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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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김용희 (1978년 10월 15일 ~)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 선수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수비수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김용희
  • 출생일 : 1978년 10월 15일
  • 신체 : 176cm / 74kg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프로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성남 일화 천마 2001 27 1 1 0 4 0
2002 18 8 0 1 3 0
2003 2 1 0 0 0 0
부산 아이파크 2004 31 3 0 1 9 0
광주 상무 2005 34 6 1 0 5 0
2006 32 11 3 2 2 0
부산 아이파크 2007 6 3 0 0 1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8 1 0 0 0 0 0
강릉시청 축구단 2009 13 2 1 2 2 0
인천코레일 축구단 2009 10 4 0 0 1 0
통산(K리그) - 151 33 5 4 24 0
통산(내셔널리그) - 23 6 1 2 3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1년 10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강릉중학교와 강릉상고를 거쳐 중앙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성남, 부산 생활[편집]

2001년 드래프트를 통해 2순위로 성남 일화 천마에 입단하였다. 입단 후 가이모토의 부상을 틈타 오른쪽 수비수로 출장 기회를 잡았고 당시 최강의 수비력을 자랑하고 있는 성남의 포백 중 한 축을 구성하였다. 덕분에 신인 시절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도 선정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후 2003년까지 성남 일화에서 뛰며 성남의 3회 연속 K리그 우승에 한 몫을 담당했을 정도. 그야말로 거칠게 없었던 상승세를 타며 활약했다. 하지만 2003년, 이기형, 박충균 등이 성남에 영입되면서 김선수는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 거의 출장하지 못하며 위기를 맞이한다.[1] 그리하여 2004년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게된다. 당시 부산이 김용희 영입에 지불한 금액은 이적료 3억원, 연봉 1억 3천만원에 3년 계약으로 꽤 호조건이었다. 이렇게 2004년 부산에 입단한 김용희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당시 이안 포터필드의 극단적인 수비 전술은 김용희 선수의 오버래핑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만들었고,[2] 이에 불만을 품은 김용희 선수는 2004 시즌 종료 후, 광주 상무에 입대하였으며 광주 시절에는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대 후인 2007년 부산으로 다시 복귀하였으나, 김용희 선수는 광주 시절 기량이 온데간데 없었고 여기에 2007년 이안 포터필드의 급작스런 사임과 박성화의 야반도주 사건등 부산 선수단 분위기가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김선수도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2008년 마침 측면 수비수를 찾고있던 전북 현대 모터스에 1:2 트레이드 형식으로 이적하게 된다.[3]



전북 현대 시절과 그 이후[편집]

전북 이적 후 부상 및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며 1경기 출장에 그쳤고, 오랜만에 복귀한 성남과의 2군 경기에서 장렬히 퇴장을 당한 후 임의탈퇴 되었다. 임의탈퇴 사유는 훈련 불성실이었다고.. 결국 K리그 생활을 정리한 후 내셔널리그로 눈을 돌려 2009년 전반기 강릉시청 축구단, 후반기 인천코레일에서 에이스급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2010년 돌연 인도네시아 수퍼 리그 팀인 Persiba Balikpapan 로 이적하였으며, 여기서의 활동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왕성한 활동량과 거친 몸싸움이 특기인 터프한 수비수였다. 광주 상무 시절에는 지능적인 오버래핑으로 곧잘 공격 포인트도 기록했던 선수. 재능에 비해 성장을 못했던 선수로 기억될듯 하다.


에피소드[편집]

  • 2001년 5월 5일, 프로 데뷔전을 치룬 김용희는 주전 도약과 동시에 삭발을 감행했다.[4] 덕분에 경기 시 다른 선수들에 비하여 유난히 튀는 머리를 자랑한다. '빡빡이'로 통하며 올스타전에 가발을 쓰고나와 팬들을 충격에 빠트리기도 -_-;;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2003시즌 김용희의 무출장을 두고 차경복 감독에게 찍혔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2. 당시 이안 감독의 수비 전술은 오버래핑이 절대 금지된 플랫 4에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둔 벙커 수비였다. 감독의 수비 지향이 어느 정도였냐면 훈련 도중 사이드 풀백이 하프라인 근처에만 올라가도 성질을 버럭냈고, 풀백들이 볼을 잡자마자 뻥차서 길게 걷어내면 박수를 쳤다 -_-;;
  3. 결과적으로 부산은 수억을 들여서 삽질 제대로한 셈. 다만 김용희가 나가면서 최광희를 얻게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4. 당시 김용희를 비롯 정재권, 박태하, 전경준, 김현석, 이상헌 등이 삭발을 하는 등 팀 성적 내지 개인 성적이 부진하면 삭발하는게 유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