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일화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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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일화 천마
250px
기본정보
정식명칭 천안 일화 천마 축구단
이전이름 일화 천마
클럽색          
주황색, 남색
홈경기장 천안오룡경기장
운영
홈페이지
현재시즌

천안 일화 천마 축구단은 (주)일화가 충청남도 천안시를 연고로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운영한 축구단이다. 2000년 (주)일화가 천안 일화를 버리고, 경기도 성남시로 연고이전을 강행함에 따라 현재는 사라진 구단이다. 풋케위키는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천안 일화 천마는 각각 별개의 문서로 다루며, 해당 문서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천안 일화 천마가 세운 기록 및 관련 사항에 대해 기록한다.


역사[편집]

역대 시즌 기록[편집]

시즌 리그 팀수 K리그 FA컵 리그컵 아챔 감독
경기 승점 순위
천안 일화 천마
1996 K리그 9 32 8 8 16 52 63 -11 32 8위 5위 우승[1] 이장수
1997 K리그 10 18 2 7 9 19 31 -12 13 8위 준우승 4위 (아디다스)
4위 (프로스펙스)
준우승 레네
1998 K리그 10 18 5 0 13 17 32 -15 11 10위 8강 5위(아디다스B조)
5위 (필립모리스)
레네
차경복
1999 K리그 10 27 10 0 17 34 44 -10 23 10위 우승 8강(아디다스)
4강(대한화재)
차경복


우승 기록[편집]

대회 명칭 우승 연도
대한민국 FA컵 1997(준우승)
1999
AFC 챔피언스리그 1997 (준우승)


감독 기록[편집]

순서 재임 기간 성명 승/무/패 특이 사항
초대 1996년 이장수 11승 10무 19패
2대 1997년 ~ 1998년 9월 레네 14승 18무 30패 일화 천마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국인 감독
3대 1998년 10월 ~ 1999년 차경복 14승 8무 23패 1999년 FA컵 우승


출신 선수[편집]

천안 일화 천마 출신의 선수들의 목록은 분류:천안 일화 천마의 선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논란[편집]

천안 일화 천마의 연고이전에 대해 두가지 의견이 존재하므로, 본 위키에서는 두 입장을 모두 균형 서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아 이하 두 입장을 병기하겠다.


천안 -> 성남 연고 이전 사태에 대한 비판[편집]

흔히, FC GSSK 유나이티드의 연고이전은 지탄의 대상이면서, 일화 천마 축구단의 연고이전에 대한 행위는 침묵하는데 대해 GS와 SK를 응원하는 무리들의 반발이 심한편이다. 이에 대해 사커월드를 필두로 한, 연고이전 비판자들은 오룡 경기장 시설의 노후화 (특히 조명탑이 없어, 야간 경기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위시해서), 천안 지역 기독교인들의 반발과 천안시의 비협조, 천안 일화 천마의 인기도가 매우 약해 연고이전 당시 훗날 안양과 부천의 경우, 시위까지 나섰던것에 비해서 반발도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등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하나 반박이 가능한데,


첫째, 천안 오룡 경기장 시설 노후화 문제는 천안시측이 십분 수용하여 오룡 경기장을 대체할 천안 종합운동장을 1998년 이미 기공한 상태였고 2001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있었다. 즉, 1년만 참으면(?) 시설 노후화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이유로 연고이전을 한 것은 정당성이 약하다.

둘째, 천안 지역 기독교인들의 반발과 천안시의 비협조 등의 논거도, 천안을 버리고 간곳인 성남에서 벌어지는 기독교인들의 반발과 성남시의 비협조가 천안의 경우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약하진 않다는 점에서 역시 타당성이 떨어진다. 천안시는 오히려 천안 일화 천마측에 여타 지역이 축구를 대하는 태도와 달리 상당히 협조적이었다는 의견도 많다. (천안 운동장 기공이나 전용 연습장 약속등이 실제로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예산편성도 마친 상태였다. 실제로 천안 종합운동장은 2001년 7월 완공된다.)

