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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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절 윤주일

윤주일(1980년 3월 10일)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K리그와 내셔널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선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윤주일
  • 등록명 : 윤주일
  • 생년월일 : 1980년 3월 10일
  • 신체 : 176cm / 70kg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
  • 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대구 FC 2003 36 16 5 3 8 0
2004 29 8 3 3 5 0
2005 26 10 1 2 4 0
2006 13 9 1 1 2 0
인천 유나이티드 2007 6 5 0 0 0 0
전남 드래곤즈 2007 8 6 0 0 1 0
2008 4 1 0 0 0 0
2009 4 2 0 0 0 0
부산 아이파크 2010 0 - - - - -
수원시청 축구단 2011 21 5 1 1 3 0
2012 0 - - - - -
통산 (K리그) - 126 57 10 9 22 0
통산 (내셔널리그) - 21 5 1 1 3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3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시절[편집]

부산광역시 출신으로 덕천중학교, 동아고등학교, 동아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다만 동아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대구 시절[편집]

2003년 동아대를 졸업을 앞두고, 당시 신생 구단으로 창단 준비 중에 있어던 대구 FC 입단 테스트에 참가해, 박종환 감독의 낙점을 받아 대구에 입단하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계약금 1억 1천만원, 연봉 2천만원에 3년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으며, 2003시즌 등번호는 14번을 달았다. 이후 윤주일은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대구 공격진의 핵심으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데뷔 시즌에만 36경기 출장 5골 3도움으로 2003 시즌 팀내 최다출전 3위, 최다골, 최다도움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윤주일 선수는 부산 아이콘스를 상대로 강했는데, 부산과의 홈, 어웨이 2경기서만 2골 1도움을 올려 모두 대구가 부산에게서 완승을 거두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었다. 2003시즌 팀 성적의 부진으로 정조국에게 밀리며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윤선수의 대활약은 대구 팬들에게 복덩이나 다름없었다.


페이스 저하와 인천으로의 이적[편집]

그러나 아쉬운 것은, 2003 데뷔 시즌이 윤주일 선수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데뷔 시즌의 포스를 다시 보여주지 못하며, 대구 팬들의 기대대로 성장해주질 않았다. 하지만 4시즌 동안 K리그에서만 100경기 넘게 출장하면서, 대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특히 상일 우주일로 대구팬들에게 불리우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바 있다. 하지만 윤주일 선수의 대구와의 인연은 변감독의 부임으로 끝을 맺게되는데, 2006년 시즌 박종환 감독이 사임하고 변병주 감독이 부임하면서, 변감독은 인천의 이근호 선수를 탐을 내기 시작했고 인천측이 선수 + 현금 트레이드를 원함에 따라 결국 2006시즌 종료후인 2006년 12월, 윤주일 선수와 이근호의 트레이드가 합의되어 윤주일 선수는 인천에 입단하였다.



또다시 트레이드[편집]

윤주일과 이근호 트레이드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예상은 인천 유나이티드가 득보는 장사를 했다는 평가였다. 이근호 선수가 포텐셜은 갖춘듯 했지만 즉시 전력감도 아니었고, 올림픽대표이긴 했으나 R리그 MVP 수상 정도 외엔 변변한 기록조차 없는 유망주에 불과했기 때문. 반면 윤주일은 K리그만 100경기 넘게 뛴 즉시 전력감 선수였다. 근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는게 문제. 윤주일 선수는 인천 입단 직후, 부상으로 경기를 못 나오는 동안 이근호는 연일 골을 넣으며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2007년 6월에 이근호 선수는 국가대표로 데뷔, 데뷔전서 골을 넣는 등, 순식간에 한국축구의 기대주로 급부상해버렸다. 인천팬들의 억장이 무너졌던건 당연지사. 실망의 화살은 인천 프론트에게 그리고 윤주일 선수에게 쏟아졌다. 결국 부상까지 입게되고 출장수도 적어지면서 2007년 7월, 인천에 입단한지 불과 6개월 만에 '이근호와 트레이드 됐었던 선수'란 달갑잖은 꼬리표를 달고 전남의 송유걸 선수와 트레이드되었다.



병역 파문[편집]

전남에서 몸을 추스리면서 다시 선발 엔트리에 간간히 이름을 올린 윤주일 선수는 다사다난했던 2007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2008년 새해 벽두부터 터진 축구 선수 군비리 사건에 윤주일 선수의 이름이 올라가면서, 윤선수의 인생은 더할 나위 없이 꼬여갔다. 또다른 군비리 연루자였던 정종관과 더불어 군비리에 연루되었던 윤선수는 정씨가 K리그에서 영구 제명된데 비해,[1] 윤주일 선수는 본인의 무고가 밝혀져 2008년 겨울에 겨우 소속팀인 전남에 복귀할 수 있게되었다. 하지만 이미 운동을 쉰지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뒤였다. 2009시즌 어떻게든 전남의 1군 엔트리에 들어가려 노력했으나, 나이는 이미 서른. 몸이 예전같을리 만무하였고 경쟁 상대들도 너무 많았다. 결국 2009시즌 4경기 출장에 그친채 시즌 종료와 함께 전남에서 퇴단하고 말았다.


전남을 떠난 이후[편집]

전남에서의 방출 후 입단 테스트 끝에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였지만 부산에서도 부상으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 결국 2011시즌을 앞두고 안익수 감독의 세대 교체로 인해 부산과의 재계약 마저 불발.. 이후 내셔널리그 팀인 수원시청 축구단에 둥지를 틀며 수원시청에서만 2시즌을 활동하였다. 이후 2012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듯.


에피소드[편집]

  • 대구 FC 창단 첫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3년 4월 27일, 로만의 어시스트를 받아 부산 아이콘스를 상대로 골을 터뜨렸으며 이 골이 결승골이 되어 승리.


경력[편집]

  • 2003 ~ 2006 : 대구 FC / K리그
  • 2007.1 ~ 2007.7 : 인천 유나이티드 / K리그
  • 2007.7 ~ 2009 : 전남 드래곤즈 / K리그
  • 2010 : 부산 아이파크 / K리그
  • 2011 ~ 2012 : 수원시청 축구단 / 내셔널리그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이후 정씨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선택까지 저지르고 만다. 자세한건 해당 문서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