 등의 활약으로 여름부터 그럭저럭 자신의 전술 색을 찾게 되었다. 그럼에도 뒷심부족으로 시즌 말미에 성적이 쳐지게 되면서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며 전형적인 초보 감독의 시행착오를 보이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듬해 2016년에는 주축 선수인 스테보 선수의 은퇴와 더불어 미드필더와 수비진 붕괴 그리고 김병지 선수를 내보내고 대체 자원이 미흡했던 관계로 시즌 초반부터 삐걱대기 시작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 결국, 2016년 5월부로 감독직을 사임하겠다고 선언하고 말았다. 여기에 전남 구단 측은 노 감독을 신뢰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믿음을 보였고, 노 감독도 사임 의사를 거두게 되었다. 노 감독은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실력이 준수한 외국인 선수들로 부족한 자리를 보강하였으며, 이것이 자신의 전술 철학과 맞아 떨어져 점차 반등을하게 되었고, 마침내 시즌 상위 스플릿에 올리는 성과를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노 감독의 풍파는 끝이 없었다. 2016년 10월 상위 스플릿에 전남을 올린 성과를 보이고도 축구 지도자 자격증에서 P급 라이센스를 그동안 취득하지 못한 것이 발목을 잡아 수석 코치로 다시 내려가고 말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전남 감독 자리에는 송경섭 씨가 취임하게 되었다.[2][3]


이야깃거리

  • 주택은행 당시에는 이후 은퇴하고 은행원이 되는게 꿈이었다고 한다.
  • 2001년 3월 25일, 광양에서 있었던 전남과 성남의 경기에서 노상래 선수는 2골을 넣으며 맹활약했다. 당시 국가대표 감독인 거스 히딩크는 경기장을 방문했고, 인상깊은 선수가 있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이날 맹활약한 노상래 선수가 국가대표에 복귀하는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결국 발탁된 선수는 노상래가 아닌 김남일이었다.
  • 2004년 시즌 중 은퇴를 결정한 노상래는, 당시 여름에 열릴 예정이었던 삼성 하우젠컵 2004 대구 홈경기에서 은퇴 경기 및 은퇴식을 갖기로 하였다. 그런데.. 하필 그 날 엄청난 폭우 속에 경기가 펼쳐진데다, 대구 FC 측의 준비 부족 등이 겹치면서 전설적인 공격수의 은퇴식 치고는 매우 초라한 은퇴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폭우속에 관중석을 향해 절을 하는 노상래 선수의 은퇴식 사진이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
  • 노너잘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4년 수석 코치 시절, 노상래 씨는 크로아티아로 건너가 크리즈만의 기량을 확인하고 왔는데, 이 영입을 승인할 박세연 전남 사장이 크리즈만을 두고, "노상래, 너보다 잘하냐?"라고 물었고 노상래 씨는 "그렇다"라고 답변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크리즈만이 전남에서 잘했다면 이런 은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지만, 결과는...


업적



갤러리

같이 보기


참고

  1. 1992년 아시안컵 예선 당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실업 선수와 대학 선수를 규합한 아마추어 선발을 파견했다. 이 때 아마선발을 파견했어도 아시안컵이나 월드컵 예선이나 본선의 경우는 공식적인 A매치로 기록이 된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1992년 6월 21일 태국에게 1-2로 패배하며 대한민국이 예선 탈락한 경기를 노상래 선수의 A매치 기록에서는 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태국과의 역대 전적에는 해당 패배 경기를 기록하고 있으면서, 개인 A매치 기록에는 누락시킨 것으로 보아 내부적으로 혼선이 있는듯..
  2. 이것은 AFC 규정으로 인한 것이다. AFC는 최상위 지도자 자격증인 P급을 보유하지 못한 팀은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을 2017년부터 적용할 것을 이미 밝혔기에 K리그 몇 팀들은 해당되지 못한 감독들을 수석 코치로 내리고 부랴부랴 P급을 보유한 외부 인사를 감독으로 선임하게된 것이다. 이에 해당되는 팀은 전남과 SK 유나이티드이며, K리그 챌린지부천 FC 1995도 이런 이유로 감독을 교체하였는데, 이는 부천이 2016 KEB하나은행 FA컵 4강전까지 오른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기존 감독을 대신한 신임 감독들은 "바지 감독"이라고 불릴 지경에 이르렀다.
  3. 상위 스플릿 이끈 조성환-노상래 감독 수석코치 강등된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