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익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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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익악기(三益樂器, Samick)는 피아노를 비롯한 각종 악기를 제작하는 회사로 1958년 창립되었다. 영창악기와 더불어 한국내 양대 악기제조회사이며, 2000년대 들어 각종 해외 유명 악기 브랜드를 인수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악기 제조회사중 하나가 되었다. 1988년 실업축구단을 운영한 적이 있으며, 2000년에는 아마추어 축구단이 FA컵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삼익악기 주식회사[편집]

1958년 9월 이효익이 "삼익피아노사"라는 이름으로 설립하였다. 1960년 업라이트 피아노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1965년에는 기타, 1970년에는 그랜드 피아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73년 법인을 설립하면서 삼익악기 제조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으며, 인천 부평으로 공장을 이전하였다. 1978년 미국 LA 지사, 1990년 일본지사를 세웠다. 1998년 imf 금융위기 상황으로 인해 그해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가 2002년 졸업했다. 2002년 독일 벡스타인, 2009년 독일 자일러를 인수하였으며, 2010년에는 스타인웨이의 최대 주주가 되고 이듬해 경영권(황금주)까지 인수했다. 2004년에는 라이벌인 영창악기를 인수하였으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독과점을 우려해 합병을 불허하여, 2006년 현대산업개발에 매각하였다. 2011년 본사를 인천 부평구 청천동에서 충북 음성군으로 이전했다.

양궁 활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삼익의 활을 이용하는 한국 양궁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크게 성장하여 이후 삼익스포츠로 분사되었다.


삼익악기 축구단[편집]

삼익악기 축구단은 1984년도에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순수 직장 아마추어팀으로 출발하였다. 이후 각종 직장인 축구대회에서 계속 우승을 차지하자 이들의 활약을 지켜본 사측은 실업 축구팀으로 육성활 계획을 세우고 1988년 1월 9일, 삼익악기 실업 축구단을 창단하기에 이른다. 당시 기업 팀으로는 12번째로 실업 무대에 참가하는 팀이었다. 창단 이후 각종 실업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 만만치 않은 팀으로 평가받았지만 유독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1] 이후 1991년 겨울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팀 출신인 정광석을 데려오며 작은 화제를 모으기도 하던 삼익악기 축구단은 1993년 11월 회사 경영사정을 이유로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2]


수상 기록[편집]


삼익악기 사커 클럽[편집]

실업축구팀이 해체된지 7년여 뒤인 2000년, 삼익악기 사커클럽이란 생활체육팀으로 삼익악기는 다시 한번 축구계에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사내 8개팀의 축구동아리 중 기량이 출중한 선수를 모아 김유겸[3] 감독이 팀을 구성한다. 이후 각종 직장인 축구대회를 우승하면서 봉신클럽과 함께 인천을 대표하는 아마추어 클럽으로 자리잡는다.[4] 2001년 푸티 리그와 2002년 FILA배 직장인축구대회 전국결선(청룡부)에서 우승하며 FA컵에도 도전했었지만 01년 대회는 한남대학교 축구부에 0:1로 패배, 02년 대회는 고려대학교 축구부에 1:5로 패하며 아쉽게 FA컵 진출이 무산된바 있다. 이후 삼익악기 사커클럽은 해체된다.


에피소드[편집]

  • 2010년 U-17 여자 월드컵에서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섰던 장슬기 선수의 아버지 장영복씨가 전직 삼익악기 선수 출신임이 알려져 언론에서 화제가 됐었다. 이외에 경주 시민축구단의 창단 감독인 김종현[5] 감독, 최승호 언남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등 삼익악기 축구단 출신들이 알게 모르게 축구계에 많은 편이다.
  • 삼익악기의 훈련장은 인천대학교 운동장과 인천 계양구(당시 북구) 효성동에 있는 JC공원으로 지금 이곳에서는 계양 무지개 유소년 축구단이 연습구장으로 활용중이다. 계양 무지개 유소년 축구단의 감독은 삼익악기 선수출신의 안상재씨가 맡고있다.
  • 1989년 11월 각 부서별 축구모임(10개) 삼익악기 축구연합회가 결성되어 매년 사내 축구대회를 벌여 이 대회에서 우수한 활약을 보인 선수를 삼익악기 2군에 선발하였다.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4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건데?? 90년 추계, 91년 춘ㆍ추계, 92년 추계 실업축구연맹전 등에서 모두 4강에 그쳤을 정도.. 주로 할렐루야 축구단상무중소기업은행에게 발목을 잡혀 우승을 놓치곤 했다.
  2. 1993년 가을 무렵부터 해체설이 돌던 삼익악기 축구단은, 93 군ㆍ실업축구대회에 참가신청을 했다가 불참하였고, 1994년 드래프트 신청에 구 삼익악기 소속 선수 18명이 참가하기에 이르면서 해체가 기정 사실화 되었다. 이후 삼익악기 측은 공식적으로 축구단 해체를 발표한 뒤 함께 운영해오던 양궁팀 까지도 해체한다. 일각에서는 1993년 3월 삼익악기 창업주 이효익의 타계 이후 운영 방침의 변화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사원을 7,000여명에서 2,000여명으로 줄여나가는 힘겨운 시기였던 탓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후문.
  3. 삼익악기 축구단 시절부터 축구팀 감독으로 활약했던 분이다. 해체 이후 다시 팀을 만들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회사에 남아있었다고.. 삼익악기 사커클럽 창단 당시, 실업팀 시절 선수가 사내에 4명이나 남아있었다고 한다.
  4. 당시 상대 아마추어 축구팀들이 대전을 거부한적도 있었을 정도로 전력이 막강했다고 한다.
  5. 전남 드래곤즈대전 시티즌에서 활약한 김종현 선수와는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