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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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절 김재영

김재영(1979년 1월 28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 선수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했던 미드필더다.

원 등록명은 '김재영' 이었지만 전북 이적 후에는 등록명으로 김재형을 사용하였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김재형
  • 출생일 : 1973년 9월 2일
  • 신체 : 187cm / 74kg
  • 국가대표 경력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 선발
2000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선발
(통산 A매치 1경기 출장)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프로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대우 로얄즈 1996 32 8 6 2 5 0
1997 24 10 0 1 8 0
1998 7 5 0 0 2 0
1999 31 17 0 2 1 0
부산 아이콘스 부산 아이콘스 2000 19 12 0 1 1 1
2001 32 19 1 2 3 0
2002 16 9 0 0 3 0
부산 아이콘스 부산 아이콘스 2003 0 0 0 0 0 0
2004 18 13 2 0 3 1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 2005 21 6 1 0 3 1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2006 14 7 0 1 1 0
2007 15 14 0 0 0 0
통산 (K리그) - 229 120 10 9 30 3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1년 10월 15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08 ~ 2010 아주대학교 축구부 코치
2012 ~ 2013 용인시청 축구단 수석코치
2014 ~ 2015 숭실고등학교 축구부 코치
2016.7 ~ 현재 포천시민축구단 감독


유소년 생활[편집]

서울 문일중과 문일고등학교를 거쳐 아주대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였다. 이 무렵, 아주대 축구부는 대우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기에 부산 대우 로얄즈는 드래프트 순번 내 지명자 전원을 아주대학교 선수로 구성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때문에 아주대 시절부터 올림픽대표팀에 부름을 받았던 김재영 선수의 부산행 + 고순위 지명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프로 생활[편집]

결국 예상대로, 1996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부산 대우 로얄즈에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프로에 입단한 김선수를, 이차만 당시 부산 감독은 장신에 발재간이 좋은 점에 착안해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실험을 감행했고,[1] 그 결과 데뷔 시즌 6골 2도움을 몰아치며 박건하 등과 함께 신인왕 후보에까지 오르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잦은 포지션 변경과 발목 부상이 겹치면서, 96시즌 활약 이후 한동안 자리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다, 1999년 후반기부터 수비형 미드필더 보직에 안착하였고, 이후 부산에서만 10년을 뛰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때 거스 히딩크 눈에 들어,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었을 정도. 하지만 2002시즌 중 당한 큰 부상으로 2003시즌까지 통째로 날리는 불운을 겪기도 했지만 이내 복귀, 변함없는 활약을 선보이며 부산의 2004년 FA컵 우승과 2005년 전반기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2005시즌 후반기, 부산은 무승 행진을 이어가며 최악의 부진을 겪었고, 이 난관을 헤쳐 나기위해 이안 포터필드 당시 부산 감독은 대대적인 리빌딩을 선언, 김재영 선수를 비롯한 부산 내 노장 선수들을 대거 방출시킬 구상을 하게 된다. 이를 감지한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전북 현대 모터스에 노련한 선수를 보강하고자, 김재영 선수에게 러브콜을 보냈는데.. 양자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김재영은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부산 입단 10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2006년 4개 대회를 병행하느라 유난히 경기수가 많았던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무난한 활약을 펼치며, 2007년까지 활동하다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지도자 생활[편집]

은퇴 이듬해인 2008년부터 모교인 아주대학교 코치를 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김재형 씨는, 용인시청 축구단 수석 코치ㆍ숭실고등학교 코치를 거쳐, 2016년 7월 5일 김학철 감독에 뒤를 이어 포천 시민축구단 감독에 선임되며, 처음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적절한 커팅 능력과 정확한 패스를 보여주는 선수였다. 소속팀 팬들에게는 장신의 미드필더로 깊은 인상을 남겼으나, 대표팀에는 발탁되기만 하면 부상을 입어 대표팀 커리어는 빈약한 편이다. 여러모로 이강진 선수의 선배격(?)이라 할만한 선수.


에피소드[편집]

  • 전북 이적 후 등록명을 김재영에서 김재형으로 변경하였는데, 이 무렵 호적상 한글 이름(김재형)과 한자 이름(김재영)이 달랐던 것을 바로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부산 팬들에게는 자기 본 이름이 아니라 김재영으로 불려도 좋다고 말하며, 부산에 대한 여전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 당시 김재영 선수의 전북 이적은 포터필드 부산 감독의 강한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2005시즌 전기리그를 우승하고도 후기리그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며 추락한 부산의 문제 원인을 노장 선수들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데에서 찾은 포터필드 감독은, 김재영 선수를 포함해 윤희준, 박충균 등 팀내 노장 선수들을 모조리 내보내는 강수를 뒀다.[2] 당연히 팀내 구심점을 잃은 부산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 2006년 시즌 도중 포터필드 감독은 결국 지휘봉을 놓게된다.
  • 다만 김재영 선수에게도 흑역사가 있는데.. 2000년 6월 17일 對 안양 LG 치타스와의 경기에서 후반 42분 강준호 선수에게 태클을 가해 퇴장을 당한 후, 경기가 끝나자 그라운드에 들어와 강준호 선수에게 발길질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K리그 연맹은 상벌위원회를 개최, 스포츠맨십을 어긴 김재영 선수에게 벌금 80만원과 2경기 출장 정지를 명했던바 있다.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사실 이건 이차만 감독의 주특기(?)였다. 장신에 젊은 수비수들을 스트라이커로 올리기가 예사였고, 결국 이런 전략은 대우의 수비 전술의 약화를 가져와 많은 득점 못지않게 많은 실점을 가져왔다.
  2. 이 때 이정효, 이장관 까지 내보내려고 했었는데 코칭 스탭진이 간신히 말렸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