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주(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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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주 (1942년 2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박병주
  • 출생일 : 1942년 2월 20일
  • 국적 : 대한민국 대한민국
  • 신체 : 172cm / 64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70년 백호 축구 국가대표팀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72년 뮌헨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70년 ~ 197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24경기 출장)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지도자 프로필[편집]

  •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
1976 ~ 1993 서울신탁은행 축구부 감독[1]
1997 ~ 1998 안양 LG 치타스 감독
  •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연도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안양 LG 치타스 안양 LG 치타스 1997 3 18 14 9위 10위 (아디다스컵)
A조 3위 (프로스펙스컵)
4강
1998 14 0[2] 17 8위 3위 (필립모리스컵)
4강 (아디다스컵)
우승
통산 (K리그) - 17 18 31 대한민국 FA컵 1회 우승


실업 팀 입단 이전까지[편집]

충남 예산군 오가면 태생으로 예산농고ㆍ성균관대학교를 나왔다. 예산농고 시절까지 육상 선수로 활동하였으며, 성균관대학교 시절까지도 축구 교육을 받지 못하였으나 1963년 군에 입대한 뒤 장신의 체격과 빠른 발을 눈여겨 본 육군 축구팀[3]에서 박씨를 스카우트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후 1965년, 제대를 5개월여 앞두고 제일모직과 연습 경기를 가졌는데 당시 제일모직 소속이었던 문정식안종수 등이 박선수의 빠른 발에 감탄, 제대 후 찾아오라는 스카우트 제의를 넣었고 이를 계기로 박병주는 제대 후 제일모직에 곧장 입단하게 된다.


실업 선수 시절[편집]

초기에는 기본기가 부족한 선수였으나, 홍인웅 등 일모 소속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보며 이를 본따는 방식으로 실력을 빠르게 키워나갔다. 덕분에 1960년대 말에는 제일모직 주전급으로 성장, 이후 1969년 금융팀 창단 붐이 불자 홍덕영 당시 서울은행 축구단 코치의 제의로 서울은행에 입단하게 된다. 서울은행에서는 홍덕영 코치의 조련을 받은 끝에 백호 국가대표팀을 거쳐 1970년 청룡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으며 1973년 민병대 감독의 리빌딩 작업 일환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되기 까지 약 4년여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였다. 대표팀에서 물러난 뒤에도 1975년까지 서울은행 축구단 선수로 활동하다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선수 은퇴 이후[편집]

선수 생활 정리 직후인 1976년, 서울은행 축구단과 한국신탁은행 축구단이 합쳐지면서 창단한 서울신탁은행 축구단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서울신탁은행을 이끌고 장장 18년 간 서울신탁은행의 감독으로 활약하였으며, 아울러 한국실업축구연맹 이사와 대한축구협회 이사, KBS 축구 해설가 역할 등을 두루 겸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94년 팀이 해체됨에 따라 한동안 야인 생활을 했고, 대전 시티즌 감독 후보 등으로 하마평이 오르내리다가 1996년 12월 안양 LG 치타스 감독으로 계약금 1억원, 연봉 7천만원, 2년 계약 기간의 조건으로 선임되었다. 당시 안양 LG 치타스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상황이었는데, 불과 2년 만에 어느 정도 경쟁력 있는 팀으로 끌어올리는 지도력을 보여줘 호평을 받았다. 특히 98시즌 종료 후 조광래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것이 확정된 상황이었음에도, 레임덕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팀 분위기를 유지한 끝에 98년 대한민국 FA컵에서 울산 현대 호랑이를 물리치고 우승컵을 차지해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말년[편집]

안양 감독에서 물러난 뒤에는 지도자 생활에서도 손을 떼었으며, 이후 안양 LG 치타스 고문 등으로 활동하며 축구계 원로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에피소드[편집]

  • 서울신탁은행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KBS 해설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특히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을 KBS가 중계할 당시, 박병주 씨가 해설위원으로 나오셨던바 있다.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창단 시점부터 해체할 때까지 감독직을 수행하였다.
  2. 98시즌은 전후반 90분 이내 승리의 경우 승점 3점, 90분 이내 승부가 가려지지 않을 경우 연장전 전ㆍ후반 15분을 통해 골든골 승리시, 승리팀 승점 2점, 연장전을 통해서도 승부가 나지않을 경우 연장전 종료 후 PK를 통해 승리팀을 가리고 이 때 승리팀은 승점 1점을 획득하는 제도를 취하였다.
  3. 공병단에서 박씨를 스카우트한 것인지, 아니면 일반 사단 내지 군단급 대표로 선발된 것인지 불분명하다. 자세한 정보 있으신 분이 추가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