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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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 시절 박광현

박광현은 1989년부터 1999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축구선수 이자 축구인이다. 터프한 성격의 파이터형 수비수였으며 잦은 반칙으로 K리그 최다 퇴장선수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박광현
  • 생년월일 : 1967년 7월 24일생
  • 신체 : 180cm / 77kg
  • 학력 : 단국대학교 졸업
  • 국가대표 경력
1996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9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4경기 출장)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파울 경고 퇴장 자책
현대 호랑이 1989 14 6 0 0 26 3 0 0
1990 7 3 0 0 9 0 0 0
1991 10 7 0 0 14 1 0 0
일화 천마 1992 17 6 0 0 25 5 0 0
1993 23 14 1 0 36 7 0 0
1994 14 7 1 0 19 2 1 0
1995 29 6 0 0 52 9 1 0
천안 일화 천마 1996 30 6 3 0 66 9 2 0
1997 30 7 0 0 63 9 0 0
1998 23 9 0 0 55 6 1 0
1999 11 8 0 0 13 3 0 0
통산 (K리그) - 208 79 5 0 378 54 5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00 ~ 2001년 단국대학교 축구부 플레잉코치
2003 ~ 2007년 용인시 축구센터 산하 백암종고 코치
2008 ~ 2012년 운봉공고 축구부 감독
2014년 현재 인천하이텍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유소년 시절[편집]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으로 해남 송지중학교, 김제상고, 단국대학교를 나온 선수이다. 송지중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경제형편을 겪었으며, 김제상고 2학년 시절에 처음 축구선수의 길을 걸었다. 축구를 늦게 시작해 기본기나 기술은 부족했지만 살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악착같이 볼을 차던 선수였던것. 김제상고 졸업 후 하루빨리 프로선수가 되어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실업축구팀인 엠마누엘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현대 호랑이 시절[편집]

엠마누엘을 거쳐 실업 축구팀이던 현대 자동차 축구팀[1] 에 몸담았던 박광현 선수는 당시 현대 호랑이 감독인 김호의 눈에 동계훈련 도중 우연히 들어 프로선수로 등록할 수 있었다. 데뷔시즌 14경기를 출장하며 기회를 얻었던 박광현 선수였으나, 이듬해인 1990년 대통령배 전국 축구대회 경기 도중 상대팀 선수를 폭행 -_-.. 하는 사태가 벌어져 6개월 출전정지를 당했다. 이후 김호 감독의 후임으로 현대 호랑이 지휘를 맡은 차범근 감독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기회를 얻었지만 이번엔 부상으로 또 6개월을 쉬는 불운을 겪는다. 결국 현대측은 박광현 선수를 1991 시즌 종료 후 일화 천마와 트레이드 시켜버렸다. 박선수는 자신의 트레이드 소식을 조간신문을 보고 알았다고 ..;


일화 천마 시절[편집]

천안 일화 천마 시절[편집]

천안 일화 천마 시절에도 박종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있던 시기까지는 박광현 선수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96년 여름, 박종환 감독이 일화 프론트와의 갈등으로 감독직을 사임하고 1997년 후임으로 데려온 레네 드자이에르 감독 밑에서 박광현 선수의 플레이는 완전히 망가져버리고 만다. 벨기에 출신인 레네는 유럽 스타일의 자율축구를 구사하였고 이는 박종환 감독의 합숙훈련 스타일과 정반대였던것. 박종환식 축구가 전부인줄만 알았던 일화 선수단에게 갑작스런 자율은 방종과 일탈로 치닫게 만들고 말았다. 더욱이 당시 천안 일화의 주장이었던 박광현은 이렇게 나태해진 선수단을 단합시키지못했고 그 결과 천안 일화의 성적은 동대문 시절이 무색할 정도로 급전직하하고 말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박광현 씨의 회고를 빌어오자면, 박종환 감독님 밑에서는 돈은 많이 벌었는데 쓸 시간이 없었고, 레네 감독 밑에서는 쓸 시간은 많은데 돈이 안벌렸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을정도;;


은퇴 후[편집]

1999 시즌을 끝으로 박광현 선수는, 김제상고 시절 은사인 하상섭 감독이 이끄는 단국대학교 축구부에 플레잉 코치로 부임하며 선수생활을 정리하였다. 굳이 플레잉코치라 표현하는 이유는 당시 고졸 신분이었던 박광현 씨가 코치로 부임하면서 동시에 단국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하며 학생 신분으로 등록되었기 때문. 요컨대 박광현 코치는 단국대 학생인 동시에 단국대 코치이기도 한 묘한 상황이었다. 이에 단국대 측은 박광현의 신분을 학생으로 해석하여 코치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고, 이때문에 당시 단국대 하상섭 감독은 자신의 연봉에서 일부를 덜어 박광현 선수에게 코치 임금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상황이 박광현 씨에게는 많은 스트레스로 작용했고 결국 2001년 단국대 축구부 코치를 그만두게되었다.

