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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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대표 시절 이영무
ⓒ월간축구

이영무(1953년 7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유년 시절[편집]

경기도 고양군 능곡 출신으로, 경희중학교와 경희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나왔다. 경희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집인 능곡에서 학교까지 하루 4시간씩 통학 생활을 했는데, 당시 월 1만원씩 소요되는 합숙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경희대 시절부터는 체육 특기생 자격으로 합숙 생활을 하는데 성공, 통학에 뺏기던 시간을 개인 운동 시간으로 변경하며 매일같이 노력한 끝에 72년 청소년대표 발탁을 거쳐, 197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국가대표 생활을 시작하였다.


포철 시절[편집]

1976년 포항제철 축구단에 입단한 이영무 선수는, 1977년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위기를 겪기도 하였으나[1] 한홍기 당시 포철 감독의 배려와 본인의 재활 의지로 부활에 성공하고, 대표팀에도 복귀하여 1978년 월드컵 아시아예선 對 이란 전에서 중거리 골을 터뜨리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할렐루야 시절[편집]

1980년 할렐루야 축구단이 창단되자, 초대 주장 겸 트레이너를 맡았다. 1982년까지 맹활약을 했었으나, 1982년 4월29일 신현호,조병득[2],박민재,김철용 등과 함께 구단 운영 방침에 대한 반발을 이유로 할렐루야를 퇴단한다. [3] 이후 1983년 임마누엘 축구단창단에 기여하며 이끌어 나갔고 1985년 임마누엘 축구단이 할렐루야의 2군으로 운영되면서 자연스럽게 할렐루야에 합류했으나 경기 출전은 없었고 이후 할렐루야가 아마구단으로 전환하면서 자연스럽게 임마누엘도 다시 분리되며 할렐루야를 떠나게된다.


에피소드[편집]

기도 세레머니를 선보인 선수로 유명하다. 처음 기도 세레머니를 선보인 것은 1975년 9월 8일, 일본과의 경기에서 였다고 한다.


갤러리[편집]


참고[편집]

  1. 이미 그 때부터 신앙심이 남달랐던지라,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목사로의 길을 걸으려 했다고 했다.
  2. 신현호와 조병득은 이후 다시 할렐루야로 되돌아온다.
  3. 이영무,신현호등 할렐루야서 탈퇴 -1982년 5월 1일,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