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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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장원석.jpg
인천 시절 장원석

장원석 (1986년 4월 16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2009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이드 풀백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장원석
  • 출생일 : 1986년 4월 16일
  • 신체 : 179cm / 71kg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9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K리그 16 7 1 0 6 0
2010 10 5 0 0 5 0
2011 24 5 2 3 8 0
2012 1 1 0 0 0 0
Teamlogo sk.png SK 유나이티드 9 2 0 1 1 0
2013 클래식 10 5 0 0 1 0
2014 대전 시티즌 대전 시티즌 챌린지 31 9 1 4 4 1
2017 0 0 0 0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70 25 3 4 21 0
K리그 챌린지 31 9 1 4 4 1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7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서울 도봉중학교, 한양공업고등학교를 거쳐 호남대학교를 졸업한 선수. 한양공고 시절 백록기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수비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호남대 시절인 2007년 소속팀을 전국대학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끈바 있다. 서울 토박이인 그가 광주에 위치한 호남대에서 뛰던 시절에는 적잖이 고생하기도 했다고..


인천 시절[편집]

2009년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지명되어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원래 포지션은 왼쪽 윙백으로서 전재호의 대체자로 기용되었으나 처음에는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그런 불안한 시선을 서서히 바꿔나가는 계기가 있었으니.. 페트코비치 감독 체제 하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던 인천은 창단이래 상대전적 1승밖에 거두지 못했던 수원 삼성과 원정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전재호의 경고누적으로 인해 장원석이 선발로 투입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던 상황이었는데.. 그러한 우려를 잠재우려는듯 장원석은 후반 이준영의 헤딩슛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그 골을 혼전중에서 밀어넣으며 데뷔골을 성공시켰고, 이 골은 그대로 인천의 결승골이 되었다.[1] 수원전에 이어 FC GS전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출장하여 엄청난 활동량을 선보이며 GS의 미드필더들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맹활약을 선보인다. 그러나 단 한순간, 송유걸과 볼처리를 어물어물하게 하다가 이승렬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패배하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장원석에게 비난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정도로 장원석의 이 날 플레이는 엄청났고, 앞으로 대형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해 주었다.[2]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장선수였지만, 2010년 장원석은 시즌 초반 큰 부상을 당해 오랜 시간을 2군에서 재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 페트코비치 감독은 사임하였고, 새로 허정무 감독이 부임하면서 장원석을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왼쪽 윙백으로 기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2011년 인천의 주전 오른쪽 윙백이었던 이준영의 군 입대로 오른쪽 윙백 자리에 공백이 생기자 허정무 감독은 기존에 왼쪽 윙백 주전이었던 전재호를 오른쪽으로 기용하고, 장원석을 왼쪽 윙백으로 기용하는 실험을 택했다.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라, 수원과의 홈경기에서 환상 프리킥 골에, 이어 전남과의 경기에서 이운재를 상대로 40m 장거리 프리킥을 성공시키면서 일약 프리킥 스페셜 리스트로 등극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3]


SK를 거쳐 대전으로[편집]

하지만 2012시즌 초반 무릎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하였고, 결국 전반기 인천에서 1경기 출장에 그친 장원석 선수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SK 유나이티드로 이적이 결정되었다. 이적조건은 남준재 선수와의 1:1 트레이드.



이 트레이드는 인천에게 최고의 트레이드가 되었는데, 남선수는 인천 입단 후 10경기를 나서 5골 1도움의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강등권에서 허덕이던 인천을 순식간에 9위까지 끌어올리는 1등 공신으로 성장했던것. 다행히 남준재 선수의 활약 못지않게 장선수도 SK에서 금세 적응하며 SK 수비의 한축을 담당하며 이 트레이드는 양 팀 모두에 윈윈이 되는듯 했다. 하지만 2013시즌 이용, 오주현 선수에게 밀려 장선수는 SK에서 후보 신세를 면치 못하였고, 결국 2014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으로 임대 이적하고 말았다. 대전 입단 후에는 주전 선수로 맹활약하며 대전의 챌린지리그 선두 수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도맡았으며, 14시즌 대전의 K리그 클래식 승격에도 공헌하며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치었다. 장 선수는 시즌 종료와 함께 사회복무로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중이며, K3리그포천 시민축구단에 입단하여 활동하였으며, 공·수 전반에 큰 활약을 보이며 중추적인 역할을 선보였다.



소집해제가 다가오는 2017년 2월로 SK 유나이티드로 복귀해 활동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2016년 12월 사회복무를 시작하기 전, 활약한 바 있는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대전 이동수 선수와 트레이드 되는 방식이며 소집해제와 동시에 대전에 입단하는 것에 합의하였다고 한다.

대전 코레일 입단[편집]

2019년 시즌을 앞두고 대전 코레일에 입단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인천 시절에는 왼쪽 측면 수비를 맡기기엔 수비가 불안하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놓자니 전진 패스가 아쉽다며 일부 인천팬들에게 혹평을 받은바 있다. 그러나 대전에서는 팀 전술에 맞춰 전진 압박으로 인한 커팅능력이 좋아졌고, 역습전개시 그의 오버래핑은 가히 위협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왼발 프리킥과 크로스를 겸비하고 있다. 특히 왼발 프리킥의 정확도에 있어서는 K리그에서도 수준급이라고 평가받는다.


에피소드[편집]

  • 빨간색 축구화를 애용하기 때문에 유독 눈에 띈다. 특히 수비 실수시에는 워낙 도드라지기 때문에, 데뷔시즌 당시 저 빨간 운동화 신은 선수 좀 안쓰면 안되냐? 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인천의 핵심 자원 중 한명으로 성장했다.
  • 저 빨간 운동화 덕분에 '빨간발' 장원석이라고 불린다. 모 게임의 주인공 라이벌이 생각나는..
  • 꽤 잘생겼다. 나름 리그에서도 수준급 미남으로 꼽히기도 한다. 인천이 선수 뽑을때 외모 면접 본다는 소리가 들린다
  • 군 복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팀을 찾지 못해 고생하였는데, 강준우 선수의 도움으로 포천 시민축구단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고 하며, 강 선수 역시 사회복무 판정을 받고 포천 시민축구단에서 축구 선수 활동을 병행한 이력이 있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09.01 ~ 2012.07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K리그
2012.07 ~ 2017.02 Teamlogo sk.png SK 유나이티드 K리그 클래식
→ 2014 대전 시티즌 대전 시티즌 K리그 챌린지 임대
→ 2015.02 ~ 2017.02 대한민국 포천 시민축구단 K3리그 사회복무
2017.02 ~ 2018.12 대전 시티즌 대전 시티즌 K리그2
2019.01 ~ 대한민국 대전 코레일 내셔널리그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인천이 2-1로 승리한것.
  2. 참고로, 인천이 이런식으로 경기력은 압도해놓고 골을 못넣어서 어이없이 진 경기가 2009년에 유독 많았다. 괜히 인천 지지자들이 당시 인천을 가지고 잉천이라고 부르는게 아니다.
  3. 이 프리킥은 KBS 스포츠뉴스가 선정한 2011시즌 K리그 최고의 프리킥골로 뽑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