마지막으로', 천안 일화의 인기도가 낮아서 연고이전 당시 별 반발도 없었다는 논리는 전형적인 공리주의적 사고로, 당시 천안 일화 천마를 응원했던 서포터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고, 이들이 최대한 폭력을 자제하면서 항의를 지속적으로 전개해온 사실이 분명 존재함에도 이들의 존재와 기억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라고 밖에 할말이 없다. 이분들은 분명히 존재했고, 이분들에게 일화는 마치 안양 시민들에게 GS 스포츠가 부천 시민에게 SK가 안긴 것과 같은 배신감과 상처를 안겼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 무시되고 남은건 '당시 천안 일화 응원하는 사람도 없었고, 시설도 낡았다더라. 따라서 안양 . 부천건과는 다르다.' 라고 떠도는 얘기뿐이다. 이처럼 천안 일화 천마의 해체는 응원했던 이들도 소수고 내가 K리그 보기 이전 일이니 이들은 배제되어도 상관없고, 안양 - 부천 시민은 다수고 결정적으로 2002년 월드컵 팬덤과 함께 급증한 K리그 팬들이 두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또 전승되고 있으니, 이는 패륜 행위다. 라고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은 풋케위키의 중요한 목적인 한국 축구 역사의 기록과 추억의 공유를 통한 팬들간의 연계 강화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적어도 서울 연고지들이 없어지고 도시연고 설정프로축구팀 서포터의 등장 을 계기로, 연고의식은 맹아가 텄었다고 상정하고, 이 시기 이후에 벌어진 연고이전 행위는 모두 정당히 비판되어야하는게 맞다고 본다.

천안 -> 성남 연고이전이 이후 2004년, 2006년의 연고이전과 다른점[편집]

첫째, 천안오룡경기장 시설 노후화 문제 해결을 위해 1998년 천안종합운동장이 기공한 상태였으나, 당시 천안 일화 천마 입장에서는 당장 경기를 할 곳이 필요했다. 여기에 1998년 10월, 성남시에서 이미 성남모란운동장을 천연 잔디로 교체, 정규 경기가 곧바로 가능한 상태에서 일화 천마 축구단의 입장을 기다렸기 때문에 일화측으로서는 천안종합운동장을 기다리는 것보다 성남모란운동장을 쓰는게 유리했다. 또한 당시 성남 뿐 아니라 여러 지자체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바로 프로축구팀을 유치하려고 하고 있었기때문에, 천안시의 대응이 적극적이거나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애초에 일화 축구단은 천안을 홈으로 할 의지가 없었다. 1996년 4월 7일 첫 홈 경기 이후 10월까지 홈 경기를 한 번도 가지지 않았다. 첫 시즌에는 홈 경기를 제대로 펼치지 않았으며, 두 번째 시즌에는 홈 경기 일정을 제대로 잡아서 진행하였으나 기존에 비해 선수 투자 규모도 줄었다.

특히 1998년 성남시를 비롯한 다른 지자체의 접촉 이후인 1999 K-리그 시즌부터 굉장히 냉랭한 태도를 취했다. 정규리그 홈 경기 중 4경기 만을 천안에서 가졌으며 이 경기는 모두 수요일 오후 경기였다. 나머지 홈 경기는 기존의 홈 구장이었던 동대문 운동장, 제천 종합 운동장, 강릉 종합 운동장 등을 유랑하며 경기를 가졌다. 타지역에서 경기를 할 경우, 전광판에 팀 명으로 지역 명을 표기하지 않고 '일화'로 표기하며 천안에 연을 두지 않을 것임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셋째, 성남시의 비협조와 성남시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예상하고 이동한 것은 아니다. 자체적으로 통일교의 색깔을 없앤 상태에서 천안 지역 기독교인들의 반발은 비교적 드러나지 않게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인 필요) 천안시는 물론 기존에 천안 일화 천마에게 약속한 부분을 장기적으로 이행하고 있었지만, 성남시는 시장까지 나서서 직접 박규남 단장을 접촉하고 이미 1998년이 지나기 전에 성남 모란 운동장의 잔디를 교체하면서 향후 좋은 지원을 약속했다.

넷째, 성남 일화 천마는 성남으로 이전 후, 천안 시절과는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성남에서 지역 연고를 잡을 것을 확실히 하며 지금까지 활동해 왔다. 2004년 한 언론사가 K리그 팀들의 서울 월드컵 경기장 연고 이전에 대한 조사를 벌였을 때에도 성남 일화 천마는 "성남에서 어렵게 뿌리를 내린 만큼 앞으로도 성남을 떠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실제 1995~1996 시즌의 우승은 1995년 12월 29일에 결정되었다. 즉 일화 천마가 세운 기록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