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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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시절 우성용
ⓒ 포항 스틸러스

우성용 (1973년 8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6년부터 2009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스트라이커이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우성용
  • 출생일 : 1973년 8월 18일
  • 신체 : 192cm / 78kg
  • 수상 경력
2001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FW 부문 선정
2006년 K리그 득점상
2006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FW 부문 선정
2008년 K리그 공로상
  • 국가대표 경력
1992년 AFC 청소년 선수권대회 본선 대표
1995년 칼스버그컵 본선 대표
1995년 다이너스티컵 본선 대표
2003년 AFC 아시안컵 2차 예선 대표
2007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15경기 출전 4득점)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6경기 출전 4득점)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6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대우 로얄즈 K리그 31 21 4 2 2 0
1997 30 13 2 1 3 0
1998 25 20 4 3 2 0
1999 38 24 9 2 4 0
2000 부산 아이콘스 부산 아이콘스 34 10 6 3 3 0
2001 33 8 16 3 1 0
2002 26 4 13 3 3 0
2003 Teamlogo psfc.png 포항 스틸러스 40 3 15 8 4 0
2004 27 2 10 0 4 0
2005 Teamlogo sifc.png 성남 일화 천마 30 21 3 2 0 0
2006 41 17 19 5 3 0
2007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35 15 9 8 5 0
2008 울산 현대 울산 현대 31 26 5 3 6 0
2009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18 16 1 0 1 0
통산 K리그 439 200 116 43 41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10 ~ 2011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2군 코치
2012 ~ 현재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U-15 감독


선수 생활[편집]

유소년 생활[편집]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선수로, 속초초등학교, 속초중학교, 강릉농공고를 거쳐 아주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유소년 시절부터 스트라키어로 이름을 알렸고, 당시 적극적인 투자를 보이며 신범철, 하석주 등 대학 출신 유망주를 배출하였던 대우그룹의 후원을 받던 아주대학교에 스카웃 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아주대에 입단한 우 선수는 1992년 20세 이하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이민성, 김재영, 하상수 등과 함께 아주대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대학 재학 4학년 무렵에는 다이너스티컵에서 이민성, 박충균 등과 함께 대학 신분 선수로 성인 대표팀에 첫 발탁되기도 하였다.


부산 시절[편집]

아주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지원하던 모그룹의 프로 축구단인 부산 대우 로얄즈K리그 드래프트 1996을 통해 입단하였다. 당시 입단 동기는 아주대에서 활약하였던 김재영, 명진영, 이민성, 하상수, 최월규, 황부철 등의 선수였으며, 우성용 선수는 4순위에 지명되었다.


포항으로 이적[편집]

2003년 1월, 부산 아이콘스와 연봉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자 프로 입단 동기 이민성과 함께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였다. 코난 등과 함께 포항의 주포로 활약하였다.

성남 시절[편집]

2004년 시즌 종료와 함께 성남 일화 천마백영철과 유니폼을 바꿔입게 되었다.



그러나 성남 입단 첫 시즌에 제대로 이전과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김도훈에게 밀려 단 3골에 그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고, 트레이드 되어 포항으로 이적한 백영철 선수도 부여받는 기회보다 못한 활약을 보이며 세간에 실패한 트레이드로 여겨지고 말았다. 그러나 주포 김도훈이 은퇴한 2006년부터 김학범 감독 전술의 중심으로 우뚝 섰고, 관록있는 플레이로 공격진을 진두지휘하며 19득점으로 K리그 득점왕에 오르고 성남의 우승에 핵심 선수로 이바지하는 모습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울산과 인천 시절[편집]

2007년부터 김정남 감독의 부름을 받고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였다.


국가대표 생활[편집]

1995년 다이너스티컵에서 첫 성인 대표 선수로 데뷔하였으나, 이후 쟁쟁한 스트라이커들로 인하여 2003년까지 국가대표의 부름을 받지 못하였다. 이후 2000년대 초반의 계속된 맹활약으로 움베르트 코엘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약 8년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친선경기와 AFC 아시안컵 2차 예선에 출전하였으며, 베트남과 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골을 쏘아 올리고 네팔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차 예선을 끝으로 다시 국가대표팀과 거리가 멀어졌고, 성남 일화 천마를 우승으로 이끈 2006년 이후 울산 현대에서도 컨디션을 무난하게 유지하자 장신 스트라이커를 선호하던 핌 베어백 감독이 재발탁하기도 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장신임에도 유연한 움직임과 탁월한 골 결정력을 보여줘 K리그에서 수준급 기량을 선보인 선수이다. 그러나 적은 움직임과 대표팀에서 부진한 모습으로 팬들의 호불호는 크게 갈리기도 하였다.


지도자 생활[편집]

인천에서 은퇴한 뒤로 2010년부터 인천 유나이티드의 2군 코치를 거쳐 인천의 지정 유소년팀인 광성중학교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에피소드[편집]

  • 우 선수의 현역 시절 별명은 "우공룡"이었다.
  • 2007년 대표팀에 발탁된 시기에 이운재, 이동국, 김상식과 함께 음주 파문을 일으켜 국가대표 1년 자격정지와 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1] 2년 출전 정지의 중징계를 받기도 하였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1996 ~ 1999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대우 로얄즈 K리그
2000 ~ 2002 부산 아이콘스 부산 아이콘스 K리그
2003 ~ 2004 Teamlogo psfc.png 포항 스틸러스 K리그
2005 ~ 2006 Teamlogo sifc.png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2007 ~ 2008 울산 현대 울산 현대 K리그
2009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K리그
선수 생활 은퇴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FA컵이 이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