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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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절 정유석

정유석(1977년 10월 25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0년부터 2011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골키퍼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정유석
  • 출생일 : 1977년 10월 25일
  • 신체 : 190cm / 82kg
  • 국가대표 경력
1996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1997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강화 훈련 참가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실점 득점 경고 퇴장
부산 아이콘스 2000 22 4 28 0 1 0
2001 35 0 46 0 0 0
2002 27 1 43 0 2 0
2003 8 0 17 0 1 0
광주 상무 2004 14 1 13 0 0 0
2005 24 0 33 0 0 0
부산 아이파크 2006 34 0 48 0 4 0
2007 26 1 36 0 0 0
2008 7 0 9 0 2 0
2009 1 1 0 0 2 0
강릉시청 축구단 2010 24 1 - 0 1 0
울산 현대 2011 7 0 7 0 1 0
통산 (K리그) - 205 9 282 0 12 0
통산 (내셔널리그) - 24 1 - 0 1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편집]

거제고 시절[편집]

경상남도 마산 출신으로 마산 중앙중, 거제시 거제고등학교, 수원시에 위치한 아주대학교를 나온 선수이다. 마산 중앙중 시절부터 골리 유망주로 각광을 받았으며, 립서비스 보태서 향후 한국축구를 20년간 짊어질 수문장감이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정유석의 기량에 매료된 이가 안종복 당시 부산 대우 로얄즈 단장이었는데, 안단장은 정선수가 마산 중앙중을 졸업하자 부산 대우 로얄즈의 지정 유스 고등학교인 거제고등학교로 정선수를 입학시키면서 프로 선수의 준하는 돈을 장학금 명목으로 정선수측에 지불하면서 키웠다.[1]


청소년대표 시절[편집]

1996년 정선수는 한국에서 개최된 AFC U-19 챔피언십 대회에 주전 골리로 낙점되었으며, 이 대회에서 엄청난 선방쇼를 펼쳐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압권은 준결승전이었던 對 일본전. 이 경기는 사실상 정유석 덕분에 한국이 승리했다는 평을 들었다. 거침없이 쇄도하는 일본 선수들의 슈팅을 모조리 막아낸 정유석의 활약으로 한국은 일본을 1:0으로 꺽고 결승으로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 중국마저 3:0으로 대파. 96년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정선수는 동대회 최우수 GK로 선정되었다.

이후 1997년 FIFA U-20 월드컵에도 당연히 주전 골리로 발탁되어 말레이시아로 떠났는데.. 문제는 이 대회가 쿠칭쇼크로 아직도 회자되는 그 대회였다는 것. 이 대회에서 정선수는 1차전 對 남아공전과 3차전 對 브라질전에 나서, 브라질 전에서만 10골을 내주는 대쇼크를 경험한다.[2] 이 때의 충격으로 정유석 선수는 본래 거제고 졸업 후, 바로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할 예정이었으나 아주대학교로 진학해 숨고르기를 하게된다.


부산 생활[편집]

아주대학교 중퇴 후, 2000년 부산 아이콘스에 입단한 정유석 선수는 데뷔시즌 팀내 1선발이었던 신범철 선수와 당당히 주전경쟁을 펼치며 활약했다. 2000년 7월에는 신선수가 류웅렬 선수와 함께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트레이드됨에 따라 정유석 선수는 무주공산이 된 부산의 1선발을 점령했고 이후 부산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을만큼 좋은 활약을 펼쳤다.[3] 그러나 2002년 27경기를 나와 43실점이라는 평균이하의 성적을 받은 정선수는, 02시즌 말엽에 부산의 신임감독으로 부임한 이안 포터필드에게 안정감이 부족하다 는 평을 듣는 끝에 김용대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후 2004년 군입대를 결정하여 군복무를 수행하였으며, 2006년 김용대 선수가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면서 또다시 무주공산이 된 부산의 1선발 골리를 차지하며 2007년까지 2년동안 주전 키퍼로 활약하였다. 이후 2008시즌 최현, 이범영 등 대체 자원들이 들어오면서, 2선발 내지 3선발로 물러나 선수 황혼기를 맞이한 정선수는 2009시즌을 마지막으로 10년간 몸담았던 부산을 떠나기에 이른다.


부산을 떠난 이후[편집]

2010시즌 강릉시청 축구단으로 이적해 활동하며, 강릉시청의 후기리그 우승에 공헌한 정선수는 2011년 울산에서의 활약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하였으며, 은퇴 후 울산 현대 산하 유소년 팀인 현대중학교 축구부에서 GK를 지도하고 있다. 정식 코치 자격증이 아직 없어서 공식 직함은 주무이나, 사실상 GK 코치로 활동 중이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경기마다 기복이 심한 편이었기 때문에, 안정감에서 마이너스를 받는게 아쉬운 선수였다. 하지만 반사신경 등 기본적인 능력이 좋아서, 잘 막을때는 이건 골이다 싶은 슈팅마저 막아내는 철벽 방어를 보여주기도.. 다만 한 번 실점을 허용하면 그 뒤부터 와르르 무너지는게 문제였다.


에피소드[편집]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이처럼 프로팀이 지정 유스 고등학교에 우수한 선수자원을 모으려고 장학금까지 쥐여준건 유례를 찾아볼 수없는 일이었다. 안단장은 '거제중 → 거제고 → 아주대 → 부산 대우 로얄즈'로 이어지는 체계적 유스 양성을 기획하였고 실제로 이 라인을 타고 등장한 첫번째 사례가 정유석이다. 문제는 정유석 배출 직후, 대우의 부도와 대우 로얄즈의 현산 매각으로 기껏 세워놓은 유스 시스템이 붕괴했다는 거지만(..)
  2. 한골도 내주면 안된다고 버티는 골키퍼들의 성격상 한 경기에서 5골 이상 실점하는건 엄청난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나 어린 골키퍼일수록 그 정도가 심한편. 그런데 정유석 선수는 불과 20살의 나이로 한경기에서 10골을 실점하는 최악의 경험을 했다….
  3.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2002년 김용대 선수가 부산 입단 후, 컵대회 개막전에 나서 4실점을 하자 김용대는 정유석에 발끝에도 못미친다.라는 평이 나왔을 정도. 지금 두 선수의 역전된 상황을 생각해보면 가히 충격과 공포다.