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토
마토 네레틀랴크(Mato Neretljak, 1979년 6월 3일 ~ )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계 크로아티아 선수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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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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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경력[편집]
K리그 입단 이전[편집]
2000년부터 NK 오시예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2002년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로 이적하여 3시즌 동안 활약하였다. 유로 2004 당시 크로아티아 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자국 내에서 탄탄한 입지도가 있는 선수였다.
수원 입단 이후[편집]
2005년 K리그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입단하였다. 당시 수원은 2004년 K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무사를 내보내고 그 대타로 마토를 데려왔는데.. 마토가 과연 제 몫을 해줄지 의구심을 갖는 시선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2005년 푸마 스투 베스트 11 선정에 이어, 2006년, 2007년, 2008년 3시즌 연속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K리그 최정상급 외국인 수비수로 발돋움 하였으며, 2007년에는 '공격수가 뽑은 수비수상'을 수상하기도 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수원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2005년은 이따마르, 산드로C 등 수원의 공격진들이 사이좋게 부진하는 사이, 수비수임에도 리그와 컵대회에서 각각 5골씩, 총 10골을 집어넣으며 수원의 희망이 되었다. 2005시즌 수원의 팀내 득점 1위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이후 2007년 11월, 마토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3년 재계약에 합의하며 수원에 잔류하였고, 2008년 K리그와 K리그 컵대회 석권에 큰 공헌을 한 뒤 유럽 무대로의 복귀의 의사를 내비쳤다.[1] 결국 수원측은 마토 선수의 이적을 허락했는데, 가라는 유럽은 안가고 엉뚱하게도 2009년 장외룡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일본 J리그의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해 수원팬들에게 미움을 사는듯 했다.
하지만 일본 무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2년동안 맴돌다가, 2010년 11월 25일 오미야와의 계약 기간이 만료된 뒤 동년 12월 10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복귀하였다. 마토는 복귀 이후인 2011년 3월 12일, 광주 FC와의 홈 개막전에서는 0-1로 끌려가던 후반 30분,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뽑아내었고, 이어 5분 후 패널티킥으로 추가골을 넣으며 2-1 역전 승리를 이끌었다. 마토의 활약에 그의 과거사에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던 수원팬들도 역시 마토를 외치기 시작했고, 2011시즌에도 2005시즌을 재탕하듯 팀의 주 득점원(?)으로 활약하며 수원의 하락세를 그나마 막아내었다는 평을 들었다. 2011년 4월 10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외국인 선수로서는 드물게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하기도 하였다.[2] 다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마토 선수의 고질적인 약점인 느린 발과 수비에서의 안정감 저하가 문제시되었으며, 결국 2011시즌 종료 후 수원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모국으로 돌아갔다.[3]
수원을 떠난 이후[편집]
2012년부터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다시 활약한다.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반년정도 활약하고 현재 같은 크로아티아리그인 HNK Rejika로 2년계약으로 이적하여 활약하게 될 예정이다. NHK Rejika에서 25경기에 출전하며 주전급으로 활약하였고 그 후, 같은 리그의 NK Zadar로 임대되어서 24경기를 출전한 마토는 Prva HNL리그의 종료와 함께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하였다.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1년 4월 25일 바라주딘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친선경기에서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어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였다. 그 뒤 2년간 국가대표팀과는 인연이 없다가, 2003년 11월 15일 자그레브에서 열린 유로 2004 예선에서 슬로베니아와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두 번째로 출전하였고, 그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에서는 처음으로 90분 풀타임을 소화하였다. 그는 2004년 2월 18일 스플리트에서 열린 독일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첫 득점을 올렸다. 그때 상대 골키퍼는 올리버 칸. 유로 2004에서는 오토 바리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본선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하였다. 2006년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에 선발되어, 독일 월드컵을 앞둔 대한민국과 경기를 갖기도 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191cm의 장신에 당당한 체구를 자랑하며, 빠른 스피드까지 지니고 있어 공중 볼 쟁탈은 물론 공격수 제지 능력까지도 탁월한 면을 보여 '통곡의 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정확함과 파괴력을 모두 갖춘 왼발 킥으로 인하여 팀의 페널티킥과 장거리 프리킥을 전담하며,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신체조건과 높은 도약을 이용한 헤딩으로 적잖은 득점을 뽑아내는 등 공격적인 면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수상[편집]
클럽[편집]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개인[편집]
경력[편집]
- 2005 ~ 2008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K리그
- 2011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K리그
그 외[편집]
- 마토는 다수의 크로아티아 대표팀 선수들과 개인적 친분을 갖고 있으며, 특히 다리오 시미치와 가장 절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프로배구 KEPCO45의 안젤코 추크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 2005년 K리그 전북 원정에서 코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헤딩 동점골을 뽑아내는 투혼을 보여주었고, 이후 경기에서는 안면 보호용 마스크를 쓰고 출전을 강행하는 투혼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 2011년 5월 생명사랑문화운동본부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 선수생활 은퇴 후, 마토는 2014년 8월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클럽하우스에 머물면서 지도자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2014년 8월 3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 하프타임에 나와서 오랜만에 팬들과 인사를 나눴다.[4]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조[편집]
- ↑ 마토는 국가대표 복귀를 희망했지만, 머나먼 동아시아 축구계에서 활동 중이었던 지라 크로아티 국가대표 발탁설만 꾸준히 나올 뿐, 성사가 안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 ↑ 다만 당시 성남 일화 천마의 사샤가 외국인 선수로 주장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던터라 큰 이슈는 못되었다.
- ↑ 당시 수원측의 방출 이유는 마토의 나이가 32살이라 안정감있는 활약을 보여주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토의 대체자로 데려온 에디 보스나르는 31살이었으며, 그나마 마토의 공백을 메워주지도 못했다
- ↑ http://footballist.co.kr/bbs/board.php?bo_table=press&wr_id=12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