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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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1977년 1월 13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미드필더이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김도균
  • 출생일 : 1977년 1월 13일
  • 신체 : 184cm / 80kg
  • 국가대표 경력
1997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본선 대표
1999년 ~ 2000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10경기 출장)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울산 현대 호랑이 1999 11 6 0 0 1 0
2000 14 2 1 1 1 0
2001 27 9 1 1 1 0
2002 18 4 1 3 1 0
2003 34 11 0 2 4 0
성남 일화 천마 2005 7 3 0 0 1 0
전남 드래곤즈 2005 10 1 0 0 1 0
2006 7 5 0 0 3 0
통산 (K리그) - 128 41 3 7 13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시즌 종료시점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07년 ~ 2009년 서남대학교 코치
2009년 ~ 2013년 울산 현대 U-15 감독
2014년 울산 현대 코치


유소년 생활[편집]

경북 영덕에 위치한 강구중학교, 안동에 위치한 안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울산 현대 호랑이와 협약관계인 울산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울산대 시절부터 플레이메이커로 다방면에 능한 플레이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던 김선수는 1996년 AFC U-19 챔피언십과 1997년 FIFA U-20 월드컵에 청소년대표팀 주장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후 중원에서 커버와 패스 플레이가 모두 가능한 다재다능한 유망주로 급부상한 김선수는 일찌감치 울산 현대와 프로 계약을 맺는데 성공하였다.


프로 생활[편집]

1999년 드래프트에서 4순위로 지명되어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한 김도균은, 데뷔 시즌부터 시드니 올림픽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소속팀 출장 수보다 대표팀 출장 횟수가 더 많았을 정도.[1]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소속팀의 성적 부진과 부상 등 다양한 요인이 겹치며, 김선수와 대표팀의 인연은 멀어져갔다. 하지만 소속팀에서는 안정적인 출장을 기록하며 프로 무대에 안착하는듯 했는데.. 2003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은 김선수는 2004년을 앞두고 J리그 팀인 교토 퍼블상가에 1년 계약 연봉 5천만엔의 조건으로 이적하였다.[2] 하지만 교토에서 또다시 부상이 도지며 후반기에 별다른 모습으 보여주지 못한 김도균은, 2005시즌을 앞두고 성남 일화 천마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었던 김도균을 김학범 당시 성남 감독은 중용하지 않았고, 결국 2005년 6월 김도균은 손대호와 1:1 트레이드 되어 전남 드래곤즈 유니폼을 입게 된다.


  • 김도균 (성남 일화 천마) ↔ 손대호 (전남 드래곤즈)


전남 입단 당시만 해도 시드니 올림픽대표 시절 사제의 연을 맺었던 허정무 감독과 김도균 선수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팬들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일장춘몽에 그치고 말았다. 2006년 또다시 부상이 도지며 전남에서 제대로 된 활동을 보여주지 못한 것. 결국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김도균은 2006시즌 종료 후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말았다.


지도자 생활[편집]

은퇴 후, 서남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활동하다 2009년 울산 현대 U-15 팀인 현대중학교 감독으로 부임한 김도균 씨는 2010년 춘계 및 추계중등축구연맹전 지도자상을 싹쓸이하며 대외적으로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며 이후 2014년 울산 현대 코치로 부임하며 오랜만에 울산팬들에게 근황을 알렸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에피소드[편집]

청소년대표팀 시절부터 꽃미남 축구선수로 이름이 높았다. 시드니 올림픽대표팀 시절에는 아예 대표팀의 얼굴마담까지 맡았을 정도.[3] 여기에 축구까지 잘했던터라 2000년과 2001년 김도균 선수의 인기는 K리그에서 최상위를 달렸다. 특히 2001년 K리그 올스타전 선정 투표 때는 이동국보다 더 많은 득표 수를 기록하기도 했을 정도.. 그러나 2013년 12월, 울산 현대 코치로 부임하며 오랜만에 근황을 알린 김도균 코치의 모습에 K리그팬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하더라.. 역시 세월의 야속함이란.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올림픽대표팀에서만 31경기를 뛰었으며, 같은 시기 A매치도 10경기나 소화하였다. 소속팀에서 2년 동안 25경기 남짓 뛴 것과 대조적. 이 때의 활약상 덕분에 1999년 AFC가 선정한 아시아 올해의 베스트 11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2. 당시 교토 퍼블상가는 최용수, 임유환이 활약하고 있는 팀으로 한국축구팬들에게도 친숙한 팀이었다.
  3. 어지간한 대표팀 소개 화보에는 으레 김도균 선수의 전신사진이 찍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