단국대 코치를 그만두고 학생생활을 마친 박광현 씨는 2003년 허정무 총감독의 부름으로 용인시 축구센터의 지정 유스클럽인 백암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하게되었다. 이때 정인환, 백승민 등 수비 유망주를 키워내는 수완을 발휘하였으며 2008년부터 인천 운봉공고 축구부 감독을 맡아 3년째 활약중이다. 그런데, 2012년 봄 춘계고교축구연맹전에서 신평고등학교 감독 주경철과 함께 승부를 담합한 사실이 적발되어 3년간 지도자 자격 정지처분을 받았다고 한다.[2] 다만 운봉공고 측은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라 최종적인 결과는 두고봐야 할듯싶다. 결국 2014년 현재 박광현 감독은 인천하이텍고등학교 축구부[3]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재심 청구가 인용된듯 하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당시 박광현의 플레이는 요새 축구팬들이 보면 인터넷에 거품을 물것이란 확신이 들정도로 더티플레이가 주종을 이루었는데 심판을 안보는 틈을 타서 팔꿈치로 상대 얼굴 가격은 예삿일에 중요 부위 가격, 태클후 일어나면서 무릎 가격 등 별의별 폭력성 플레이가 난무했다. 오죽하면 천하의 라데도 박광현을 가리켜 저 인간은 교도소에서 할 일을 축구장에 와서 벌이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백미는 1995년 챔피언 결정전. 박광현은 2차전에서 황선홍을 끈질기게 괴롭히다 열받은 황선홍 선수에게 얼굴을 강타당했고, 이때 박선수는 오노 비스므리한 분위기를 연출, 결국 황선홍을 경고 누적으로 3차전에 못나오게 하더니만 3차전에서는 라데를 전담마크 하면서 고의적인 핸드볼로 라데 득점 무산시키기, 라데 정강이 걷어차기를 시전하며 급기야는 유니폼 하의를 찢어버리는 등 라데를 쉴새없이 괴롭혔다. 이에 분을 참지 못한 라데는 박광현에게 보복성 백태클을 날리게 되었다. 결국 라데는 퇴장 경기는 일화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이처럼 박광현은 상대 공격수의 평정심을 잃게 만드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이는 박종환 감독의 혹독한 훈련에서 기인했다.


지도자 스타일[편집]

현역 시절, 볼이 아닌 선수를 잡으려고만 죽어라 뛰었던것이 후회된다고 회고하는 박광현 감독. 때문인지 선수 시절 터프한 이미지와 달리 지도자 스타일은 생각보다 부드러우며 지도 스타일도 더티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다. 다만, 경기 중에 불성실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에게는 가차없이 야단을 치기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경기장 밖에서는 선수들과 유대관계가 좋다고.. 어디서 많이본 감독하고 지도 스타일이 비슷하다. 역시 그 감독에 그 제자.


에피소드[편집]

  • 박광현은 K리그 최다 퇴장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5장) 퇴장 횟수로만 치면 현대에서 활약한 송주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송주석이 통산 40경기를 더 출장했다. 솔직히 40경기 정도면 박광현 선수에게 레드카드 한장은 우습게 받을 수 있는 경기 수다. 여담으로 K3리그 용인시민구단의 선수로 활약한 그는 연습 경기 도중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대학생과 볼 다툼을 벌이다 상대방의 치아를 뿌러뜨려 여전함(?)을 과시했다. 명성은 어디안간다 ㄷㄷㄷ..
  • 현대 호랑이에 몸담던 시절까지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벗어나지 못해 고생하셨다고. 아내와의 결혼식도 치루지 못했을 정도. 다행히 일화 천마 이적 후, 일화의 K리그 3연패 주역으로 발돋움하며 형편이 크게 나아졌으며 번듯한 집도 얻고 아내와의 뒤늦은 결혼식도 성대하게 치루었다.
  • 원래 현대 입단만 하더라도 박광현은 터프한 선수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에서 주전에서 밀린 이유가 터프하지 못해서였다.
  • 1996년 아시안컵 이란과의 8강전에서 박광현은 알리 다에이를 막으라는 특명이 내려졌는데, 박광현은 정작 전반전에 교체투입되었고, 경기 분위기를 몰랐던 박광현은 우왕좌왕. 결국 대한민국은 후반전 알리 다에이에게 무려 4골을 허용하면서 2-6 대패를 당하고 만다. 박광현의 국가대표 생활도 여기까지였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 사항[편집]

  1. 당시 프로축구팀을 운영하던 기업들은 프로축구팀과 별도로 회사내에 실업 내지 아마추어 축구팀을 운영중에 있었다.
  2. http://ksport.co.kr/news/view.asp?idx=2694&msection=1&ssection=8
  3. 운봉공업고등학교가 교명을 변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