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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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엽(1959년 6월 16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83년부터 1984년까지 수퍼리그에서 활동한 공격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이태엽
  • 출생일 : 1959년 6월 16일
  • 신장 : 181cm / 76kg
  • 국가대표 경력
1980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82년 FIFA 스페인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1980년 ~ 198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6경기 출장 1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리그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국민은행 까치 1983 15 2 1 0 1 0
1984 17 10 2 0 3 0
통산 (K리그) - 32 12 3 0 4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4년 3월 1일 기준.


수퍼리그 시절 이전까지[편집]

전남 영광군 출신으로, 광주광역시[1]에 위치한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2] 고졸 신분으로 서울시청 축구단에 입단하여 스트라이커로 활약하였다. 이후 1980년 춘계실업축구연맹전 득점왕을 시작으로, 1981년 종합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1982년 코리안리그 득점왕을 수상하며 실업축구계의 정상권 스트라이커로 맹활약하였으며, 이 때의 활약을 발판 삼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어 아시안컵과 월드컵 아시아예선 등 굵직굵직한 대회에 참가하였던바 있다.


수퍼리그 시절[편집]

목포항운노조 축구단 시절[편집]

1985년 12월, 당시 전남 지역 유일의 실업축구팀이었던 목포항운노조에 플레잉코치 자격으로 입단하였다. 이후 1988년 팀이 해체 위기에 몰리자, 목포항운노조 축구부 감독을 맡았으며, 팀을 되살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였던바 있다. 특히 1988년 12월, 목포항운노조 측이 해체 통보를 한 상황에서, 자비로 선수단을 유지하며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참가하려했으나 실패하기까지 하였을 정도. 결국 이감독의 노력에도 불구, 축구단은 해체되고 말았다.


지도자 생활[편집]

목포항운노조 축구부 해체 후, 2000년 서울 장안중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2002년 7월 천안오룡기배 우승, 10월 인천시장기배 우승을 거머쥐면서 지도자 역량을 과시하였다. 2006년 10월에는 서울시 중학교 선발팀 감독을 맡아 한일중등축구정기전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 15세이하 청소년 대회에 한국중학교선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2007년 1월 호남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같은해 험멜코리아배 제62회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서 호남대학교를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2014년 현재는 용인시 축구센터 산하 중학교 축구부인 원삼중학교 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지도 스타일[편집]

"현대축구는 곧 속도전" 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태엽 감독은, 강력한패스 .정확한 볼 컨트롤. 원터치-투터치에 의한 빠른 공격전개를 지향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에피소드[편집]

  •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아시아예선 당시 대표팀에 발탁되어 주포로 활약하였다. 특히 예선 3차전 對 쿠웨이트 전 당시, 전반 29분 이강조의 코너킥을 받아 헤딩골로 연결시켰지만, 주심이 키퍼 차징을 이유로 노골로 선언하면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바 있다. 이 노골 선언 이후 한국 선수들은 전의가 바닥을 치면서 0:2 패배를 막지 못하였다.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당시는 광주시
  2. 원래 영광군에 위치한 해룡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으나,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무기정학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금호고 축구부가 창단하고, 서현옥 코치가 이태엽을 스카우트함에 따라 이선수는 금호고 학생 신분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