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화
박경화(1939년 6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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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시절[편집]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형인 박경호 씨와 함께 해방 후 남하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배재고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하였으며, 구력이 비교적 짧았음에도 불구 연세대학교에 입학할 만큼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곧장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제1회 AFC U-19 챔피언십에 참가해 한국팀을 초대 우승케하는데 공헌하였다. 이 때의 활약 덕분에 이듬해인 1960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에도 발탁되며 꾸준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성인 선수 시절[편집]
연세대학교 재학 도중 군에 입대하여 헌병감실에서 활동하였으며, 군제대 후 학업을 마치고서는 제일모직에 입단해 제일모직의 실업 축구계 평정에 공헌하였다. 이러한 와중에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발탁되었으며,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는 본선 대표로 최종 선발되기까지 하였으나 출국 직전 실시된 정밀 검진 결과 몸에 이상이 있다는 판정을 받고 당시 고려대학교의 이현 선수와 함께 나란히 대표팀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불운을 겪었다. 이 때의 탈락이 상당한 충격이었는지, 박경화 선수는 그 길로 대표팀 및 선수 생활 은퇴를 결심한다. 26세로 전성기에 한창 접어들 무렵이었던 박선수가 급작스레 은퇴를 결정하자 주변에서 상당히 아쉬워했다고..
지도자 시절[편집]
선수 생활 정리 후에는 한동안 축구계에서 모습을 감추었으나, 1969년 개최된 FIFA 코칭 스쿨에 모습을 드러내며 지도자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후 제일은행 축구단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박씨는, 함흥철 감독의 추천으로[2]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를 69년부터 71년까지 3년 연속 맡으며 젊고 유망한 지도자로 급부상하였다. 특히 1972년 동아고등학교 축구부 코치와 대한민국 U-20 대표팀 트레이너를 동시에 소화하면서 동아고의 대통령금배 고교축구대회 우승과 1972년 AFC U-19 챔피언십 준우승을 동시 달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후 함흥철 코치를 따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상비군 트레이너로 발탁되었다.
에피소드[편집]
- 위에서도 소개한 형 박경호 씨와 함께 형제가 나란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였다. 이후 두 형제는 건국대학교 축구부 코치를 나란히 역임하며 건국대 축구부의 성장을 이끌었으며, 1990년대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오이타 트리니타 등지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