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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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광섭 (1934년 ~ 2011년 12월 13일)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심판이다. 형 맹명섭 씨와 함께 형제가 나란히 6ㆍ7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심판으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맹광섭 씨의 경우는 철도청 축구단에서만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감독 직을 역임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맹광섭
  • 생년월일 : 1934년
  • 사망일 : 2011년 12월 13일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선수 시절[편집]

서울 출신으로 1950년 6.25 사변을 겪으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으며 병참단 소속 라이트 인너로 활약하며 조남수, 성낙운 등과 함께 병참단의 공격진을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 덕에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 예비 대표에 선발되기도 하는 등 좋은 모습을 이어가다, 1962년 박세학 씨 등과 함께 서울시경에서 잠시 활동한 것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선수 생활 이후[편집]

예편 후 철도청 축구단의 코치로 부임하였으며, 동시에 심판 활동도 시작하였다. 특히 1973년에는 형 맹명섭 씨를 대신해, FIFA 국제 심판에 이름을 올렸고 이후 1980년대까지 철도청 감독 겸 국제 심판 겸 한국실업축구연맹 감사로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기셨다. 1984년에는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에 선임되어 1989년까지 활동하셨으며, 1989년 박종환 당시 일화 천마 감독이 경기 도중 임정식 주심을 폭행하는 사건이 터지자 해당 사태에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위원장 직에서 물러나셨다. 이후 1990년대 초반 철도청 축구단의 지휘봉도 내려놓은 뒤, 축구계 원로로 활동하시다 2011년 12월 13일 새벽 2시 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눈을 감으셨다.


에피소드[편집]

  • 심판 폭행이 심심찮게 터졌던 196ㆍ70년대에 활동했기 때문에 각종 고초를 많이 겪으셨다. 일례로 1974년 11월 30일, 당시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던 전국선수권대회 결승전은 연세대학교 vs 고려대학교의 경기로 치러졌는데, 후반 42분 고대 차범근의 크로스가 연대 신우성의 손에 맞자 맹광섭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하였고 이를 두고 연세대 선수단이 불복, 선수단을 철수시켜버리자 이에 맹주심이 고려대의 기권승을 선언한 것을 두고 연세대학교 응원단이 그라운드와 본부석으로 몰려들어 곤혹을 치른바 있다. 이어 1975년 9월에는 한일은행 vs 상업은행 경기의 주심을 봤다가 한일은행 강석현 선수의 푸싱 파울에 페널티킥을 선언하자, 한은의 최규익 선수를 비롯한 한은 선수단에게 폭언과 실랑이를 당했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역시 한은 소속이었던 김명규가 달려들어 1경기에서 2번 불상사를 입는 씁쓸한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1]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관련 기사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