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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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시절의 양영민(오른쪽) 왼쪽은 김기남

양영민 (楊泳民, Yang, Young Min 1974년 7월 19일~ )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K리그에서 뛴 선수이다. 현재 지도자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양영민
  • 생년월일 : 1974년 7월 19일
  • 신체 : 189cm / 87kg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실점 도움 경고 퇴장
천안 일화 천마 천안 일화 천마 1999 0 - - - - -
Teamlogo sifc.png 성남 일화 천마 2000 0 - - - - -
2001 0 - - - - -
2002 0 - - - - -
2003 0 - - - - -
2004 8 2 6 0 0 0
2005 1 0 0 0 0 0
통산 (K리그) - 9 2 6 0 0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2년 9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07 ~ 2009 명지대학교 축구부 골키퍼 코치
2010 ~ 2011 광성중학교 축구부
(인천 유나이티드 U-15)
2012 ~ 2013 상지대학교 축구부 코치
2014 ~ 2015 대전 시티즌 대전 시티즌


유소년 시절[편집]

인천에 소재한 부평고등학교를 거쳐, 명지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명지대 시절 주전 GK로 활약한 뒤 졸업후에는 2년동안 상무에서 활동하여 병역의무를 마쳤다.


K리그 시절[편집]

1999년 천안 일화 천마사리체프의 방출로 골키퍼 누수 현상이 심했기 때문에, 1999년 드래프트에서만 골키퍼를 2명이나 지명하며 골키퍼 부재를 해결하려 하였다. 이 때 천안에 지명된 두명의 키퍼 중 한명이 바로 양영민 이었다. [1] 일단 프로에 입단한 양영민이었지만, 같은 프로 입단 동기였던 권찬수 선수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서브 키퍼 자리마저 기존 멤버였던 김해운에 밀리며 주로 일화 2군에서만 지내는 일이 잦았다. 이런 상황은 1999년 팀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의 우승을 이끌면서 MVP에 올랐음에도,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는데 이는 다른 키퍼들의 부상으로 양선수가 주전으로 올라올만한 기회가 생기면, 양선수 자신도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다. 설상가상이라고 뒤이어 전상욱, 박상철 등 걸출한 골키퍼 신인들이 잇달아 일화에 입단하면서 양영민은 무려 2004년까지, 프로 입단 후 6년 동안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러던 2004년, 드디어 양영민은 꿈에도 그리던 1군 무대를 밟게 되었다. 당시 차경복 감독은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권찬수와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김해운을 대신하여 양영민을 기용했던 것이다, 다행히 8경기에 나온 양영민은 6실점으로 선방했고, 이에 고무된 차감독은 알 이티하드(KSA)와의 2004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에 양영민 선수를 출전시키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양선수는 결정적일 때마다 캐치미스를 범하며 0:5 대패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고.. 이 패배 후 차경복 감독은 자진사임, 김학범 감독 체제로 전환되면서 양영민은 성남 일화의 전력 구상에서 완전히 제외, 결국 2005년 1경기 출전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은퇴 이후[편집]

은퇴 이후 양영민은 모교인 명지대학교에서 골키퍼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였다. 그러던 중 2010년 창단한 인천 유나이티드 U-15 유스팀인 광성중학교 축구부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였다가 2012년부터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상지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하였다.


에피소드[편집]

  • 양영민은 2004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공격 포인트를 올렸는데, 팀이 2:1로 앞서던 후반 36분 길게 올려준 골킥이 김도훈에게 정확히 연결되었고, 김도훈이 가볍게 차넣으며 3:1의 리드를 안기는 도움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모란참사가 일어날 줄이야...
  • 사실상 성남 팬들은 알이티하드에 당한 0:5 대참사를 양영민 탓으로 돌리고있다. 확실히 당시 경기를 떠올리면 안먹혀도 될골을 계속 먹혀서 성남 선수단 전체가 정줄을 놔버렸던게 눈에 보였다.[2]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조[편집]

  1. 또 다른 한명은 권찬수였다.
  2. 여기에 당시 2차전에서 성남 수비의 핵심이었던 싸빅이 출장정지를 당했던 것도 대패의 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