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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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국가대표 발탁 당시
김호

김호 (1944년 11월 24일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64년부터 1979년까지 실업축구에서 활동하였던 중앙 수비수이다. 선수 생활 정리 후에는 1977년부터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며, 박종환김정남 등과 더불어 198ㆍ90년대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이름을 알렸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김호
  • 출생일 : 1944년 11월 24일
  • 신체 : 177cm / 67kg
  • 국가대표 경력
1966년 메르데카컵 대표
1967년 AFC 아시안컵 예선 대표
1967년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지역예선 대표
1969년 1970년 멕시코 월드컵 1차예선 대표
1969년 킹스컵 대표
1970년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71년 박대통령컵쟁탈아시아축구대회 대표
1971년 1972년 뮌헨 올림픽 지역예선 대표
1972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72년 제1회 한·일 정기전 대표
1972년 박대통령컵쟁탈아시아축구대회 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77경기 출전)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감독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ACL
1984 한일은행 축구단 한일은행 축구단 수퍼리그 5 11 12 - - - -
1985 3 10 8 - - - -
1986 4 4 12 - - - -
1988 현대 호랑이 현대 호랑이 K리그 10 5 9 - - - -
1989 7 15 18 - - - -
1990 6 14 10 - - - -
1996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21 11 8 - - - -
1997 14 13 9 - - - -
1998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18 7 12 - - - -
1999 31 4 8 - - - -
2000 15 11 12 - - - -
2001 19 6 13 - - - -
2002 16 10 10 - - - -
2003 19 15 10 - - - -
2007 대전 시티즌 대전 시티즌 8 0 6 - - - -
2008 7 14 15 - - - -
2009 4 4 8 중도 사임
통산 K리그 207 154 180
승/무/패는 리그(K클+K챌)에서 거둔 것만, 리그 외 대회는 최종 성적만 기록한다.
연맹 공식 DB


  • 주요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
1977년 ~ 1981년 대한민국 동래고등학교 감독
1979년 대한민국 대한민국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1983년 ~ 1987년 한일은행 축구단 한일은행 축구단 감독
1988년 ~ 1991년 현대 호랑이 현대 호랑이
1992년 ~ 1994년 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95년 ~ 2003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4년 ~ 2006년 대한민국 숭실대학교 총감독
2007년 ~ 2009년 대전 시티즌 대전 시티즌 감독
2015년 ~ 현재 대한민국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


선수 생활[편집]

유소년 생활[편집]

1944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축구 선수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선수 시절, 통영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지역 명문 축구부로 유명한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고교 시절부터 기량이 일취월장하여, 수비수임에도 빠른 발을 지녔기에 전도유망한 선수로 이름을 알렸다고 한다.


실업축구 선수로[편집]

그러나 고교 졸업 후에 실업팀을 알아보며 입단을 조율했으나, 끝내 불러주는 팀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제일모직 축구단에 입단에 성공하였으며, 군 복무를 해병대 축구단에서 보내다가 1967년 2월 창단한 양지 축구단에서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부터 김정남 씨와 함께 국가대표팀 주전 수비수로 성장하였다. 이후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상업은행 축구단에서 활동하였으며, 1975년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선수 말년을 보낸 뒤 1977년 최종 현역에서 은퇴하였다고 한다.


국가대표 생활[편집]

동래고에서 활약으로 청소년 대표팀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청소년 대표팀에는 발탁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후 실업 축구계에서의 활약에 이어 해병대 축구단양지 축구단에서 활동하며 대표팀에 붙박이로 발탁되기에 이르렀으며 최종적으로 A매치만 총 77경기에 출전하며 196/70년대 국가대표 붙박이 수비수로 활약하였다. 국가대표에서는 주로 중앙 수비나 우측 측면 수비로 나섰으며, 빠른 발에 침착성, 그리고 판단력이 좋은 수비수로 당시 현대 축구에 가장 적합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100미터를 12초에 주파하며 수비수치고 준족을 자랑하는 선수였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빠른 발을 지닌 상대를 놓치는 법이 없을 정도라 60년대 후반 언론사에서는 국가대표팀 수비 제1인자라는 찬사까지 받은 바 있다. 또한, 상당히 침착한 수비 스타일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수비수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지닌 선수로 불리기도. 게다가 프로 의식도 충실하고 경기가 없을 때에도 축구에 대해 계속 연구하는 스타일이라 언론에서도 많은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지도자 생활[편집]

한일은행ㆍ현대 시절[편집]

1972년부터 상업은행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선수 겸 지도자 생활을 걷고 있던 김호는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지도자로서의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모교인 동래고등학교를 시작으로 1983년에는 한일은행 축구단 감독으로 부임하여 1987년까지 활동하였다. 1988년에는 조중연 감독의 후힘으로 프로팀 현대 호랑이의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프로 감독으로 첫 시작을 알렸다.


국가대표팀 감독[편집]

1994년 FIFA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제1대 감독[편집]

1995년, 신생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대전 시티즌에서[편집]

한동안 프로팀과 거리를 두고 숭실대학교 축구부 총감독 생활을 하던 김호는, 2007년 7월 13일로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63세의 나이로 현역 감독직에 복귀하였다. 당시 대전은 최윤겸 감독이 이영익 씨와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해임된 직후라 어수선한 상태였고, 이를 수습할 적임자로 노련한 김호 감독이 낙점된 것이었다. 이렇게 일선으로 복귀한 김호 감독은 팀을 재빨리 수습하고 슈바, 데닐손, 브라질리아 삼각 편대를 앞세워 대전을 삼성 하우젠 K-리그 2007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 등 녹슬지 않은 지도력을 과시하였다. 하지만 대전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던 선수나 공들여 키우고 있었던 유망주를 내치고 과거 자신이 키워온 제자를 데려와 중용하였고[1] 없는 살림에 신인 선수들을 대거 지명해 돈을 헤프게 쓴다[2] 는 등 대전팬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하였다. 게다가 위의 브라질 삼각편대가 타 팀으로 이적한 뒤 치러진 2008시즌, 성적이 곤두박질치면서 6강 플레이오프도 외국인 선수 덕분이란 비판 여론이 일었으며, 2009시즌에는 대전 구단과의 갈등의 골마저 깊어지고 성적도 뒷받침되지 못하자 급기야 자진 사퇴를 권고받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에 김호 감독은 법적 대응까지 시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결국에는 대전 감독직을 사임하였다.[3]


그 이후[편집]

이후 야인으로 지내고 있으며, 유소년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2015년 6월부터 용인시축구센터의 총감독으로 부임하였다고 한다.


에피소드[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고창현, 권집, 조재민, 고종수 등.. 이 중 고창현 정도를 제외하면 기존 멤버들에 비해 특출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훗날 승부조작자로 전락한 권집도 끼어있어 대전 감독 시절 김호의 평가을 깍아먹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2. 2008년 드래프트에서 14명, 2009년 드래프트에서 16명의 신인을 지명하며 타팀에 비해 2~4배 정도 더 뽑았다. 하지만 투자 대비 성과는 빈한해 김성준 선수 정도 제외하면 성공작이 없다.. 여기에 승부조작자도 다수 나온건 덤. 물론 훗날 이들의 조작범 전락은 개개 선수들의 인성 문제이지 이들을 뽑은 김호 감독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3. 대전 시티즌, 김호 감독 해임… 후폭풍 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